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에 돌아보는 아메리칸 뉴 시네마

지난 번, 영화 <네 멋대로 해라>와 <누벨바그> 두 편을 연달아 보고 쓴 리뷰 기사를 다시 살펴보니 옛날 생각이 떠올라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영화 ‘공부’에 목을 메던 시절. 영화를 영화보단 책으로(요즘처럼 어디에서든 영화 전편을 쉽게 구해서 볼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ㅠㅠ) 공부하던 시절, 단편영화를 만들겠다고 제작비 마련을 위해 선후배들과 함께 아르바이트 전선에 나섰던 시절. 모두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런 영화 공부의 과정에서, 다양한 사조들이 1백 년이 훌쩍 넘는 영화 역사에서 조명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영화라는 매체의 초창기에 주목 받았던 독일 표현주의, 이념 투쟁이 한참 치열했던 때 특히 중요시되었던 소비에트 몽타주(인류 역사상 최초로 ‘영화’란 매체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국립 기관이 세워진 나라가 어딘가? 바로 소비에트 연방 아니던가!), 전후 피폐한 사회상을 담은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과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역시 후대에도 큰 영향을 끼친 누벨바그 등.

그렇게 다양한 영화 역사의 사조들의 중심에 섰던 감독들, 그리고 그들의 대표작들 중 그래도 손꼽힐 만한 작품들은 나름 챙겨봤다고는 생각하는데, 그러면서 해당 사조에 속한 작품들을 그나마 좀 많이 보기도 했고 나에게도 나름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이름이 있어 다시 한번 되새겨보려 한다.

그 이름은, 바로 ‘아메리칸 뉴 시네마’.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걸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아메리칸 뉴 시네마는 대략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미국 영화판에서 벌어진 움직임을 말한다. 아서 펜, 마이크 니콜스, 데니스 호퍼 같은 젊은 감독들이 직속 선배들이라고 할 수 있는 누벨바그 1세대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재미있는 점은 바로 그 누벨바그 1세대야말로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초창기 장르 영화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역시 세상만사 돌고 돌고~) 일궈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 세대가 뭔가 새로운 무브먼트를 시행하고자 할 때 제일 먼저 꺼내 드는 캐치프레이즈는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안 그런 적이 없다! ㅋㅋㅋ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주인공들은 척 봐도 뭔가 문제가 많아 보이는 이른바 ‘안티 히어로’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아서 펜 감독)의 주인공 보니와 클라이드는 아예 은행강도들이고, <이지 라이더>(데니스 호퍼 감독)의 등장인물들도 날건달에 대마초나 피워대는 폭주족들. <졸업>(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주인공 벤자민(더스틴 호프먼)은, 일류대학 나온 멀쩡한(?) 젊은이인가 했더니 아뿔싸 여친 엄마랑 바람을 피우네. ‘이런’ 영화들이 주루룩 나왔던 1960년대 중후반을 생각해보자. 그 때를 기준으로 불과 10여 년 전인 1940년대~50년대만 해도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 아니면 그레고리 펙이나 로렌스 올리비에, 제임스 스튜어트 같은 배우들이 주인공을 맡을 땐데 날건달에 은행강도가 주인공이라니, 정말 언감생심이 따로 없지 않나 이 말이다.

영화를 물리적으로 이루는 요소들도 이전까지의 작품들과 사뭇 달랐다. 일단 독립 제작 방식을 취했으니 기본적으로 예산이 적었고, 따라서 대규모 세트에서의 촬영이나 스케일 큰 스펙터클 같은 부분은 애초부터 염두에 둘 수가 없었다(게다가 당시 아메리칸 뉴 시네마에 속한 작품들은 내용부터가 그렇게 ‘큰’ 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누벨바그 1세대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광을 주로 이용했고, 경량 카메라의 보급으로 핸드헬드와 같은 다양한 기법이 시도되었다. 내용에 있어서도 (당대 사회상을 반영한)허무주의와 냉소주의가 많이 보였고, 파격적이고 거침 없는 폭력과 성 묘사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앞서 예로 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나 <이지 라이더>, <졸업> 같은 작품들은, 처음 접한 때로부터 거의 30여 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매우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조지 로이 힐 감독의 <스팅>과 <내일을 향해 쏴라>, 아서 펜 감독의 <작은 거인>(솔직히 <아바타> 1편 보고 ‘이거 <작은 거인>이랑 내용 비슷한데?’라고 생각하기도 ㅎㅎㅎ), 샘 페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 그리고 당시만 해도 팔팔한 청춘이었던 마틴 스콜세즈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 같은 작품들 또한 여전히 수많은 장면들을 아직 기억하고 있고.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자장에 놓여있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당연하지만, 이 쟁쟁한 이름들 또한 많은 후배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꼽는 작년 최고의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그 대표적인 후계자라고 할 수 있고 미학적 관점에선 코엔 형제나 노아 바움백/그레타 거윅 부부,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아노라>의 숀 베이커 등의 감독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모든 문화 사조가 그런 것처럼, 아메리칸 뉴 시네마는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했다. 베트남에서의 낭패감을 뒤로 하고, 산업 생산력과 경제력은 크게 발전했지만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은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던 시절의 모습이 작품들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것.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주옥 같은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2026년의 미국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적자,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최고의 성취를 보여준 2025년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같은 작품을 올해에도 또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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