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9년 개봉한 영화 <아바타>는 그야말로 놀라운 시각적 경험이었다.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 사이에는 간극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고 3D / 4DX 같은 특별관에서의 체험은 이전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영화 관람이란 행위 자체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아바타> 이야기를 할 때 반드시 언급하게 되는 부분은 바로 ‘규모’에 관한 것. 실제로 <아바타>는 개봉 당시 영화 역사상 가장 큰 흥행 성공을 거뒀고 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여기에서 간과하면 곤란한 사실: <아바타>는 흥행 기록도 역대급이지만 제작비 또한 역대급이다. ^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 개봉한 후속작, <아바타: 물의 길>의 경우 제작비가 전편보다도 훨씬 증가했는데, 이는 후속편은 물론이고 이어 제작될 3편과 그 이후의 작품들(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번 <아바타: 물의 길> 흥행 성적에 따라 이후의 작품들이 다 만들어지고 개봉을 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을 위한 제작비이기도 하다는 측면에서 수긍이 가는 측면은 있다. 뭐, 수긍을 안 하면 어쩔 건데? 라면 할 말은 없지만. ㅎㅎㅎ
전편을 꽤 재미있고 인상적으로 봤다고 하는 이들 중에서도 이야기에 특히 감명받았다(?)고 할 만한 이는 극히 드물 것이다. 원주민을 폭력적으로 내쫓는 개척자들의 이야기는 그냥 1960년대를 전후로 해서 흥했던 수정주의 웨스턴으로부터 그대로 빌어온 것이나 다름 없으니. 사실 이번 후속작에서도 마찬가지. <아바타: 물의 길>은 전작으로부터 15년이 흐른 뒤를 배경으로 한다. 판도라의 자원을 노리고 침탈한 지구인들에 맞서, 원주민 나비족과 제이크 설리(‘아바타’를 통해 나비족의 일원이 된) 등은 판도라 수호 전쟁을 치러 승리를 거둔 상황. 그러나 탐욕스러운 지구인들은 또다시 판도라의 바다에 사는 거대한 해양생물 ‘툴쿤’(지구로 치면 고래에 해당하지만, 툴쿤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바닷가 부족에겐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그려지며 일정 부분 의사소통도 가능하다)으로부터 채취할 수 있는 자원을 얻기 위해 판도라에 2차 침공을 가한다.

한편 제이크와 네이티리 가족(아들 둘, 딸 둘까지 둔 대가족이 되었다)은 자신들을 노리는 지구인들 때문에 부족 전체에 피해가 가자 나비족의 거주지 숲을 떠나 바닷가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만난 바닷가 부족은 그들에게 배타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 과정에서 또 새로운 드라마가 만들어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바타: 물의 길>은 그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작정을 하고’ 신비롭고 환상적인 바닷속 세계를 구현해냈다. 영화에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약 30여 년 전만 해도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대상’이 바로 액체(물)였다는 건 주지의 사실인데 이젠 정말 그런 것도 옛날 말이 된 듯. 물론 여기엔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 본인의 관심과 경험이 녹아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어비스>와 <터미네이터 2>(의 ‘액체 터미네이터’ T-1000)와 <타이타닉> 등을 연출하면서 ‘물’에 관한 관심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실제로 그는 민간인으론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인 마리아나 해구(수심 무려 1만 Km가 넘는다)까지 잠수를 한 기록을 갖고 있고, 해양 생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경력도 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일종의 ‘임사(Near-Death) 체험’을 하면서(아무것도 안 보이는 깊은 바닷속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삶에 대한 가치관까지 변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는 호사가들도 있을 정도다. 당장 <아바타> 시리즈만 봐도 급진적인 환경과 생태 보존으로서의 관점을 읽는 것은 어렵지도 않다.

그렇다면, <아바타: 물의 길>의 기술적인 부분은 어떨까? 말할 것도 없이 천의무봉(天衣無縫: 천상계의 옷은 바느질 자국조차 없을 정도라는 말로, 부자연스러운 곳이 전혀 없고 완벽하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도대체 어디부터가 CG고 어디까지가 실사인지 감도 못 잡을 정도고, 특히 내가 본 3D 플랫폼에선 그야말로 판도라 행성의 아쿠아리움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놀라운 경험을 제공한다. 한쪽에선 또 지구인들이 바닷속에서 판도라의 원주민들과 만나는 장면도 나오니 도대체 그런 장면들이 어떻게 ‘합쳐진’ 것인지도 궁금하고.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아바타> 시리즈가 앞으로 몇 편이나 더 나오게 될지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1백 년이 훌쩍 넘는 영화 역사에서 어쩌면 참 도발적(?)인 위치를 (본의 아니게)차지하게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관한 것이다.
어쩌면 <아바타> 시리즈는, ‘(사람)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펼치고, 그 과정을 촬영한 물리적인 소스를 편집 과정을 통해 연결한 결과물을 관객 앞에서 상영한다’는 영화의 기본 전제와 그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분명히 얘기하지만, 이것은 당위(Sollen)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존재(Sein)의 문제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겠다.
내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직 영화 관람 경험이 많지는 않은)중학생 자녀와 함께 <아바타: 물의 길>을 본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그 지인은 중학생 자녀가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아이 왈)이 영화에 배우가 나오긴 한 거야?’ 라더라. ㅋㅋㅋ”라는 말도 전했다. 극장 앞에 붙어있던 포스터엔 이 작품에 출연(?)한 배우의 이름이 써있는데 정작 영화에선 그 배우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는 말이었던 것.

바야흐로 컴퓨터 그래픽으로 ‘없는 것도 있게 하고, 있는 것도 없게 하는’ 일이 가능해진 시대다. 자본과 시간이 문제일 뿐, (시각적으로)구현할 수 없는 게 사실상 없는 요즘에, 히치콕 감독이 평생을 통해 완성한 스릴러/서스펜스의 가치나, 누벨바그 세대가 당대에 던진 대담한 질문이나, <대부>에서 ‘알 파치노가 그냥 눈에 힘만 주고 있는 걸 클로즈업으로 잡았더니 한 씬이 완성되었던’ 장면이나, <비정성시>에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구현한 수묵화의 감성이나, <아가씨>와 <헤어질 결심>에서 박찬욱 감독이 완성한 변태적(…)인 미장센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그의 작품에서 보여준 담담한 관조가 ‘영화’에서 여전히 중요하다고 외치는 게 타당한가? 다소 방어적으로 대답하자면, 글쎄, 난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찾지 못하겠다.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하면, 거기에 대해선 정확히 답할 수 있다. 그 다른 질문이란 ‘그래서 <아바타: 물의 길>은 볼만한 영화인가?’라고 묻는 것인데, ‘물론 그렇다’고 답하겠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은 확실히 길지만;; 지금 극장가에서 이만한 작품을 또 만날 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