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관객을 압도한다

과학적으로나, 합리적으로나 도통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이 벌어지는 일에 대해 사람들은 두려움을 갖게 마련이다. 과학기술과 첨단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마찬가지일진대 원하는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던 까마득한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은 오죽했으랴. 그래서 사람들은 그와 같은(대부분 불길한) 일이나 현상을 한 데 뭉뚱그려서 마음 속 깊은 곳에 위치한 상자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아서는 열쇠로 굳게 잠가버리곤 했다. 그러면서 그런 일들은 ‘우리(사람)가 닿을 수 있는 한계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로 백안시하는 정책을 견지했으니, 여기에서 그 상자의 이름은 바로 ‘미신’이다.

또한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은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말하자면 종교인. 그러고 보면 종교의 역사만큼 미신의 역사도 오래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타당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필모그래피 내내 다양한 종교(와 그 주변의 인간군상)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은 장재현 감독이 한국 특유의 무속신앙을 조명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파묘(破墓, Exhuma)>는 2024년 상반기 극장가에서 단연 손꼽히는 기대작이었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했던 <범죄도시 3>와 <서울의 봄> 정도를 제외하고 한국영화는 유독 힘을 쓰지 못한 상황에서, 최민식과 유해진 등의 베테랑, 김고은과 이도현 등 뉴페이스 배우들로 캐스팅 라인업이 구성되었고 장재현 감독 또한 전작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 등에서 만만찮은 공력을 과시한 상태였기에 기대는 더 컸다.

2024년 2월 개봉 <파묘> 베테랑과 뉴페이스 배우 캐스팅 라인업의 조화

우선 흥행 측면에서 말하면, <파묘>는 개봉 일주일 만에 손익분기점 330만 명을 넘었고 그 기세가 당분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근일 내에 개봉하여 경쟁을 벌일 것으로 생각되는 작품은 <듄 파트 2> 정도 밖에는 없는데 메인 타깃으로 삼는 관객층이 아예 다르기 때문. 무엇보다 한국에서 장기 흥행 레이스에 돌입한다고 했을 때에는 평소 영화관 발길이 뜸한 중장년 관객들이 많이 들어야 하는데, ‘후손이 흉흉한 일을 겪으면서 조상의 묘를 파내야만 하는’ 이야기는 중장년들이 크게 흥미를 가질 만한 테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파묘>는 다음의 내용을 담고 있다. ‘MZ세대 무속인 콤비’인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한국인 사업가 박사장을 만난다. 어렵게 얻은 아이가 시름시름 앓는데, 현대 의학으로는 완치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 화림과 봉길은 집안 조상의 묏자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베테랑 지관인 상덕(최민식)과 영득(유해진) 콤비를 만나 이장(移葬)을 논하게 된다. 그러나 집안 큰 어른의 묏자리를 직접 살펴본 상덕은 “이 일은 못하겠다”고 난색을 표하는데, 주변의 만류와 권유로 결국 ‘묘를 파냄과 동시에 혼령을 위로하는’ 대살굿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어지는 사건과, 사건들.

작품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파묘>가 표방하고 있는 오컬트(Occult) 장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오컬트란 일종의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초래되는 공포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장르인데, 여기에서 주목하는 대상은 신화나 설화처럼 예로부터 전승된 문헌이나 구전에 실제로 기록되어 있는 미지의 존재나 현상이다. 단순히 인간을 해하려는 괴물이나 귀신 등, 인간이 아닌 존재가 등장하는 공포 장르와는 차이가 있다. 오컬트 장르의 대표적인 작품은 공포 장르에서도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은 <엑소시스트>와 <오멘> 등이 있다.

오컬트, 나아가서 공포 장르는 전 세계적인 기준으로 봐도 결코 대중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안 그래도 작디 작은 시장에서, 전술했듯 필모그래피 내내 오컬트 장르를 일관적으로 ‘파고 있는’ 장재현 감독은 그래서 참 특별한 창작자다.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 모두, 흥행에선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 작품들이 거둔 성취는 특별히 주목할 만하고 나름 팬덤이 구축된 것 또한 의미 있는 상황.

