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그저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이 벌어지는 요즘이다. 그런 상황을 나름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면, 종종 그 방향이 전혀 엉뚱한 쪽을 향하는 것도 어떤 측면에서 보면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일이긴 하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생각해보자.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한 인공지능이 더 ‘똑똑해지면’, 사실상 하는 일은 단순반복작업에 불과한 법조인이나 금융업계 종사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무직이 사라질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다. 또한 작가, 음악가, 화가 등 창조적인 일을 하는 예술가들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그런데 적어도 2025년에 그와 같은 예측은 크게 틀렸다고밖에 얘기할 수 없게 되었다. 매일 똑같이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일을 하는 대부분의 사무직 노동자들은 오늘도 내일도 야근에 시달리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해진 수천에서 수만 편의 이야기들을 학습한 인공지능은 시나리오 작가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다분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청소 로봇을 들여와서 돌리는 비용보다 계약직 미화원을 고용하는 비용이 싸다. 김밥을 말아주는 기계도 나온 마당이지만 그런 기계를 들여놓느니 조선족 아주머니를 고용하는 편이 여러 모로 낫다. 자본에 매몰된 편의주의적 발상은, 결국 사람의 생명마저도 ‘가격’이란 가치로 평가 받게 한다. 지나친 비약이라고? 지하철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고로 사망한 젊은 노동자의 경우를 보자. (필경 추가 비용이 들어가게 되는)안전수칙을 100% 지켰다면 그런 사고가 과연 발생했을까,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

<미키 17>(봉준호 감독 / 로버트 패틴슨, 마크 러팔로, 토니 콜레트 등 출연)에서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언제든지 ‘새로 갈아치울 수 있는’ 저렴한(?) 목숨의 소유자다. 인간을 통째로 복제해서 새로 출력물처럼 뽑아낼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는 세상에도, 여러 가지 위험한 미션을 몸 바쳐 수행할 익스펜더블(소모품)은 필요한 것이다.
작품 속에서 미키는 우주 탐사 미션에 참여해서 여러 차례 생명이 바쳐지면서도(말 그대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면서도’) “죽음이란 항상 두렵다”고 한다. 장르적으론 블랙코미디에 해당하지만 전체적으로 유쾌한 편인 본작을 보면서 내내 웃음만 지을 수는 없었던 건 바로 앞서 언급한 한 젊은 노동자의 죽음이 생각났기 때문. 한 가지 덧붙이면, 대한민국에선 한 해에만 약 2천명 가량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고 이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며 중대재해처벌법이 5인 이상 사업장에 전면 적용된 것은 작년에야 가능했던 일이다.
소심하고 소극적인데다 제대로 못 먹어서 비쩍 마르기까지 한 미키 17 역을 로버트 패틴슨은 정말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아니, 이 찌질한 주인공이 <더 배트맨>의 카리스마 쩔었던 바로 그 배트맨 맞나? 맞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여, 모종의 이유로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 미키 18 역 또한 로버트 패틴슨이 맡았다. 18번은 17번과 달리 과격한 행동파. 정말 신기한 건, 이 둘은 작품 내에선(당연하지만) 외모도 똑같고 복장도 똑같은데 사소한 제스처나 목소리마저도 전혀 다르다는 것. 오, 극찬이 아깝지 않다.
<미키 17>이 참 우스꽝스럽게 보이는(물론 작품의 완성도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분위기가 그렇다는 뜻이다) 것은 일단 빌런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 덕이다. 사실 여기에도 특유의 냉소적인 풍자 정신이 돋보이는 것이, 그는 정치인이자 기업가이면서 동시에 종교인이면서 군인이기도 하다는 것.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될 외계 식민지 개척 사업을 그가 이끌고 있는 것을 보니, 어쩌면 정부(미국이건, 세계연합정부건 그 어디건)로부터 독점계약을 이끌어낸 건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물론, 파시즘과 종교 원리주의까지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
마크 러팔로에 대해서 사소한 언급 하나만 붙이자면, 그의 필모 가운데 본작의 케네스 마샬이 최초의 악역이라고 하던데… <가여운 것들>에서도 악역 아니었나? 아님 말고. ^^;;

전체 제작비 중 상당한 분량이 투입된 것을 보이는(컴퓨터 그래픽 이미지 작업 때문에) 후반부 스펙터클까지 오면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침략자는 과연 누구이고, 죄를 짓고 있는 건 과연 누구인가?’ 어떻게 보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도 할 만한데, 이런 부분이 대사로(매우 직접적으로) 언급되었다는 점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전까지 봉준호 감독의 작업에선 보기 힘들었던 부분인데, 사실 나샤(나오미 애키)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하면 그렇게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아니긴 하고.
개인적으로 원작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커다란 기대엔 다소 못 미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봤다. 다만, 봉준호 감독의 최고 작품이라곤 빈말로라도 하기 힘들고(역시 그의 최고 작품이라면 <기생충> 아닐까 한다). 개봉 일주일차가 된 지금 <미키 17>은 국내에서 1백만 관객 동원을 달성하고 비수기인 극장가에 나름 훈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 안 그래도 이렇다 할 흥행작도 없는 국내 극장가를 조금은 달아오르게 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