정의사회는 구현되었는가: <살인자ㅇ난감>

<살인자ㅇ난감> 2024년 2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 참 많은 대한민국에서, 이른바 교양서적이란 장르(?)에 포함될 책이 무려 200만 부가 넘게 팔렸다면 이는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사점은 필경 두 가지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 책에서 언급하는 주제가 우리 사회 전반에 이미 폭넓게 존재해서 많은 이들이 공감하거나, 아니면 우리 사회에 지극히 결핍된 상황이어서 많은 이들이 갈구하거나.

앞서 이야기한 책은 세계적 석학 마이클 샌델의 저작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자, 우리 사회가 모든 분야에서 매우 공정하고 정의롭게 굴러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 200만 명이 넘는 독자들이 공감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매우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며 종합적으로 ‘정의롭지 않/못하기 때문에’ 역시 200만 명이 넘는 독자들이 공분하고 있는 것일까. 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 생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그 순수함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조명된 대한민국 현대사 희대의 빌런 전두환이 쿠데타를 통해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면서 내건 일성(一聲)이 바로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이토록 소름 끼치는 아이러니가 있다니!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살인자ㅇ난감>(참 기묘한 이 제목은 읽는 방법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는데 일단 본 글에선 ‘살인자/이응/난감’으로 읽고, 표기한다)이 던지는 질문이 어쩌면 그와 비슷하다. 살인을 저지르고 보니 하필 피해자가 무지막지한 범죄자라면, 그 살인자는 정의를 구현한 것인 것인가? 이런 경우 우리는 살인자를 영웅시해야 하는가?

비슷한 내용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들을 우리는 정말 많이 봤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참 기억에 남은 작품은 2년 전 개봉한 <더 배트맨>. 이 작품에서 배트맨은 자경단원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한지 2년차가 되는 ‘초짜’인데, 고담시의 경찰들이 (자경단원)배트맨을 노골적으로 경원시하는 모습이 무척 두드러지게 묘사된다.

스스로 확신을 가진 연쇄살인범 이탕은, 정의의 수호자인가?

<살인자ㅇ난감>의 내용은 이렇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대학생 이탕(연기한 배우는 최우식인데, 마침 그는 실제로 캐나다 국적을 갖고 있기도 해서 ‘캐나다’를 강조하는 장면에선 개인적으로 빵 터졌다)은 어느 날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 게다가 살인 현장을 목격한 사람도 있는데, 그것을 약점으로 잡아 이탕으로부터 돈을 뜯어내려는 목격자까지 살해하는 이탕. 한 발 더 나아가서(?) 살해당한 두 번째 살인사건의 목격자는 하필이면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그러니까 존속살해범.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두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장난감(손석구 배우가 연기한 이 캐릭터의 이름 자체가 ‘장난감’이다)은 개인적으로 모종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작품 내에서 주인공 이탕은, (적어도 앞서 언급한 처음 두 번의 살인 이후에)자신이 계속 저지르는 일련의 살인에 대해서는 나름의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를테면 스스로 정의를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는 것. 아예 입고 다니는 점퍼의 등판에 ‘히어로’라는 글씨가 크게 박혀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반면 우스꽝스러운 이름 때문에 ‘놀림 받지 않기 위해’ 경찰이 된 또 다른 주인공 장난감 형사는 그 직업이 직업인 만큼 사적 처단은 절대 있어선 안 되는 것으로 여기고, 바로 그렇게 행동하지만, 결국 막바지에 가선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된다(더 자세한 언급은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일단락한다).

요컨대 이야기 구성에 있어서 캐릭터가 유려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세련된 연출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살인자ㅇ난감>에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그리고 작품에서 또 주목할 만한 부분은 피해자들의 면면이다. 이탕이 저지르는 살인 행각의 최초 피해자가 된 여부일은 근근이 벌어먹고 사는 노동자로 묘사되고, 이탕을 협박하다가 살해당하는 선여옥은 장애인이다. 비슷한 내용의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선 그저 선하기만 하다가 불의의 피해를 입는 단역으로 자주 등장했던 캐릭터들 아닌가? 처음엔 그저 평범했던 대학생 이탕이 엽기적인 연쇄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보는 평범한 인물들이 사실은 희대의 악당이라는 설정 자체가, 작품에서 던지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진다는 방증이다.

깔끔한 연출과 함께 돋보이는 부분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 이탕과 장난감, 두 주인공 역의 최우식과 손석구 모두, 각자의 캐릭터가 각자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입은 듯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빼먹지 말고 주목해야 하는 배우가 있으니, 바로 송촌 역의 이희준. 물론 연기력에 있어선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배우이긴 하지만, <살인자ㅇ난감>에서의 퍼포먼스는 올해가 되고서 불과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올해 공개될 모든 영상 콘텐츠에서 단연 최고가 될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배우 스스로의 해석인지 아니면 감독의 디렉팅인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엄청난 모습이었다.

송촌 역 이희준, 단연 올해의 퍼포먼스

개인적으로 꼽는 작년 최고의 드라마는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였는데, 적어도 아직까진(아직 두 달밖에 안 되어서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그래도) 2024년 최고의 드라마로 꼽는 데에 무리가 없다. 드라마의 평가를 조금 찾아보니 비판이 없진 않은데, 그 비판 내용의 상당 부분은 원작이 된 웹툰과의 비교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난 웹툰을 안 봤으니 그런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롭고(?). ^^;;

바야흐로 OTT와 그 콘텐츠들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추천할 만한 작품을 만나는 일도 시청자들에겐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으로부터 조금 시간이 흐르고, 그러니까 새로 볼 만한 작품이 없을 때 아예 시간을 충분히 두고 2회차 정주행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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