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얼마간 즐겼던 콘텐츠들에 대한 짤막 소감 / 2025년 3월

딱히 이렇다 할 수 있을 정도로 해놓은 것도 없는데 벌써 새해가 되고서도 1/4분기가 후딱 지나갔다. 나이를 먹을수록 참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시간이 참 빠르구나’ 하는 것. 겨울에 입던 외투도 아직 다 정리하지 못했는데 낮 기온은 벌써 20도를 육박하니, 참 부지런히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지난 얼마간 보고 즐긴 드라마와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려고 한다. 올해 들어 지난 달까지 즐겼던 드라마들에 대해선 아래 링크에서 확인을.

지난 얼마간 즐겼던 콘텐츠들에 대한 짤막 소감 / 2025년 1~2월


<폭싹 속았수다> 김원석 감독 / 아이유, 박보검, 문소리 등 출연

많은 이들을 웃기고 울린 <폭싹 속았수다>

공개 직후부터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사실 짤막 리뷰 코너를 통해 소개하기엔 다소 아깝게 느껴지기도 할 정도인데, 나중에 기회가 되는대로 각 잡고 앉아서 리뷰를 작성해볼 생각도 있다.

본작은 <미생>과 <시그널>, <나의 아저씨> 등 절절한 감성을 건드리는 연출과 배우 디렉팅에도 탁월한 솜씨를 선보인 김원석 감독이 넷플릭스로부터 든든한 제작비 지원을 받아 내놓는 작품이란 점에서 공개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그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드라마가 되어 많은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리는 중(글을 작성 중인 3월26일 기준으로 전체 16회 중 12회까지 공개된 상태).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드라마라는 매체, 아니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시각 매체가 소비자로 하여금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그래서 기쁨과 슬픔과 즐거움과 안타까움을 모두 느끼게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단연 <폭싹 속았수다>를 봐야 할 것이다. 특별히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눈요기 없이 잔잔하게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

본작과 마찬가지로 제주도가 배경인 <우리들의 블루스>나,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응답하라> 시리즈나, 주인공 역을 맡아 열연한 아이유와 김원석 감독이 처음 만났던 <나의 아저씨> 등을 연상시킨다는 평도 많은 모양. 지금 이야기한 드라마들의 공통점을 뽑아보면, 적지 않은 이들이 ‘인생 드라마’로 꼽는 작품들이란 점이다. 아마 <폭싹 속았수다> 또한 곧 그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콘클라베> 에드워드 버거 감독 / 랄프 파인스, 존 리스고우 등 출연

모든 장면이 그대로 예술, <콘클라베>

처음 관련 정보가 공개되고, 예고편도 공개된 후 꼭 보고 싶었는데 결국 보게 되어 감개가 무량하다! ㅋㅋㅋ 다만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땐, 교황을 선출하는 내용에 뭔가 어마어마한 흑막이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는데 실제론 뭐 그 정도까진 아니었고. 그래도 마지막엔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반전이 있긴 하다.

어느 날 교황이 선종을 한다(지금 프란치스코 교황도 고령인데다 건강이 좋지 않아 곧 ‘실제로’ 콘클라베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어 안타깝다). 전세계에서 백여 명이 넘는 추기경들이 바티칸에 모여 다음 교황을 선출하는 이벤트, 즉 ‘콘클라베’가 열린다는 것이 본작의 내용.

세계적으로 손에 꼽힐 만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편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선거’이기에 콘클라베는 자연스럽게 정파성을 띠게 된다. 전임 교황이 그랬던 것처럼 매사에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인 벨리니 추기경(스탠리 투치)이 있는가 하면, 타 종교에 대해 대단히 완고하게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테데스코 추기경(세르조 카스텔리토) 같은 사람도 있다. 그리고 주인공 격인 로렌스 추기경(랄프 파인스)은 이른바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맡아 이야기를 이끈다.

<콘클라베>에서 실제 교황을 선출하는 작업은 물론, 전세계에서 온 추기경들이 모여선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등에 관한 디테일만큼 관객의 눈길을 잡아 끄는 건 단연코 미장센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도중 정말 희한할 정도로 카메라는 움직임이 없는데,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이 숨막힐 정도로 완벽하게 설계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작중에서 로렌스 추기경은 “화합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확신”이란 말을 한다. 다른 사람, 다른 생각, 다른 문화를 존중할 생각 없이 그저 나만이 옳다는 생각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것임을 웅변하고 있는 것. 백척간두와도 같은 운명 앞에 선 지금의 대한민국에게도 필요한 것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텐데… 그런데, ‘보편적 가치가 무너진’ 지금 상황에선 나름의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데어데블: 본 어게인> 케빈 파이기 제작 / 찰리 콕스, 빈센트 도노프리오 등 출연

<데어데블: 본 어게인>에 퍼니셔도 출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어진 <데어데블>은 일단 3시즌으로 완결이 났다(그러나 완벽하게 끝난 건 아니고 이후 새 시리즈로 이어지는 ‘떡밥’이 뿌려지긴 했다). IP 자체가 디즈니에게 넘어가면서, 어둡고 폭력적이며 (TV 드라마 치곤)상당히 잔인한 비주얼이 많이 나온 <데어데블>이 디즈니 플러스에서 과연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고. 원래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란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디즈니 플러스 아니었던가!

