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과 2025년, 65년의 세월을 건너 이어진 ‘새로운 물결(Nouvelle Vague)’

새해 들어서도 극장 개봉작 중에 그다지 땡기는 작품이 없다가 결국 한 편을 발견. 아니, 두 편. 그래서 꽤 오랜만에 ‘하루에 영화 두 편 보기’를 시전. 그것도 서로 다른 영화관에서! ㅋㅋㅋ 예전에도 영화를 하루에 두 편, 혹은 세 편까지도 본 적이 있긴 한데 그 땐 멀티플렉스여서 상대적으로 수월했지. 사실 이번에도 두 상영관의 물리적 거리가 그다지 멀진 않아서(차로 약 30분 가량) 가능했다.

근데, 아무래도 몸이 예전 같진 않아서 두 편째엔 솔직히 좀 피곤하기도 했다. ㅠㅠ

그렇다면 어떤 영화길래 이 게으른 아저씨로 하여금 하루에 두 탕씩이나 뛰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1백년이 훌쩍 넘은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큰 영향력을 끼친 작품들을 (굳이 순위를 따져서)리스트로 쭉 뽑아보면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꼽힐 만한 작품,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é)>와, 바로 그 영화를 만드는 일에 관한 영화, <누벨바그(Nouvelle Vague)>였다.

당연히 <네 멋대로 해라>는 예전에 본 적이 있긴 하다. 대학생 때 동아리 방의 작은 TV로 봤던 기억이 첫 기억이고, 이후에도 한두 번 정도 더 보긴 했는데 역시 TV나 모니터를 통해서만 봐서 작품에 집중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이렇게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당시엔 작품에 대해 그다지 깊은 인상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단한 영화라곤 하는데, 뭐 그렇게까지? 잘 모르겠네’ 정도였다고나 할까?

그리고 작년 연말쯤 <누벨바그>란 제목의 영화 예고편을 보게 되었다.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연출을 하는데 내용이 다름아닌 <네 멋대로 해라> 만들기! 이건 안 볼 수가 없지. 게다가 당시 예고편 화면 귀퉁이엔 ‘넷플릭스’란 자막이 떠 있어서 언젠가 공개되면 꼭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국내에선 극장 개봉을 하네? 물론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작품이(오리지널 작품을 포함해서) 극장에서 먼저 공개되는 게 드문 일은 아닌데, 이번엔 <네 멋대로 해라>의 재개봉 판권을 취득한 회사가 <누벨바그>까지 수입을 해서 공개를 하는 바람에 아마도 당분간은 넷플릭스 공개가 요원해진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 데다, <네 멋대로 해라>도 그렇고 <누벨바그>도 그렇고 솔직히 두 편 모두 한두 달 정도, 혹은 그 이상 장기 상영을 기대하긴 힘든 작품들이라 이번 기회가 아니면 두 편을 ‘한꺼번에’ 보기는 거의 어려울 듯하여 모처럼 큰맘 먹고 ‘하루에 두 탕 뛰기’를 시전한 것이다.

1960년, 새로운 물결의 시작을 알린 <네 멋대로 해라>

1960년, ‘새로운 물결’의 시작을 알리다

아무튼 <네 멋대로 해라>를 이번에 큰 화면으로 다시 보니 ‘저런 장면도 있었나?’할 정도로 새로운(…) 느낌이어서 역시 다시 보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예전엔 미처 모르고 넘어갔던 디테일까지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미 유명한 이야기지만 장뤽 고다르 감독은 <네 멋대로 해라>가 첫 연출작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에 영화평론을 기고하던 문필가 출신. 1950년대 후반 기준으로도 이미 수십 년 전 일정한 성취를 거둔 할리우드에 비해 지리멸렬하던 유럽 영화에 진저리를 치고서 직접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가 영화를 찍었다. 물론 그런 이가 그 혼자만은 아니었으니, 이미 <400번의 구타>로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물결’이 시작되었음을 알린 프랑소와 트뤼포가 있었고(장뤽 고다르와 프랑소와 트뤼포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에서 이후 모종의 이유로 크게 다투곤 갈라섰다. 그리고 트뤼포가 먼저 세상을 뜨기 전까지 둘은 절대 만나지도 않았고 공식 석상에서 마주친 일도 없다) 자크 리베트, 그리고 누벨바그 1세대 감독들 중 가장 늦게까지 현역으로 활동했던 클로드 샤브롤 등이 있다.

장뤽 고다르는 첫 작품에서 기존의 영화 관습(비평 측면에서나, 실제 영화 제작 측면에서나)을 크게 벗어난 시도를 많이 했다. 쇼트와 쇼트가 이음매 없이 연결된 ‘점프 컷’과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이동하면서 촬영한 ‘핸드헬드 카메라’ 등이 영화를 이루는 물리적 요소 부분에서의 시도라면, 완성된 시나리오 없이 매일 아침 직접 쓴 ‘쪽대본’으로 촬영을 했다는 점이나 배우들은 리허설 없이 그때그때의 즉흥적인 느낌과 인상만으로 연기를 했다는 점 등은, 그냥 영화 제작에 있어 모든 부분에서의 전복(顚覆/Subversion)이나 다름없었다고 하겠다.

