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얼마간 즐겼던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짤막 소감 / 2025년 5~6월

자주 하는 말이지만, 최근 들어 얼마간은 개봉 영화나 새로 공개된 드라마들을 예전만큼 왕성하게 섭렵하진 못했다. 근데 여기에 이유가 있으니, 바로 윤통 탄핵 이후 펼쳐진 선거판에 관심이 크게 쏠렸다는 것. 사실 관여도가 높은 소비자에게 정치만큼 재미있고 흥미로운 테마가 따로 또 없지. ㅋㅋㅋ

아무튼 일찍 치러진 제21대 대선의 결과는 지금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고… 대선 전후로 해서, 조금 늦게 보게 된 영화와 드라마들에 대한 짤막 소감을 전한다.

지난 얼마간 즐겼던 콘텐츠들에 대한 짤막 소감 / 2025년 3월


<서브스턴스> 코랄리 파르자 감독 / 데미 무어, 마가렛 퀄리 등 출연

<서브스턴스>, 정말 엄청난 영화였다

엄청난 영화란 얘기를 듣긴 했는데, 개봉관에서 볼 생각은 못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땐 호러 장르도 잘 보고 했는데 ㅠㅠ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뭔가 좀 ‘쎈’ 영화는 보기가 힘들어진 것. 그래도 관심이 가면 OTT에서 몇 편 골라가며 보긴 했다.

특히 여성에게 무거운 멍에가 되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은 기본이고, 현대 미디어산업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가 뒤따른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매우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자신의 신념과 나아가고자 하는 노선을 이처럼 명확하게 제시한다면 그 누가 ‘페미니스트’란 이유 하나만으로 혐오를 하겠는가?!

그리고 그 엄청난 엔딩(…)은, 얼핏 <캐리>의 엔딩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그보다 수십 배는 더하다(뭐가? ㅋㅋㅋ). <서브스턴스>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관객들은 하나같이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주연 데미 무어는 여배우로선(사실 연기만 놓고 보면 성별을 굳이 따지기도 뭐하고 그냥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우 힘들 수밖에 없는 어려운 연기를 진짜 눈이 부시도록 구현해냈다. 그녀의 그런 명연에 대해 골든글로브가 여우주연상으로 화답하기도.

※ 항간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제작사가 본 시나리오를 갖고 꽤 많은 중년 여배우들과 컨택을 했다고 한다. 그들 중엔 주연 엘리자베스 스파클 역을 맡은 데미 무어와 동년배에 속하거나, 적어도 그녀와 비슷한 시기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러니까 예전엔 데미 무어나 그녀에 못지 않은 네임밸류를 가졌던 배우들에게 의사 타진을 했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들 중 상당수는 시나리오를 보고 고개를 저으며 출연에 난색을 표명했다고 한다(솔직히 대부분 그랬을 것 같긴 하다). 그런데 데미 무어가 결국 출연을 결정했고, 지금 우리가 그 결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등골을 뽑아먹은(…) 수 역의 마가렛 퀄리(참고로 앤디 맥도웰 딸이다)도 역시 쉽지 않은 캐릭터를 맡아 준수한 연기를 보여줬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되는 배우. 못돼 먹은 방송국 사장 하비(이 이름은 누구나 알다시피, 할리우드 역사에 남은 희대의 악당 와인스타인을 염두에 둔 네이밍이렷다) 역 데니스 퀘이드의 연기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아주 인상 깊게 본, 아주 괜찮은 영화였다. 다만, 극장에서 봤으면 조금 어려웠을 듯.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줄리어스 오나 감독 / 앤서니 매키, 해리슨 포드 등 출연

너무 심심했던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하… 왜 이리 심심하지. 왕년의 팬심을 뒤로 하고(?) MCU 시리즈 중 드물게 ‘상영관에서 거른’ 본작을 다 보고 나서 떠오른 생각이다. 그리고 영화 관련 게시판을 좀 둘러봐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 팬들이 적지 않은 듯.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뽕맛’이 부족하다는 평.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대박 스포일러를 까보면, (적어도 영화에서)초대 캡틴 아메리카인 스티브 로저스는 나이를 먹고 은퇴하며 자신의 상징과도 같았던 동그란 비브라늄 방패를 절친 샘 윌슨(앤서니 매키)에게 건네줬다. 즉 그가 2대 캡틴 아메리카가 되었으며, 역시 그의 옆엔 2대 팔콘 호아킨 토레스(대니 라미레즈)이 사이드킥으로 나오게 됐고.

