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차례 반복해서 이야기하는데, 사람이 몸이 피곤하니 시간과 공을 들여서 각 잡고 앉아서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점차 흐려진다. 의지박약이라고 손가락질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 게다가 새로 시작한 일은 몸만 힘든 일이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받을 경우가 적지 않다 보니 ‘내가 이 월급 받고 이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ㅠㅠ 그러나 어쩌랴. 그 모든 것이 내 선택인 것을. 아무튼 지난 얼마간은 짤막 리뷰로 전할 만한 콘텐츠들마저 그리 많이 즐기진 못했다. 이전의 짤막 리뷰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
지난 얼마간 즐겼던 콘텐츠들에 대한 짤막 소감 첫 번째
지난 얼마간 즐겼던 콘텐츠들에 대한 짤막 소감 두 번째
지난 얼마간 즐겼던 콘텐츠들에 대한 짤막 소감 세 번째
<최악의 악> 한동욱 감독 / 지창욱, 위하준 등

디즈니 플러스 채널 공개 전만 해도 그다지 기대하진 않았던 드라마고, 챙겨볼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곳 저곳의 게시판에서 ‘의외로 재미있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고, 결국 보게 됐다. 그리고 생각했다. 보길 잘 했구나.
모종의 임무를 맡은 경찰이 위장 신분으로 범죄 조직에 잠입한다. 이런 이야기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는 엄청 많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소설인 <목요일이었던 남자>가 바로 이런 내용인데 이 작품은 무려 1908년(!)에 나왔을 정도. 그 외에도 홍콩 느와르 끝자락의 걸작 <무간도>를 비롯해서 한국 영화 <신세계> 등등, 하여튼 여러 작품들이 기억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에선 대개 주인공인 경찰의 정체성을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진다. <최악의 악>에선 그런 상황이 정말 ‘최악의’ 상황에서 그려진다. 주인공인 경찰의 부인(그녀 또한 경찰이다)이 조직 보스의 첫사랑이었다던가, 뭐 이런 식. 한 발 더 나아가서 보스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계속 키워나가고자 한다!
이런 내용만 듣고 있으면 뭔가 굉장히 막장스럽고(…) 신파조 가득한 분위기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드라마를 보게 되면 이 커다란 줄거리가 전체 서사에 굉장히 진한 서스펜스를 가미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에서 잠깐, 스릴러와 서스펜스의 차이는 서사의 특정한 요소를 관객이 알고 있는지의 여부다. 그 요소를 관객이 몰랐다가 나중에 밝혀지면 스릴러,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면 서스펜스.
전체적으로 시원시원하고 선 굵은 연출이 돋보였다. 특히 주연 지창욱을 비롯해서 많은 조연 배우들이 아주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범죄 조직이 배경으로 나오는 드라마의 경우 고만고만한 조연들이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질 때가 많은데 <최악의 악>에선 이미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출연한 바 있는 배우들은 물론이고 뉴페이스처럼 보이는 배우들의 퍼포먼스도 매우 훌륭했다. 뒤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디즈니 플러스 채널에서 2023년 하반기에 힘주어 밀 것으로 보이는 <비질란테>에 비하면 여러 모로 나았던 드라마.
<베컴> 데이비드 베컴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 넷플릭스는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자체 콘텐츠도 많고 그 중에 볼 만한 작품도 당연히 많지만, 은근히 다큐멘터리 쪽에도 볼 만한 작품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실존 인물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다큐가 은근 꿀잼.
그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베컴>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인 데이비드 베컴이 주인공이다. 이 다큐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가 그토록 유명했기에 그가 치러야 했던 이른바 ‘유명세’란 것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베컴이 현역으로 뛰면서 큰 활약을 선보였던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정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20여 년 전인데 소위 유명인이라면 각종 미디어와 팬(이라고 하지만 냄비에 가까운 이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혹독하게 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가만, 요새도 그런가?
그래도 요즘 같으면 연예인이든 스포츠 스타든 누구든 공식 석상에선 개인 사생활에 대해 지나치게 선정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하는 일은 자제하는 분위긴데 20여 년 전엔 그런 것도 없었다는 이야기. 게다가 베컴은 본인도 본인이지만 배우자인 스파이스 걸즈 출신의 빅토리아 또한 그 못지 않은 유명인이었다는 점에서, 못된 이들이 먹잇감으로 삼기 얼마나 좋은 커플이었던가!
<베컴>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나면 알겠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 일가를 이룬 사람을 두고선 ‘(현재 자신의 분야가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어떤 일을 했어도 성공했을 사람’이란 말을 종종 하는데 데이비드 베컴이 바로 그런 사람 아닐까 한다. 앞서 이야기한, 자신을 둘러싼 온갖 부정적인 기류 속에서도 결국 노력과 재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한 사람이 바로 베컴. 만약 이 글을 읽고서 <베컴>이란 다큐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축구를 전혀 모른다면?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어쩌면, 축구를 전혀 모르는(그리고 베컴의 현역 시절 특정 몇몇 경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이 작품을 보면 오히려 재미가 더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노란 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이혁래 감독 / 봉준호 등

