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HD, 어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느낌

주인장 혼자서 북 치고 장구도 치는, 그러니까 1인 매체인 보리스 매거진을 운영하면서 축구 이야기를 참 많이도 하게 된다. 이전에도 칼럼 코너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축구를 참 좋아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다만 축구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선수와 팀에 대해 좋은 이야기보단 오히려 나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해서 속상하다.

이제 막바지에 접어든 K리그 2025 시즌은 전북현대모터스가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리그 사상 최초로 10회 우승을 달성했을 정도로 전통의 강호가 전북이긴 한데 불과 작년 시즌엔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가서 겨우겨우 1부에 살아남았다는 건 함정. 거스 포옛 감독은 사령탑에 오른 첫 해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전북과 마찬가지로 전통의 강호 소리를 들어 마땅하지만 올해는 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팀이 또 있다. 바로 직전 시즌 우승 클럽이었던 울산 HD를 두고 하는 말. 시즌 중에 홍명보 감독을 국가대표팀에 ‘빼앗기는’ 일이 벌어졌을 때만 해도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데 울산의 성적이 이렇게까지 곤두박질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급하게 소방수로 투입된 후임이 김판곤 감독이었는데 성적 반등에 실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질. 그리고 그 다음 차례가 인도네시아 국대를 떠나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신태용 감독이었는데 그 역시 순위를 끌어올리는 데에 실패했고 설상가상으로 선수단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지도 못하면서 결국 감독 자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이후에 벌어졌다. 신태용 감독 경질 직후 열린 리그 경기에서 PK 득점을 한 고참 이청용 선수가 난데없이 골프를 치는 세리머니를 한 것. 축구에서 골 세리머니는 자신만의 고유한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고(손흥민 선수의 찰칵 세리머니가 대표적), 선수가 어떤 특정한 입장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하기도 한다(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초기, 전쟁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세리머니를 한 선수가 화제가 되었다).

아무튼 이청용 선수의 이 골프 세리머니는, 전임 신태용 감독을 대놓고 저격한 것이 사실이다(신태용 감독은 많은 운동선수들이 그렇듯 골프 애호가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 상황을 지켜본 많은 이들은 ‘나이 어린 선수도 아니고 팀에서 고참급인 선수가 굳이 나간 감독을 그렇게까지 도발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 당사자인 이청용 선수는 또 ‘나중에 자세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면서 2차전을 예고(?)한 상황.

이청용, 논란의 세리머니

나이 든 선배를 깍듯이 대우하는 문화가 지배적인 우리나라 스포츠 판에서, 고참 선수와 감독이 기싸움을 벌이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벌써 30년이나 지난 일인데, UAE에서 열린 1996년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란에게 2:6이란 스코어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적이 있다. 해당 경기에서 일부 선수들이 주도하여 ‘박종환 감독 엿 먹이려고’ 일부러 태업을 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당시 박종환 감독의 혹독한 팀 운영(선수들에게 폭력을 예사로 휘둘렀다. 이에 대해선 여러 영상이나 진술 등의 증거가 남아있다)에 몇몇 선수들이 강한 반감을 가졌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그리고 이번에 논란의 세리머니를 한 이청용 선수와 FC 서울에서 영혼의 듀오였던 기성용 선수도 서울 김기동 감독의 클럽 운영 방식에 불만을 품고 일종의 항명을 하며 결국 포항으로 이적하게 된 것도 사실이고.

안 그래도 최근 한국 축구에선 썩 유쾌하지 못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전횡은 물론이고, 논란 속에 선임된 홍명보 감독의 능력에 대해 의구심이 짙어지는 와중 얼마 전 국내에서 있었던 경기에선 브라질에게 0:5 참패를 당하기도 했다. 이 경기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이자면, 물론 비니시우스나 카세미루 같이 훌륭한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고 해도 지금의 브라질 국대가 예전처럼 그렇게 ‘넘사벽’ 수준이기만 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1군 멤버가 전부 투입되진 않았다고 해도 곧바로 이어진 경기에선 일본에게 패배하기도 하지 않았는가?

혹자는 신태용 감독과 이청용 선수의 ‘악연’이, 단순히 이번 울산이란 클럽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고 과거 2018년 전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고 있다. 그 때 월드컵을 앞두고 불명예 경질된 슈틸리케 감독의 후임으로 잠시 감독 대행을 맡았던 이가 신태용 감독인데, 팀 리빌딩 과정에서 이청용 선수의 포지션 변경을 시험하면서 선수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다만 여기에서 덧붙일 이야기가 있는데, 종목 불문하고 스포츠에서 어떤 선수의 기용 방식을 두고 선수와 감독의 의견 차가 발생하는 일은 생각보다 잦으며, 더군다나 팀에서 에이스급으로 활약하는 선수였다면 매우 큰 회의감과 불만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는 것.

물론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팀 성적이 좋으면야 모를까, 바로 작년 시즌 우승을 차지했던 클럽이 지금 바닥을 기면서 강등을 당하네 마네 하는 지경인데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감독을 내모는 것도 모자라 굳이 ‘저격’까지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 것. 더군다나 울산 HD는 앞서 언급했듯 하루 이틀 반짝 잘 했던 팀이 아니라 여전히 가슴에 별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팀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클럽은 아니지만, 여전히 K리그는 미디어를 통해 조명되는 일이나 팬덤 자체도 그렇게까지 넓은 편은 아니어서 이런 빅 클럽이 내외 사정으로 흔들리는 일이 결코 바람직하진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울산 HD의 내홍이 금방 가라앉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문제. 어차피 사령탑이 공석인 만큼 누군가가 다음 감독이 되어야 할 텐데, 팀 사정이 이래서야 누가 선뜻 감독을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이 말이다. 아무래도 홍명보 감독이 다시 돌아오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ㅋㅋㅋ 그러면서 국대 감독도 바꾸고.

어? 이거 의외로 간단하게 풀리겠는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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