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취미는 템빨’이란 명제 하에, 얼마 전 꽤 큰 ‘지름’을 단행했다. 예전부터 일렉트릭 기타를 치고 싶어서 조카가 대학 시절 쳤던 물건을 갖다 놓고 집에서 조금씩 연습도 하고 레슨도 받고 했는데 좀처럼 진도가 안 나가던 중, 앰프나 이펙터도 연결할 필요가 없고 그저 몸통에 자체 스피커가 내장되어 있고 스마트폰 앱과 연동해서 다양한 소리도 낼 수 있는 ‘스마트기타’란 물건에 꽂혀서 냉큼 하나 장만한 것.
비싸다면 비싸고, 또 기능에 비해 저렴하다면 저렴하다고도 할 수 있는 물건인데 아무튼 무이자 할부로 구매한 후 방 구석에 멋지게 세워놓고 흡족해하며 지켜보고 있다(?). ^^;; 물론 연습도 조금씩 하고 있는 중.
그래서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전부터 보고 싶었던 작품들을 시간이 되는대로 보고 있다. 그렇게 보게 된 영화와, 드라마들에 관한 이야기.
<시라트> 올리베르 라시 감독 / 세르지 로페스 등 출연

조금이라도 관심이 가는 개봉작에 대해선 관련 정보를 일부러 찾아보려고 하지 않아도 평소 자주 들르는 영화 관련 커뮤니티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곤 한다. 간단한 내용은 물론, 연출한 감독과 출연한 배우 등. 경우에 따라선 관객들의 반응이나 평론가들의 언급을 확인하게 되기도 하고.
<시라트>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반 공개되었다는 점과 소지섭 사장님(!)의 회사 ‘찬란’이 수입해서 공급했다는 점만 사전에 알고 있었고 일부러 관련 정보를 전혀 찾아보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보고 싶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느낀, 이 당혹스러운 감정이란. 미리 관련 정보를 좀 찾아볼 걸 그랬나? 아니, 오히려 정보를 알았다면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을 듯해서 그냥 아무 정보 없이 본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가 시작하면 황폐한 사막을 배경으로 해서 사람들이 야외 행사에 쓰이는 커다란 스피커와 앰프들을 세팅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테크노 음악. 이른바 ‘레이브 파티’가 펼쳐지는 건데,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 모습은… 아니, 그걸 단순히 춤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몽환적이고 흡사 제의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속된 말로 하면 ‘뽕’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사람들 사이를 다니면서 한 여자아이의 사진을 건네는 남자가 있다. 루이스는 ‘레이브 파티에 간다’는 말 한 마디와 함께 가출한 딸을 찾아 어린 아들인 에스테반과 함께 모로코의 사막까지 온 것.
그러다가 일단의 군대가 현장에 도착하고 파티는 강제로 중지된다. 파티를 즐기던 군중도 해산되는데, 그들 중 일부가 군대의 명령을 거부하고 트럭을 탄 채 도주하면서 다른 파티 장소로 찾아가려고 한다. 얼떨결에 이들과 합류하게 된 루이스, 그리고 그의 아들 에스테반.
내용을 주워섬기고는 있지만, 본작은 내용이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점철되어 딱 한 번 보고는 도대체 뭔 영화인지 설명하기 참 어려운, 그야말로 ‘영화제용 영화’라고나 할까? 물론 이야기가 진행하면서 정말이지 충격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사건도 벌어진다.
