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자, ‘노바디’가 존 윅과 다른 점은

여기, 생활에 찌들어 짠내 풀풀 풍기는 한 중년 남자가 있다. 매일 아침 집 앞을 지나가는 청소차는 매일 나를 외면하고, 직장 정문을 지날 때면 하루 이틀도 아닐진대 항상 클랙슨을 울리는 놈이 있다. 아이들은 저녁 먹는 자리에서 아빠의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아내는 아직 매력적이지만 잠자리를 언제 가졌는지 까마득하다.

그냥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던 이 남자에게 몹시 빈정 상하는 일이 벌어진다. 사실, 우리 모두는 영화 시작하고서 딱 2분만 지나면, 아니, 어쩌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알고 있다. 지금 비리비리해 보이는 이 남자를 잘못 건들면 누구든 크게 당하고 말 거란 사실을.

내가 지금부터 너네들을 싹 조져버릴 거다. 너희들은 X됐다.

대작 미드 ‘브레이킹 배드’의 밉상 변호사 사울 굿맨이 빡쳐서 결국 총을 들게 되었다…! 영화 ‘노바디’는, 1인칭 시점의 신박한 액션을 선보였던 ‘하드코어 헨리’를 연출했던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과 ‘존 윅’ 시리즈의 시나리오 작가 데릭 콜스태드가 만났다는 것만으로 기대를 갖게 했다. 아, 그리고 언제나 말빨만 앞세울 것 같았던 전직(?) 변호사 양반도 몸을 쓰는 액션을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의외로 그게 잘 어울렸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어쩌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다. 주인공이 진짜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인물이라도 그가 주인공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하자면 누구도 손대기가 어려운 범죄자들을 맡아서 처리하는 ‘감찰관(Auditor)’이란 직책(?)은 분명 있지만, 뭐,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제부터 우리 앞에 얼마나 화끈한 액션이 펼쳐질 것인지가 중요하지.

그런 점에서 ‘노바디’는 화끈하다. 망설임이 없다. 영화에서 사실성보다 중요한 건 개연성이라고 했던가? 말하자면 현역에서 은퇴한 지 적어도 10년은 넘어 보이는 아재가 쌍권총으로 러시아 마피아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이라든가, 저격 라이플로 1타 3피(…)를 잡아버리는 모습이라든가, 역시 은퇴한 지 20년은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샷건을 들고 총격전을 벌이는 모습은 관객의 기대에 확실하게 부응하는 바가 있다.

화끈한 액션! 은근히 잔인한 장면도 나오니 주의(?)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존 윅’ 시리즈에 없는, 바로 그것은 이른바 중년 남성의 판타지.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나를 반기는 존재 하나 없이 찌질하게 살아가지만 사실 난 범죄자 멱 따는 일엔 선수고 비밀 금고엔 엄청난 금괴를 숨겨놓고 있거든? 아아, 내 ‘진짜’ 정체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어. 그럴 생각도 없고.

하지만 ‘살아가면서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고도 했고, 지금의 심심한 생활도 나쁘진 않지만 한편으론 그 옛날이 ‘X나게 그리웠지’. 딱 한 번만 보여주면 되는 거야. 당연하지만, 지금의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 이사를 간 집엔 지하실이 마땅히 있어야 할 테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든 난 상관 안 해. 내 이름 따위, 뭐 대수라고. 굳이 부르겠다면 그저 ‘노바디’라고 해주길 바라.

일견 왜소해 보였던 한 중년 남성의 판타지는, 그리고 이 영화를 본 모든 중년 남성의 판타지는 바로 이렇게 완성되었다. 필경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상은, 성별과 세대에 따라 매우 다를 것이다. 물론 그 가운데 중년 남성의 만족도가 가장 높겠지. 현실에 찌든 중년 남성들이여! 지금 바로 넷플릭스를 켜고 ‘노바디’를 볼 지어다. 러닝타임도 짧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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