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팬데믹의 시대에 재조명되는 클래식 <페스트>

코로나 19로 인한 글로벌 팬데믹이 초래된 지 이제 3년차. 이 몹쓸 역병의 파괴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것이어서, 지금으로부터 수백 여 년 전 유럽에서만 약 2억에서 최대 3억 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낳았던 흑사병에 비견되기도 한다. 말이 2억에서 3억이지, 이 정도 규모의 인구는 당시만 해도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만했던 유럽 전체 인구의 약 1/3에 달하는 수치였고 사람들은 커다란 충격에서 한참 동안 헤어나오기 힘들었다.

그리고 서기 2022년에도 기승을 떨치고 있는 코로나 19는 1,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를 모두 합친 수보다도 더 많은 수의 목숨을 전 세계에서 앗아가고 있는 중이다. 글로벌 팬데믹의 시대, 약 70여 년 전 대문호가 보여줬던 비전을 다시 조명한다.

알베르 카뮈가 역작 <페스트(La Peste)>를 내놓은 것은 그의 나이 불과 서른 세 살 되던 해인 1947년. 프랑스령 알제리의 해안 도시 오랑시(市)에서 어느 날 갑자기 흑사병이 돌게 되고 이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 와중에 이 질병에 걸린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의사도 나오고, ‘이 질병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징벌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사제도 나오고, 외부에서 이 도시에 들어왔다가 갑자기 도시가 봉쇄되면서 본의 아니게 발이 묶이게 된 신문기자도 나오고 등등, 아무튼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알베르 카뮈의 역작 <페스트>

작품은 도시 곳곳에서 쥐들의 사체가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처음엔 한두 마리였던 쥐 사체가 나중엔 수백 마리씩 떼로 발견이 되니, 상상만 해도 정말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는 상황. 그리고 이어서 사람들이 역병으로 목숨을 잃게 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여기서 잠깐 옆길로 새는(?) 이야기를 해보면, 실제로 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은 쥐 때문에 페스트가 더 많이 퍼졌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 한 20여 년, 한 30여 년 전부턴 쥐보단 오히려 사람이 문제였단 연구 결과가 더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여겨지는 실정. 페스트가 창궐했던 1300년대 전후 극도로 희박했던 위생 관념이 쥐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다고 하는 게 최근 의학계의 중론이다.

<페스트>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지만 이 작품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혹은 이른바 부조리 문학이라고 하는, 작가 카뮈가 이룩한 문학 사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데 그런 거 다 제쳐두고, 솔직히 정말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재미 요소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작품이 바로 <페스트>.

따지고 보면 이른바 재난 장르, 혹은 디스토피아 장르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하는 이 작품이 ‘재미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근거는 다음과 같다. <페스트>는 총 5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중 1부의 마지막은 이렇게 된다: 오랑시에 질병이 돌면서 사망자가 발생하니까 시의 시장이 본국인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어떤 행정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알려달라고 하는데, 예정보다 많이 늦은 시간에 파리에서 도착한 전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랑시를 봉쇄하라!”

이 장면에서, 이야기가 정말 흥미진진하게 이어지는구나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머지 2부, 3부,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정말 독자가 흥미를 잃지 않게끔 치밀하게 구성이 되어 있다.

카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화영 선생의 꼼꼼한 번역이 돋보이는 민음사 출판본

작품에 대해서, 흥미로울 만한 또 한 가지 사실. 작품 내에서 페스트가 창궐한 도시는 알제리에 실제로 있는 오랑시인데, 전체 인구가 약 20만 명에 달한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그리고 파리에서 내려온 훈령에 따라 시 전체가 봉쇄되는데, 해안가에 위치한 인구 약 20만 명의 도시는 우리나라로 치면 딱 강릉시. 이를테면, 코로나 19 같은 질병이 발생하면서 강릉시가 완전히 봉쇄된 것!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니 매우 으스스해지는 느낌.

요즘 시절이 시절인 만큼 다양한 미디어에서 소개가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진 작품이고, 예전부터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도 해서 우리나라에선 여러 출판사를 통해 출판이 되어 있다. 그 중에 김PD가 읽은 버전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프랑스에서도 유명한 카뮈 연구자인 김화영 선생이 번역하고 꽤 충실한 역자 해설도 붙어있어 읽기에 무리가 없다. 그 외에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서도 나왔고 1947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처음 나올 때의 초판 표지를 그대로 갖고 온(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출판 업계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더스토리 출판사의 버전도 있다.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페스트>란 작품이 거둔 문학적 성취와 도달, 그리고 완성도는 말할 필요도 없이 뛰어나다. 이미 수없이 많은 문학평론가들이 그런 부분을 조명하고, 언급했던 것은 굳이 부연할 필요도 없을 터. 그런데 꼭 그런 측면이 아니라도, 그냥 순수한 재미의 측면에 조명하더라도 최근 전세계적인 코로나 19 사태와 겹치면서 많은 생각할 꺼리를 제공하는 작품이 바로 <페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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