일정 정도 해석이 필요하단 점을 확인하면, <시라트>란 제목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본작의 제목은 꾸란에 나오는 말로 천국과 지옥을 연결하는 다리라는 뜻. 영화 시작 부분에 자막으로도 나오지만 ‘머리카락보다 얇고, 칼날보다 날카로운’ 게 바로 ‘시라트’라고 한다. 말하자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위태로운 이들을 조명하는 걸로 보이기도 한다. 마침(?) 배우들 다수(나중에 확인한 건데 루이스와 에스테반 역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은 전문 배우가 아니고 레이브 파티를 찾은 감독과 제작진이 현장에서 즉석 캐스팅을 했다고 한다)는 신체 일부가 훼손된 장애인이거나, 인종적으로 이민자를 연상시킨다. 거기다 극중에서 군대가 군중들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EU 시민들은 별도로 이동하시오”란 주문까지 하고 있으니, 최근 유럽 각국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취급이 어떤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시라트>가 단순히 이민 문제만을 조명한 영화라고 하기엔 섣부른 감이 있다. 마치 로드무비처럼 등장인물들은 하염없이 떠돌면서 위험천만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고, 바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충격적인 사건도 벌어지는데 이 모두가 어떤 메타포를 연상시킬 수밖에 없는 것. 단지 무엇 하나 똑 부러지게 설명하기는 참 힘든, 그런 작품. 그리고, 뭔가 먹먹한 엔딩.
작년과 올해 열린 유수의 영화제와 각종 시상식에서 여러 차례 노미네이트되었고 실제 수상도 했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추천을 할 만한 작품인가 다시 생각해보면, 음 글쎄.
<원더맨> 케빈 파이기 제작 / 야히아 압둘 마틴 주니어, 벤 킹슬리 등

총 에피소드 8편으로 구성된 1시즌이 지난 달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각 에피소드도 러닝타임이 불과 30분 내외 정도니, 부담 전혀 없이 가볍게 볼 수 있는 드라마 시리즈. ‘부담도 없고, 가볍게’ 볼 수 있다고 한 건 단지 러닝타임 때문만은 아니다. 본 시리즈 자체가 내용도, 연출도 유쾌하면서도 깜찍하고 유쾌한(?) 그런 모습.
엄연히 슈퍼히어로 장르의 드라마이면서도, 주인공 사이먼(야히아 압둘 마틴 주니어)이 어떤 계기로 슈퍼 파워를 얻게 되었는지 극중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것도 특이한 점. 아무튼 사이먼은 잘 안 풀리는 배우인데 일거리도 떨어지고 하면서 절반은 백수 신세. 그에겐 어렸을 적 사망한 아버지와 함께 관람한 영화 <원더맨>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있는데, 무려 오스카 수상자인 감독이 새로 연출하는 <원더맨> 리메이크작의 주인공 캐스팅 오디션을 볼 천재일우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데, 그게 순전히 우연일까? 그건 그렇고, 진작 MCU 세계관에 배우로 출연했던 다른 배우, 트레버(벤 킹슬리)가 등장한다. 그가 누군가? <아이언맨 3>에서 희대의 테러리스트 만다린 역을 맡았던(그야말로 ‘맡았던’이란 표현이 딱 맞는다) 바로 그 배우 아니던가! <원더맨>에서도 여전한 연기력(?)을 과시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글을 읽어본 독자들은 다소 헷갈릴 수 있는데, <원더맨>에 출연한 배우들과 캐릭터들을 개별적으로 언급하는 대신 일부러 혼동하도록 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본작은 주인공 캐릭터의 직업이 아예 배우이고, 극중에서도 <원더맨>이란 작품(속 작품)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기 때문.
마지막 에피소드에서의 카타르시스가 무엇보다 탁월했다. 모처럼 참 소소한 재미를 준 마블의 슈퍼히어로 작품. 다만 본작의 ‘원더맨’ 사이먼이 MCU, 그러니까 영화의 세계관에 출연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고 그냥 개별 작품으로만 존재할 것 같다.
<스프링스틴: 광야의 노래> 스콧 쿠퍼 감독 / 제레미 앨런 화이트 등

제목 그대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생애(중 일부)를 그린 전기 영화. 솔직히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다고 하긴 힘들지만 미국에선 이른바 ‘국민 가수’의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뮤지션이 바로 그. 일단 ‘보스’란 별명이 꽤 유명하기도 한데, 그래도 우리나라에선 그의 많은 노래들 중 <Born in the U.S.A.>가 그나마 제일 많이 알려진 곡일 터다.