그렇다면 이번 작품 <파묘>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성공적인 오컬트 장르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작품 자체에 대한 개별 관객의 선호와는 별개로, 안타깝지만 긍정적인 답을 내놓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전체 6장(章)으로 구성된 작품에서, 중반까지는 그야말로 해당 장르의 교과서라고 할 만큼 적절하게 관객의 궁금증과 호흡까지도 능수능란하게 요리하는 감독의 능력을 만끽할 수 있다.

‘MZ 세대 무속인 콤비’, 쌔끈하다!

문제는 후반 부분.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한다면 ‘그냥 장르 자체가 바뀐다’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대략 호불호가 팽팽하게 갈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비판적 시각에 대해서. ‘초반의 압도적인 분위기가 마지막까지 이어졌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호의적 시각에 대해서. ‘더 많은 관객이 받아들이기 쉬운 선택을 한 것이다’라는 입장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 중에서 개인적으론 전자 쪽에 더 마음이 기우는 것이 사실.

그럼에도 그보다 큰 미덕이 <파묘>에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선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화림의 대살굿 장면. 원래 무당이 굿을 하는 장면은 어떤 콘텐츠에서건 인상적인 스펙터클일 수밖에 없는, 말하자면 ‘절대(거의) 실패하지 않는 카드’. 이런 장면이 대단히 이색적인 서양 관객은 물론, 그나마(?) 익숙한 동아시아 관객에게도 마찬가지. 그런데 화림의 굿 장면은, 그 안무(?)가 실제 무당의 굿을 얼마나 실제에 가깝게 표현했는지 아니면 그저 ‘영화적 상상력’을 부여한 결과인지 여부를 떠나서 한 마디로 끝내주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압도적인 흡입력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의외로(?) 바다 건너 LA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중반 부분에서 결국 ‘그것’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굉장히 빠른 호흡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감독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에 빈틈없이 들어찬 구성이 돋보인다. 중반 이후 장르가 바뀌는 지점에 대해, 개인적으로 다소 못마땅하다고 하긴 했지만 솔직히 중반 이후로도 관객을 압도하는 분위기는 계속 이어진다. 갈등의 해결 방법이 너무 의외인 게 불만이라면 불만인 거지.

배우들의 연기도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특히 영화에서 비중 있는 배역을 처음으로 맡은 이도현 배우는 굉장히 쌔끈한(?) 신세대 무속인의 모습을 훌륭하게 보여줬다. 듣자 하니 영화 속 봉길의 비주얼은 장재현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을 위한 취재 중 만난 실제 무속인의 모습을 많이 참고했다고 하며, 참 생소한 사실 한 가지를 덧붙이면 ‘요즘 실제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수익도 많이 내는 무속인들은 의외로 나이가 매우 젊다’고 한다.

다만 최민식 배우에 대해선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하나 있다. 아주 솔직히, 뱃살 많이 거슬린다;;; 지금 비슷한 연배 중에 그만큼 뱃살 관리 안 되고 있는 배우 있나? 최민식이란 배우는 그냥 이목구비 그 자체가 그대로 스펙터클인 몇 안 되는 한국 배우란 것이 사실인데,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카지노> 때부터 참… 눈길이 딱 머무는 곳이 하필이면 뱃살이라니. 베테랑의 아우라도 좋지만, 아직은 더 ‘샤프한’ 매력을 풍기는 배역을 맡을 수 있는 연배 아닌가!

한 마디로 ‘끝내줬던’ 대살굿 장면

마지막으로 한 가지, <파묘>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한국영화 한 편을 언급하려고 한다. 많은 이들이 눈치를 챘겠지만, 그 다른 영화란 바로 <곡성>. 일단 외견상 같은 장르로 구분할 수 있는 만큼 두 작품을 비교하는 일은 나름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두 작품은, 애초부터 지향하는 바가 전혀 다르다. 동일한 질량으로 비교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 거칠게 말해서 <곡성>이 공포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그를 둘러싼 인간의 심리에 천착했다면 <파묘>는 그보다는 훨씬 담백하게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을 취했다(이런 언급은 두 작품 각각의 엔딩을 보면 확실하게 파악이 가능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쨌든 <파묘>는 <곡성> 이후 만난, 한국영화가 거둔 높은 수준의 성취에 속하는 작품임이 명백하다. 별 망설임 없이 추천할 만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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