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는 공공조형물

인터넷 서핑 중에 흥미로운 뉴스를 하나 봤다. 지난 2006년 개봉하여 1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많이들 기억하실 터. 바로 그 영화의 괴물을 그대로 형상화한 조형물이, 실제 영화 장면을 재현이나 한 듯(!) 한강공원에 조형물로 재현되어 있다는 것까지 아는 사람은 영화 관람객 수에 비하면 적을 듯한데, 아무튼 이 조형물이 조만간 철거된다는 뉴스.

영화 <괴물> 속 괴물이 조형물로 구현된 것은 지난 2015년의 일이다. 당시 서울과 한강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한 관광상품을 개발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인데, 문제는 이 조형물이 흉물 취급을 받게 되면서 급기야 철거가 된다는 것이다. 혹자는 현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임 故 박원순 시장 당시의 이른바 치적을 지우기 위한 액션을 취하는 것 아닌가라고 하지만, 꼭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일단 조형물 자체가 ‘안 그래도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는’ 영화 속 괴물을 너무나도 정직하게(…) 재현하다 보니 솔직히 미관상 좋게 보이진 않았다(덧붙이면 괴물 조형물 근방엔 폐타이어로 만들어진 별칭 ‘북극곰’과 ‘회색곰’도 있는데 이들도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아마 이번에 괴물과 함께 철거될 듯).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서울은 물론이고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한 공공조형물이 지역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거나 흉물 취급을 받는 일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2010년 경기도 군포시엔 피겨 여왕 김연아를 형상화한 동상이 세워졌는데, 동상이 제작되는 과정에서 당시 김연아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던 회사로부터 초상권과 성명권 허가를 받지 못하는 촌극도 있었다. 결과는? 동상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누가 봐도 김연아인데 정작 얼굴은 누가 봐도 김연아가 아닌 상황이 빚어졌다. 그뿐인가?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나 싶은, 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통, 해시계, 가마솥 등이 모두 우리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물론 그것들은 모두 공공조형물의 형태를 띠고 있다.

어… 괴물… 괴물이 ‘철거’된다고?

바로 작년에 울산시에서 있었던 일도 전한다. 울산시는 ‘친기업 기조 정책’의 일환으로 투자 유치를 꾀하기 위해 대기업 창업주의 거대 조형물을 짓겠다고 한 것. 공식 명칭은 ‘울산을 빛낸 위대한 기업인 기념사업’으로, 예산 약 250억원을 들여 높이 약 30~40미터, 기단까지 포함하여 약 60미터(!)에 달하는 조형물을 세운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참고로 인물을 본뜬 형태로 만들어진,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가장 큰 조형물은 경북 영천의 만불사에 있는 아미타영천대불이다. 그 높이가 33미터에 달하는데, 이 크기만 해도 거의 아파트 10층 높이. 그런데 울산시에서 세우겠다고 한 조형물은 그보다 두 배 높이! 그러니까 아파트 20층 높이에 달하는 조형물을 짓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공공조형물들이 종종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왕 세금 들여서 만들어지고 설치되는 것이라면, 나름 해당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적/미학적 감수성을 반영한 세련된 작품이 나올 수는 없는 걸까? 당연하게도, 제작 및 설치에 관한 조건이 꽤 까다롭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잘 정리된 아래의 기사를 참고할 것을 권한다.

공공조형물은 세금 낭비? 미술계 “수준 이하 작품 낳는 입찰 시스템이 문제”
(이투데이/링크)

재직 중인 회사에서 공공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수주를 받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공공입찰 시스템이 있다. 바로 조달청의 입찰 시스템인 ‘나라장터’. 공공조형물이라곤 해도 어디까지나 예술 작품일 텐데 나라장터를 통해서 입찰을 하고 제작하는 방식과 좀 안 어울리는 느낌은 들지만, 투명한 세금 집행을 위해서 그게 필요하다면, 뭐 거기까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긴 해도 위 기사에서 전한 것처럼 여러 가지 조건과 기준을 정상화하기 위한 고민은 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실제 제작과 설치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 길은 없지만, 사실 공공조형물이 ‘많은 세금이 투입된 비싼 쓰레기’ 소리를 들으며 시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건 외국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지금은 파리의 상징이 된 에펠탑조차 건립 초기엔 흉물스럽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으니. 그리고 오늘날 고풍스럽고 근사하게만 보이는 유럽 각국 도시들의 오래 된 건축물들과 다양한 조각상들은, 따지고 보면 당시 도시(국가)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권력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선전물 아니었던가.

그러니 이제 우리도 조금씩, 하나씩 고쳐나가면서 우리 주변을 더 풍성하고 여유롭게 가꾸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여러 모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세상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다.

밀튼 클레이저의 작품 ‘I♥NY’ 같은 공공조형물을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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