잠깐 <Born in the U.S.A.>에 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 한 가지를 전한다. 이 곡이 발표된 1984년은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캠페인이 벌어지던 때. 레이건이 누군가? 공화당 출신 대통령 중에서도 보수주의의 극에 달했던 인물이고, <Born in the U.S.A.>의 후렴 부분만 듣고 흡족해하며(!) 이 곡을 마치 선거 캠프의 로고송처럼 사용했다. 그런데 정작 노래의 가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돌아온 젊은이가 자신이 생각했던 조국, 미국의 달라진 모습에 심한 자괴감을 느끼는 내용. 그냥 흥겨운 멜로디와 강렬한 록 비트, 그리고 무엇보다 후렴 부분의 바로 그 가사(‘Born in the U.S.A.’의 반복) 때문에 엉뚱하게 해석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유하자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나온 이가 노래 제목하고 후렴 부분만 듣고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을 로고송으로 쓰겠다고 나선 격.
영화에선 아예 나오지도 않는 이 에피소드를 길게 이야기한 건, 나오지 않아서 아쉽기 때문(?)이다. 실존하는/했던 뮤지션을 다룬 많은 전기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스프링스틴: 광야의 노래>도 주인공의 인생 중 어느 한 부분을 특히 주목하면서 그의 음악 세계를 조명하려고 하는데, 본작의 경우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불우했던 유년 시절(아버지의 폭력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로 인해 우울증을 겪은 일화를 중점적으로 조명했다. 그리고 현재의 인기에 안주하여 그저 비슷비슷한 곡들을 찍어내듯 내놓는 일에도 염증을 느껴, 오히려 (다시 재현하기도 힘든)투박한 사운드와 내면으로 침잠하는 듯한 어두운 분위기와 내용의 노래를 내려고 하고 이 때문에 레코드 제작사를 비롯한 주변의 인물들과 갈등을 빚는 내용도 보여준다.
이런 부분들은, 이전부터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잘 알고 있던 관객들에겐 흥미로운 지점일 수 있으나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관객들에겐 그다지 끌릴 만한 부분이 아니다. 차라리 지금, 그러니까 2026년 폭주기관차처럼 난폭하게 굴고 있는 트럼프를 겨냥해서, 차라리 저 에피소드 부분을 집중 조명했으면 지금의 관객에게 더 인상적으로 남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불과 며칠 전,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트럼프(와 ‘21세기판 서북청년단’이라고 할 수 있는 ICE)를 대차게 까는 곡 <스트리트 오브 미네아폴리스>를 내놓지 않았던가!
주인공 브루스 스프링스틴 역을 맡은 제레미 앨런 화이트는 보면 볼수록 참 닮았다. 그의 젊은 시절 영상이나 사진을 많이 본 건 아닌데 진짜 어디서 저렇게 똑같이 생긴 배우를 데려온 건지 참 ㅎㅎㅎ 그리고 연기도 좋았다. 문제는, 괜히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그의 기타 연주 장면이 시원하게 보여지질 않는다는 것. 극중에서 스프링스틴은 작곡을 하며 어쿠스틱 기타를 아주 잠시, 그저 몇 번 튕기는 정도만 나오거나 아니면 무대 위 공연 장면에선 아예 뒷모습만, 혹은 손 부분만 (일부러 그랬을까?)프레임 밖으로 잘려져 있다. <컴플리트 언노운>에서 모든 곡을 직접 연주하고 직접 노래한 밥 딜런 역 티모시 샬라메만큼 되진 않더라도 ‘아 이건 좀…’ 하게 되는 부분.
나름 기대했던 작품인데 여러 모로 좀 아쉽게 되었다. 그래도 그의 대표곡 <Born in the U.S.A.>나 <Born to Run> 같은 오랜만에 다시 들을 수 있었던 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