본작에서 캡틴 아메리카와 맞서게 되는 레드 헐크는 현직 미국 대통령(!) 썬더볼트 로스(해리슨 포드). 그러니까, 미국 대통령이 빌런이다? 이 말은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하이라이트에서 주인공과 거하게 붙기 직전, 그저 말 몇 마디에 깊이 감화(?)하게 되어 스스로 주먹을 거두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고, 실제 지금의 미국 대통령이 빌런 짓(?)을 하고 있단 점에서 또 그렇고.

장점이 없진 않다. 무엇보다 초대 캡틴과 달리 비행이 가능한 2대 캡틴의 특성을 살려 시원시원하고 제법 박진감이 있는 공중전 장면으로 눈요기를 하게 해준다. 덧붙이면 이 공중전에서는 캡틴 아메리카와 팔콘, 그리고 일본 해상자위대(!)와 세뇌된 미 해군(!)이 맞붙는다. 한동안 MCU 작품에서 퀄리티가 다소 떨어졌던 근접 격투 장면의 연출도 괜찮은 편.

그런데 그 외의 모든 부분에선, 솔직히 너무 심심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MCU는 끝났다’는 것이 세간의 평인데, 그 이후 만난 대부분 영화들이 수준 이하여서 본작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같은 경우는 그나마 낫다고도 하지만 그래도 이야기가 너무 평이하게 이어져서 문제.

게다가 현직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연일 벌이고 있는 빌런 짓을 우리 모두가 목도하고 있는 와중 ‘평화로운’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힘쓰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라니? ㅋㅋㅋ


<더 펭귄> 맷 리브스, 콜린 패럴 제작 / 크레이그 조벨 감독 / 콜린 패럴 등 출연

<더 펭귄>, 아직까진 올해 최고의 드라마(중 하나)

얼마 전 쿠팡플레이를 통해 HBO 드라마 시리즈들이 주루룩 공개되면서 그 리스트에 오른 작품들 중 꼭 보고 싶었던 <더 펭귄>을 봤다. 1시즌 전체 에피소드 8편이 공개된 중 4편까지 보고 나서 짤막 소감을 정리한다.

우선 무엇보다 ‘스핀오프 시리즈로 가기엔 아까운 기획’이란 느낌. 물론 DC 코믹스 팬들, 그리고 실사 영화로도 여러 차례 선보인 배트맨의 팬들(사실 본작의 주인공 ‘펭귄’ 오스왈드부터가 2023년작 영화 <더 배트맨>에 출연했던 캐릭터이자, 배우도 동일 인물이다) 사이에서 펭귄이란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 해도, 차라리 전혀 새로운 IP로, 완전히 새로운 시리즈가 나와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것.

그런 정도로 괜찮다고 느끼는 것이다. 미국에선 드라마 공개 후 <소프라노스>에 비견할 만큼 훌륭한 작품이란 평가까지 받았다고 하는데, <소프라노스>를 몇 편 안 보긴 했지만 어쨌든 갱스터/느와르 장르의 작품으로선 매우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정말 탄탄하게 구축된다. ‘펭귄’ 오스왈드가 얼마나 비열하고 야비하며 치졸하기도 한 인물인지(사실 그러면서 나름 인간적인 매력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가 고담시의 암흑가를 어떻게 손아귀에 넣으려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암울하기 짝이 없는 세계관과 잘 맞아떨어져 깊은 인상이 더하다. 특히 주인공 오스왈드(콜린 패럴)와, 공동 주연이라고 할 만한 소피아 팔코네(크리스틴 밀리오티)의 연기도 매우 훌륭하고.

아무튼 아직까진 올해 본 드라마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중 하나)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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