불투명한 <데어데블>의 미래가 안타까웠던 건 팬들만이 아니었다. 매튜 머독/데어데블 역을 맡은 배우 찰리 콕스, 윌슨 피스크/킹핀 역을 맡은 배우 빈센트 도노프리오 등과 전작의 스태프들 중 일부까지 나름 ‘<데어데블>의 생명 연장’을 위한 캠페인에 참여하며 디즈니에게 어필하였으니, 그 결과로 오늘 우리가 만난 시리즈가 바로 <데어데블: 본 어게인>이다.

다행히도(?)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3시즌까지의 시리즈)으로부터 이어진 전통이 이어졌다. 사실상 새 시즌이라기보단 그냥 4시즌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 배우들도 그대로 나오고(다만 매튜 머독의 절친 넬슨은 첫 에피소드 시작하자마자 사망하고 캐런 페이지도 금방 퇴장한다. ㅠㅠ) 온몸으로 처절하게 싸우는 뒷골목의 자경단, 데어데블도 여전하다. 특히 <데어데블> 시리즈에서 큰 호평을 받았던 부분이 매력적인 빌런 킹핀(빈센트 도노프리오)의 서사가 거의 완벽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는데 이번엔 아예 뉴욕의 시장으로까지 선출되며 이야기의 전체적인 스케일도 커졌다(덧붙여서 이 캐릭터에 대한 일종의 ‘빌드업’은 여전히 이어지는 모양새다. 세상에, 부부가 함께 심리 상담을 받는 빌런이 이전에 또 있었나? ㅋㅋㅋ).

<데어데블: 본 어게인>은 자체적으로 시즌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그러니까 현재 공개 중인 시즌은 1시즌이고, 앞으로 2시즌에 이어 새 시즌이 순차적으로 제작될 예정. 아직까진 극초반인데 무엇보다 전작의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제로 데이> 레슬리 링카 글래터 감독 / 로버트 드 니로, 제시 플레먼스 등 출연

<제로 데이>, 이야기의 스케일에 비하면 드라마가 약간 심심한 편

명배우 로버트 드 니로 옹이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출연한 드라마. 그 외에도 출연 배우들의 면면이 대단하고, 작금 전세계적인 이슈이기도 한 정치적 극단주의(로 인한 폐해)를 다루기도 해서 꽤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던 드라마.

재임 시절 두루 평판이 좋았으나 개인적인 이유로 재선에는 도전하지 않고 지금은 낙향해서 자서전을 쓰고 있는 전직 미국 대통령 조지 멀린(로버트 드 니로)에게 어느 날 갑자기 중차대한 임무가 부여된다. 미국 전역을 휩쓴 사이버 테러로 3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구성된 ‘제로 데이 위원회’의 위원장 자리를 맡게 된 것.

미국 전체를 뒤흔든 사상 초유의 테러 공격은 누가 벌인 것인가? 사실, 우린 꽤 오래 전부터 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에서 이미 익숙한(?) 흐름을 보긴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되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뭐, 비슷한 내용을 많이 봤다니깐. ㅋㅋㅋ

그래서 드라마가 재미있나, 볼만한가 하면 당연히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6회 에피소드로 끝나는 리미티드 시리즈이기도 하니 부담 없이 볼만하다) 이야기 전체의 스케일이나 흐름에 비해 좀 심심(?)하다는 느낌을 지우긴 힘들다.


<일렉트릭 스테이트> 앤소니 루소 & 조 루소 감독 / 밀리 바비 브라운, 크리스 프랫 등

이렇게 밋밋한 영화의 몸값이 무려 3억2천만 달러! <일렉트릭 스테이트>

3억2천만 달러. 2025년 3월 현재 환율로 무려 4천6백억 원. 넷플릭스 역사상 최고 제작비가 투여된 작품이, 미취학 아동의 눈높이에나 맞을 영화라는 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원작이 꽤 유명한 그래픽 노블이라고 하고, 그 원작을 그대로 잘 살리기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혹독한 평가를 받진 않았을 거란 의견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만약’의 일.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이견의 여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 졸작이다.

인간이 창조한 로봇이 인간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다는 내용은 뭐, 새로울 것도 없다. 본작에서 그나마 유니크한 부분이라고 할 것 같으면 이른바 ‘카세트 퓨처리즘’이라는, 복고적 미래주의가 구현된 비주얼이라고 하겠다. 쉽게 설명하면 1990년대(실제로 작중 시대적 배경도 1990년대다)에서 쓰였을 법한 구식 전자기기들이 마치 최첨단 기기처럼 사용되는 점을 구현한 것이다.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는 로봇들의 다양한 디자인도 다분히 키취적이고.

이런 언급들도 본작을 그럭저럭 괜찮게 봤을 때나 약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밋밋하기 짝이 없는 2시간이 지나고 나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루소 형제가 아낌 없는 제작비로 컴퓨터 그래픽을 어느 정도까지나 구현할 수 있을지 테스트한 일종의 습작 같다는 느낌이다. 그것도 나름 의미가 없진 않겠지만, 오픈 베타 서비스(?)에 태운 금액이 무려 3억 달러라니. 이건 너무하잖아?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오는 금요일에 <폭싹 속았수다>의 마지막 시즌이 공개되면 요걸 다 보고 정식 리뷰를 작성하려고 한다. 그리고 지난 주부터 쿠팡플레이를 통해 공개된 <왕좌의 게임> 전 시즌을 다시 볼 생각도 있고 <펭귄>도 봐야 하고 <더 와이어>도 봐야 하고… 이거 참, 앞으로 당분간은 드라마 보느라 바쁘게(?) 보내게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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