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하고 끈적끈적하고 눅진한 공기가 사람들을 짓누르는 장마 시즌이 돌아왔다. 기상에 관한 연구를 하는 학자들 대부분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올 여름이 역대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현실로 닥친 환경 문제로 인해 기온이 매년 상승하기 때문.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장마철 같은 경우 연간 강수량의 1/3에서 절반 수준의 비가 불과 한두 시간 안에 ‘쏟아 붓듯 내리는’ 극단적인 기상 상황도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도 하고. 덧붙이면 이런 일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다.
온화함과는 거리가 먼 이런 기상 상황은 사실 신체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피곤이 쉽사리 풀리지 않고 매사에 집중하기 힘들어지는 것은 당신이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지난 얼마간 나름 인상적이었던 영화와 드라마들을 보고 난 짤막 소감을 정리하고자 한다.
지난 달과 지지난 달에 봤던 영화와 드라마들에 대한 소감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시길 바라며.
지난 얼마간 즐겼던 콘텐츠들에 대한 짤막 소감 / 2024년 5월
지난 얼마간 즐겼던 콘텐츠들에 대한 짤막 소감 / 2024년 4월
지난 얼마간 즐겼던 콘텐츠들에 대한 짤막 소감 / 2024년 3월
<핸섬가이즈> 남동협 감독 / 이성민, 이희준, 박지환, 공승연 등

지금까지 한국에선 정말 보기 힘들었던, 슬래셔와 코미디가 결합된 복합 장르의 영화. 여기까지만 해도 참 신선한 시도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여기에 오컬트 요소까지 한 국자 살포시 얹혔다. 그 점에서 원작이 된 영화 <터커 & 데일 vs. 이블>과는 사뭇 다른데, 그 이유는 나름 짐작하는 바가 있어 뒤에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한다.
원작이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그렇게까지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장르영화 팬들 사이에선 결코 적지 않은 팬덤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 명확하게 서로 대척점에 있는 두 장르가 천연덕스럽게 공존하는 부분도 그렇고, 이야기 속 상황이 굉장히 절묘하고 무엇보다 매우 흥미롭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가 봐도 범죄형인(…) 두 남자의 주변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말 그대로 ‘죽어나가는데’ 정작 그들은 전혀 잘못이 없을뿐더러 경찰을 비롯한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을 무시무시한 연쇄살인범으로 오해하는 설정은 원작을 그대로 따른다. 다만 관람 등급이 15세인만큼 사망 장면이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그려지지는 않고 있다.
다만 원작에선 없었던 오컬트의 요소가 가미된 이유는, 아마도 영화 속 설정 자체가 한국에선 지나치게 생경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 아닐까 한다(이 장르의 영화에서 리얼리티를 따지는 게 웃기는 일이긴 하지만, 한국 관객들은 은근히 까다롭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현실감이란 게 부족하니 아예 대놓고 사차원으로 가버리자는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말. 그리고, 그 선택은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범죄도시 4>나 최근의 <인사이드 아웃 2> 같이 크게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도 있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 같이 의외의 히트를 기록한 작품도 있는 반면, 진짜 다양한 면면을 볼 수 있는 중간 규모의 영화들은 한국영화건 해외영화건 체면치레도 못하고 있는 것이 요즘 영화판의 암울한 현실이다. 그런 중, 이처럼 마이너하기 짝이 없는, 게다가 오리지널 시나리오도 아니고 리메이크판을 데뷔작으로 삼은 신인 감독의 패기와 제작사의 뚝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아니, 꼭 그런 공치사 비스무리한 이야기는 집어치우고라도 영화 자체도 무척 웃기고 재미있었다! 두 주연배우의 능청맞은 연기는 물론이고, 이젠 ‘장이수’란 캐릭터 이름이 더 친숙한 박지환 배우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웃겼고. ㅋㅋㅋ 여주 공승연 배우도 의외로(?) 잘 어울렸다. 감독과 배우를 비롯하여 작품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오로지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듯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히트맨>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 글렌 포웰, 아드리아 아르호나 등