여기에 더해, 작품 속에서 직접 다른 영화나 배우를 언급하는(주인공 미셸은 할리우드 배우 험프리 보가트의 추종자이며, 그가 작품 속에서 거의 항상 중절모를 쓰고 나오는 것도 험프리 보가트의 출연작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식으로 이른바 ‘메타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점이나, 전통적인 의미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주인공(미셸은 원래부터 좀도둑이며 경찰 살해범이기도 하다. 게다가 거의 항상 담배를 피워대는데 꽁초는 그냥 길거리에 버리기 일수다!).을 내세운 점, 인공적인 조명이나 세트 대신 자연광을 활용하며 길거리에서 경량 카메라로 촬영한 점 등은 이후로도 쭉 이어진 영화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네 멋대로 해라> 촬영 중, 감독과 배우들

여기에도 미처 언급하지 못한 많은 부분들이 영화적으로나 영화 외적으로나 동세대와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주지의 사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구시대적 관습에 반기를 들게 만든 <네 멋대로 해라>가 없었다면, 과연 68혁명이 가능했을까?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혁명은 한 1년 정도 늦춰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인다. <네 멋대로 해라>의 장뤽 고다르 감독은 지난 2022년, 향년 91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사인은 이른바 ‘조력자살’. 대상자나 가족이 의지를 밝히고 의료진이 직접 약물을 주입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대상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존엄사와 달리, 대상자 본인이 스스로 약물을 복용해서 죽음에 이르는 방식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 미셸은 경찰로부터 총격을 당해 죽어가는 와중 땅바닥에 누워 자신이 손으로 직접 자신의 눈을 가리며 죽음을 맞이한다. 마치 감독의 마지막을 예견한 장면 같아 괜히 싱숭생숭. 고다르 감독의 죽음에 관해선 아래 링크의 칼럼에서도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 작품의 주인공처럼 생을 마감한 장뤽 고다르(링크)

65년의 시간이 흐른 후, <누벨바그>

2025년, 고전의 발자취를 되짚어가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네 멋대로 해라>는 많은 후배 창작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마저 영화 자체만큼 흥미로우니, 그 상황을 그린 영화가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그렇게 되기까지 65년이란 긴 시간이 흐른 게 신기할 정도. 아무튼 매우 솜씨 좋은 연출자이자 스스로 영화광이기도 한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네 멋대로 해라>의 제작 일기를 <누벨바그>란 영화 한 편으로 다시 쓴 것은 참 인상적인 선택이다.

<네 멋대로 해라>를 보고, 곧바로 <누벨바그>를 이어서 본 느낌은,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중고딩 시절 시험을 앞두고 좀 어려운 수학 문제를 붙잡고 끙끙 매다가 결국 참고서의 문제 풀이를 본 격. 사실 <네 멋대로 해라> 제작에 관해 희한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는 이야기는 예전에도 들어서 알고 있긴 했다. 고다르 감독 본인이 영화 속 단역으로 직접 출연했다는 것과 촬영 중 제작자 및 배우들과 다툼이 많았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카이에 뒤 시네마 시절 동료였던 자크 리베트 감독을 비롯해서 누벨바그 1세대 감독들이 하나같이 존경을 바친 장피에르 멜빌 감독이 영화에 직접 출연했던 점이나 트뤼포 감독과의 관계 같은 부분들은 미처 몰랐던 점으로,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인상이 더 각별해졌다(특히 둘은 영화에 대한 견해 차이로 크게 싸우고 난 뒤 다시는 서로 만나지 않았다. 물론 트뤼포 감독 사망 후 애도를 표하기는 했다). 영화는 <네 멋대로 해라> 시사 후 트뤼포 감독이 고다르 감독에게 “역대 최악의 영화가 되겠군”이라는 덕담(?)을 하고 웃으며 둘이 포옹을 하는 장면으로 끝맺는데,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꽤 뭉클한 장면일 터.

<네 멋대로 해라>와 <누벨바그>를 굳이 비교하자면, 전자는 상당히 건조한 느와르에 가깝고 후자는 ‘우당탕탕 소동극’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전자가 매우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인 결말에 이른다면 후자는 모든 스태프가 모여 환하게 웃으며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는 훈훈한 결말에 이른다. 영화 역사에 그야말로 기념비적으로 남은 작품으로부터 65년이 흐른 후 나온 제작 일기는,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수줍은 고백으로 보인다. ‘소원성취한 덕후’의 모습이랄까.

고다르 감독은 모든 면에서 영화를 ‘전복’했다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영화 속 영화의 엔딩, 그러니까 <누벨바그>에서 <네 멋대로 해라>의 엔딩을 촬영하는 장면에서 땅바닥에 쓰러진 미셸은 원작과 달리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네 멋대로 해라>의 엔딩은 주인공이 스스로 손을 쓸어 내리며 눈을 감는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인데, 그 부분이 통째로 바뀐 것이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가운데, 필자는 그 점을 이른바 ‘로망의 극대화’로 보고 싶다.

영화 속에서 미셸은 여러 차례 선글라스를 쓰고 나온다(심지어 알 한 쪽이 없는 상태로 쓸 때도 있다). 중절모와 함께 미셸의 캐릭터를 상징하는 소품이며, 그 자체가 ‘누벨바그’의 시대를 상징하는 일종의 아이콘이기도 한 것. 당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링클레이터 감독은,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을 박제하는 느낌으로 영화 속 캐릭터에게 선글라스를 씌운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항상(진짜 한 번도 안 빼놓고!) 선글라스를 쓰고 나오는 이가 누구인가? 다름 아닌 고다르 감독 아닌가 이 말이다! ㅋㅋㅋ

관련 자료를 검색해보니 <누벨바그>는 미국 넷플릭스에선 이미 작년 연말에 공개가 되었다. 전술했듯 우리나라에선 극장에서 개봉되는 바람에 넷플릭스 공개가 (당분간은, 아마도 상당 기간은)어려울 터. 그러니 다시 이야기하지만, <네 멋대로 해라>와 <누벨바그>를 연달아 관람한 경험은,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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