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학교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이유

죽었지만, 실제로는 죽지 않은 존재. 그렇다고 살아있는 것도 아닌, 그런 존재인 좀비가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꽤 사랑(?)을 받는 상황은 참 기묘한 한편으로 의미심장하다. 좀비는 일단 기존의 호러물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들, 즉 흡혈귀나 늑대인간 같은 괴물이나 연쇄살인마 같이 ‘완벽한 타자’들과 커다란 차이가 있는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다는 것. 그래서 좀비를 퇴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머리를 박살내서 완벽한 안식을 선사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좀비라는 존재 자체의 특수성을 반영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층 구분에 대한 노골적인 메타포가 더욱 흥미를 자아내는 작품들도 이전에 여럿 존재했고.

그리고 또 한 가지, 좀비가 가진 색다른(?) 특징은 바로 누구나 감염이 될 수 있다는 것. 즉, 내 가족이나 친구가 자신도 모르는 채 내 안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이고, 바로 그러면서 결국 좀비로 변하고 만 내 가족이나 친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주인공이 겪는 딜레마 자체가 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요소들 때문에 좀비물은 호러 카테고리의 서브 장르로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팬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2022년 벽두, 글로벌 OTT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K-좀비물’, ‘지금 우리 학교는’이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제목 그대로, 효산고등학교(극중에선 가상의 지명인 효산시를 배경으로 하여 효산고등학교라는 이름이 지어졌는데 대한민국에 효산시는 없지만 효산고등학교는 실재한다! 효산고 재학생이나 졸업생은 이 드라마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ㅋㅋㅋ)에 좀비 사태가 벌어진다는 이야기. 와중에 학교에서 좀비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아이들 몇몇이 악전고투를 벌이고, 계엄령이 선포됨과 동시에 외부와 차단된 효산시의 시민들이 좀비가 되어가며… 이전에 많은 좀비물에서 볼 수 있었던 익숙한 장면들이 흐른다.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선 약간 억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하필이면 작년에 그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이어 공개되면서 여러 모로 둘이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란 점 때문이다. 다만 ‘오징어 게임’ 이후 일종의 후광 효과도 노려볼 수 있게 되기도 했으니, 서로 상쇄가 되었다고 할까? 아무튼 공개가 되고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전 세계 약 90여 개 국가(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사실상 대부분 국가)에서 인기 순위 1위를 달성하는 등 순항 중이다.

좀비 장르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기준으로 보면 ‘지금 우리 학교는’의 경우 몇몇 부분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우선 극중에선 ‘절비(절반만 좀비)’라는 우스꽝스러운 표현으로 불리는 이른바 ‘무증상 감염자’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원래 좀비물의 완성도를 논할 땐 예외 상황(좀비로 변하거나, 어떤 이유로 인해 변하지 않거나)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저 작가나 연출상의 편의에 의해 누구는 좀비가 되고 누구는 좀비가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거기에 대해 관객이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면 그 작품은 좀비물로서의 가치를 더 이상 인정받기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지금 우리 학교는’이 부족한 것은 사실.

그리고 출연자들의 연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캐릭터가 워낙 많이 나오긴 하지만 누구는 그야말로 ‘생활연기’를 보여주는가 하면 또 누구는 문어체 대사(“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면 안 돼” 같은 말을, 좀비 사태가 벌어진 학교의 고등학생이 정말 할 법한가?)를 읊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다만 출연자 연기 부분을 언급하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 우리 학교는’에 출연한 배우들이 대부분 나이가 젊거나 어린 편이지만 크고 작은 작품들에서 나름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적이 있는, 말하자면 연기력 면에선 인정을 받은 배우들이란 것. 주인공 온조 역의 박지후는 영화 ‘벌새’에서 정말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으며 청산 역의 윤영찬도 아역배우 시절부터 연기대상을 받은 적이 있을 정도. 그 외에 남라 역 조이현, 미진 역 이은샘, 나연 역 이유미 같은 배우들도 여러 드라마를 통해 경험이 많은 배우들이다.

어쩌면 고딩 입장에서 좀비 사태라는, 미증유의 상황을 겪게 되었으니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연출자의 디렉팅이란 말이 맞을지도!

이 작품을 비판하는 가장 큰 포인트라면, 무엇보다도 살아남기조차 바쁜 와중에 무슨 러브라인이 그렇게 많은가 하는 점일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만큼 러브라인도 간단하지가 않다. 어렸을 때부터 이웃집에 살던 여사친과 착한 남사친, 냉미녀 계열의 완벽한 모범생과 싸움 잘 하는 전직 일진, 전국적으로 유명한 양궁 천재 소녀와 연예인 지망생 등등, 굳이 필요한가 싶을 정도의 ‘진한’ 캐릭터 서사는 전체 이야기의 템포를 느리게 하는 주범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아쉬운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개인적으론 앞서 이야기한 아쉬운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사실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꽤 재미있게 보기도 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고딩들이 좀비 사태라는 재난을 나름 돌파하기 위해 동원하는 아기자기한 아이템들과 상황 구성은 특히 외국의 시청자들에게 아주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전까지 한국에서 나름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았던 좀비물, 예컨대 ‘부산행’과 ‘#살아있다’ 같은 작품에 비해서 스케일은 소박하지만(?) 몹 씬의 스펙터클(게다가 롱테이크다!)은 결코 그에 못지 않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란 작품을 다 보고 나서 느낀 점을 말하자면 ‘이건 좀비물이 아니구나’라는 것. 그러니까 좀비물의 장르적 전형을 빌려와서 결국 연출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고딩들이 주인공인 멜로이거나 고발적 사회파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면, 학교 옥상에 남겨진 아이들을 충분히 구조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했던(않았던) 장면에서 괜히 울컥한 느낌을 받은 건… 나뿐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미안하다,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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