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부모님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 어떤 특별한 질환 때문이라기보단 워낙 연세가 많이 드셨으니 한번 다운된 컨디션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고(못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래서 병원도 자주 다니시고, 약도 많이 드시고 하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
부모님 모두 거동을 전혀 못하시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예전처럼 밥 짓고 빨래 하고 청소기 돌리고 하는 일을 하시기엔(특히 어머니의 경우) 어려운 수준이니 자연스럽게 자질구레한 집안 살림은 막내아들인 내 몫으로 돌아오게 됐다. 사실 나 혼자 살면 이렇게 거의 매일 정성스럽게 밥을 하거나 반찬을 만들거나 하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부모님은 약도 드시고 하시기에 밥을 드셔야 하니.
아무튼 그런 와중, 어머니는 유독 김치찌개를 자주 먹고 싶다고 하신다. 아들이 해준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대나 뭐라나. 아들 입장에선 감사할 따름이지만 솔직히 조금 귀찮을 때도 있다. ^^;; 그런데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내가 끓인 김치찌개는 내가 먹어도 맛있다! 그 비결? 간단하다. 미X(MSG), 연X, 치킨스톡 같은 인공감미료를 아낌없이 쓰는 것이다. 뭔가 지지고 볶는 반찬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로 굴소스나 맛간장 같은 재료들을 팍팍 넣으니 인기가 좋다(?).
단순한 우스갯소리 같지만 연로하신 분들의 입맛을 돌게 만든다는 건 나름 중요한 문제다. 노인들의 경우 신체의 모든 부분과 마찬가지로 맛을 느끼는 미각세포도 퇴화된다. 그런 이유로 ‘늙으니 입맛도 없어진다’고 하면서 식사를 자주 거르는데, 그렇게 되면 자연히 기운도 없어지고 골다공증 같은 질환이 더 큰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게다가 대부분 노인들은 이런저런 약도 많이 복용하는데, 약을 복용하려면 식사는 반드시 필요한 것.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공감미료의 바로 그 맛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며, 입맛 당기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너무 많이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맛이 없어서 못 먹겠다는 이야기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매력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인공감미료의 맛과 비슷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사설을 길게 풀었다. 마석도 형사는 목표를 향해 갈 때 뭔가 복잡하거나 에둘러가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은 ‘범인을 체포’한다기보단 ‘나쁜 놈을 (때려)잡는’ 것.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하는 철학적 개념까지 끌어올 필요는 없겠지만, 마석도 형사의 이런 모습은 사실 관객이 가장 원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마동석은, 그 스스로 이 시리즈의 대체불가 주연이자 제작자로서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범죄도시>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에 연달아 네 편이나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범죄도시 4>에서 특히 장점이라고 할 만한 부분은 1편에 이어서 마석도 형사의 경찰 동료 캐릭터들이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2편까지만 해도 전일만 반장(최귀화 분)이 마치 사이드킥처럼 활약을 했는데 3편에 와선 마석도의 동료들은 병풍이나 다름없었던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런데 이번 4편에선 아예 동료들이 활약할 수 있는 공간적 배경이 한국과 필리핀, 혹은 현장과 온라인 공간으로 제각각 이원화되면서 구성이 더 다채로워졌다.
앞서 이야기한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 주인공 마석도가 얼마나 화끈하게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지, 그러니까 액션 장면은 과연 볼만한가 따져보면 물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범죄도시> 시리즈에선 각 작품마다 매우 야심적인 롱테이크 액션 장면(주로 일대다, 혹은 다중 결투)이 나오는데 이번 4편에선 메인 빌런 백창기(김무열 분)가 단검을 들고 여럿과 대결을 하는 장면이 백미. 한 가지 지적하자면 배경이 너무 어두워서 동선이 잘 안 보였다는 것.

이 작품 <범죄도시 4>에 단점이 없는가 하면, 당연히 그렇진 않다. 개인적으론 과묵하면서도 서늘한 눈빛을 가진 백창기가 나름 인상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범죄도시> 시리즈 하면 떠오르는 불세출의 악당(?) 장첸이나 강해상에 비하면 뭔가 밀리는 느낌이다. 물론 장첸과 강해상은 설정상 일찍부터 ‘길거리 출신’이었기 때문에 뭔가 가까이 하기 두려운 범죄자의 느낌을 주고 백창기는 용병 출신으로 효과적인 살인 방법을 몸에 익힌 프로페셔널이란 느낌을 주기에 그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사실이다.
그리고 솔직히, 액션 장면을 제외한 드라마 부분에서의 연출은 흡사 2000년대 초반 TV 드라마 보는 듯하고 밀도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사실 마석도 같은 캐릭터의 심리를 보여주고자 할 때 결코 쉽진 않을 것 같긴 하다. 그렇다고 맥주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고 기분 따라 길거리 양아치를 두들겨 패는 독고다이 경찰이라니, 이건 너무 얄팍하지 않은가 이 말이다.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맛이라는 게,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맛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말하자면 ‘(내)취향은 아니라고 할 수는 있을지언정 맛이 없다고 하기는 어려운’ 맛이라는 것. 그런 만큼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관객들은 <범죄도시 4>에, 이 시리즈에 열광할 것이 분명하다.
주변에서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제작자’ 마동석은 그 외모와는 달리(?) 비즈니스에 있어선 매우 영민한 사람이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시리즈의 가장 큰 가치를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 그가 인터뷰에서 직접 전했듯이 <범죄도시> 시리즈는 이번 4편을 마지막으로 일단 1부(페이즈 1)의 막을 내리고 일정한 준비 기간(적어도 2년)을 가진 뒤 새 시리즈를 선보일 것이라고 한다. 2년 뒤에도 마석도의 주먹은 여전하겠지만, 한껏 높아진 관객의 기대치를 얼마나 맞출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