솔직히 처음엔 볼 생각이 없었다. 넷플릭스에 새 영화가 한 편 올라왔는데 제목은 흔해 빠진 <히트맨>이고, 썸네일에는 그냥 남녀 주연 배우의 얼굴이 커다랗게 박혀있길래 그냥 뻔한 코믹 액션 같은 영화겠거니 생각했는데… 작품 소개를 보니 감독이 리차드 링클레이터?
꽤 많은 영화팬들에게 ‘인생 영화’로 남아있는 이른바 <비포> 3부작은 물론이고, 여전히 좋아하는 이들이 많은 <보이 후드>, 그리고 나에게도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남아있는 <스쿨 오브 락>을 연출한, 바로 그 감독이라고? 그렇다면 안 볼 수가 없지, 하고 냉큼 재생 버튼을 눌렀다.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러닝타임이 지나고서, 보길 잘 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경찰의 언더커버 임무를 지원하는 평범한 남자가 졸지에 살인청부업자가 된다는 내용의 나사 빠진 코미디(근데 이게 실화라고 ㅋㅋㅋ)에도 감독의 인장은 군데군데 박혀있어서 매우 즐겁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주인공 글렌 포웰은 설정상 매우 다양한 캐릭터들을 짧은 시간 동안 임팩트 있게 보여줘야 하는데 그 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여서. 할리우드에서 연기자로 성공하는 일은 전 세계의 배우(그리고 지망생)들에게 꿈만 같은 목표일 것.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할리우드로 모여들게 되는데, 그 가운데 라틴 계열 여배우들은 할리우드 진출 초반엔 대개 섹시함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셀마 헤이엑이 그랬고, 에이자 곤잘레스가 그랬다.
<히트맨>의 여주 아드리아 아르호나 또한 마찬가지일 수 있었다. 근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도 할 수 있을 터.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이 어여쁜 배우는 이번 작품이 데뷔작은 아니지만 할리우드에선 여전히 뉴페이스나 마찬가지여서 어쩌면 정형화된 캐릭터에 머물 수 있었는데, 그녀는 마스크 자체가 물론 아름답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섹스어필하다고 하기 보단 참 착하게 생겼다(?). 그리고,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이야기하긴 힘들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의 캐릭터)는 마치 고전 하드보일드의 이른바 ‘팜므 파탈’의 위치를 점하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배우.
<비버리힐스 캅: 액셀 F> 마크 몰로이 감독 / 에디 머피 등

국내 흥행에서 그렇게까지 크게 성공하진 못했던 걸로 아는데, <비버리힐스 캅> 시리즈 세 편을 모두 극장에서 본 기억이 있으니 나도 참 어렸을 때부터 영화는 좋아했던 모양이다. ^^;;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 언제 개봉했나 살펴보니 1984년. 무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일(물론 국내 개봉은 그보다 한두 해 뒤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 에디 머피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어 보일까. 나는 머리도 하얗게 변했고(그나마 머리가 ‘많이’ 빠지지는 않았다는 점에 위안을 삼아야 할까) 배도 나온, 그야말로 아재가 되었는데 액셀 폴리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네.
아무튼 이번에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돌아온 새 시리즈는, 변함 없는 액셀 폴리만큼이나 달라진 게 없다(?!). 그러니까, 참 ‘옛날 영화’ 같다는 것. 주인공도 그렇고, 주변의 캐릭터들도 그렇고, 갈등 요소도 그렇고, 적당히 치고 빠지는 사건들도 그렇고.
연출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나 딱히 되새길 만한 지점이 뾰족하게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옛날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반가운 작품이었다. 뭐, 아재 입장에선 그런데… 요즘의 젊은 시청자(관객이 아닌)들은 ‘이런 영화’를, 좋아할까 어떨까?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 바깥은 무척이나 후텁지근하다. 게다가 구름이 잔뜩 끼어있고, 오늘밤엔 장맛비가 꽤 많이 내린다고 한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시원한 맥주나 몇 병 사서 더운 날씨를 잊게 할 영화나 보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