이젠 그야말로 전 세계의 영화 팬들이 가장 주목하는 감독들 중 하나가 된 봉준호. 그의 젊은 시절은 어땠을까? 그가 유년 시절, 혹은 30여 년 전 영화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체화한 과정은 또 어땠을까? 바로 눈 앞에 보이는 ‘노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노란 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서 약 30여 년 전 ‘영화’에 대한 관심 하나로 똘똘 뭉쳤던 이들을 조명한다. 그들 중엔 봉준호 감독처럼 영화 현장에 뛰어들어 자신의 커리어를 살려나간 이들이 (소수)있고, 사실 대부분은 영화와는 전혀 동떨어진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노란 문>을 보면, 참 희한한 광경이 나온다. 영화에 대해 공부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정작 영화는 못 보고 ‘책’에 나온 내용으로 영화를 공부한다! ㅋㅋㅋ 당연히 영화 관련 인프라가 지금보다 한참 못한 시절이라 영화 자체를 구하기가 힘들어서 그랬던 것. 그리고 궁금증도 생긴다. 왜 하필 90년대 초반을 전후로 한 때, 대한민국에선 이른바 ‘시네필’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이 갑자기 많이 쏟아져 나왔던 걸까?
여기에서 개인적인 고백 하나 하자면, 나 또한 그 때 ‘노란 문’의 멤버들처럼 영화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하고(가끔 ‘책’을 통해서 영화를 본 셈 치고) 공부를 하고자 마음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러 이름들이 머릿속을 흐른다: 앙드레 바쟁, 앙리 랑글로와,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안제이 바이다, 에밀 쿠스트리차, 아키 카우리스마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씨니피앙과 씨니피에, 롤랑 바르트와 위르겐 하버마스, 거기에다 까이에 뒤 시네마, 키노, 정성일, 김홍준…
아, 옛날 생각 나는구나. 그 때 그 시절의 친구들아, 보고 있나?
<더 킬러> 데이빗 핀처 감독 / 마이클 패스벤더

원작부터가 그래픽 노블이어서 화끈한 액션이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건 없고, 고독한 킬러의 수다스러운 독백(?)만이 이어진다. 그래도 감독이 감독인지라 내내 인상적인 미장센과 을씨년스러운 도시의 이미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혹시 감독, 아니 원작 그래픽 노블의 작가가 에드워드 호퍼의 영향을 조금 받았을까?
혼자만의 생각을 덧붙이면, 왠지 데이빗 핀처 감독은 ‘내가 이런 영화도 만들 수 있지, 에헴!’ 하고 으스대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역시나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감독.
<플루토> 우라사와 나오키(원작)

우라사와 나오키 작가의 동명 원작 만화가 넷플릭스 제작으로 애니메이션화 되었다. 개인적으론 원작 만화를 다 봤던 약 5~6년 전만 해도 애니메이션보다는 실사화 작품을 보고 싶었는데 희대의 망작 <카우보이 비밥>(당연하지만, 넷플릭스의 실사화를 말한다)을 보고 난 이후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
전체 에피소드 8편까지 공개된 <플루토>도 아직은 딱 절반까지밖에 못 봤는데 아직까지는 원작 만화와 거의 동일한 내용이 이어지는 듯하다. 가까운 미래, 사람과 구별조차 하기 어려운 로봇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사람의 일을 대체하면서 개중엔 아예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아이돌 같은 로봇까지 나오는 세상. 그런데, 바로 그런 로봇들이 누군가에 의해 파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게다가 이런 로봇들의 제작에 밀접하게 연관된 사람들마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는데, 현장엔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범인은, 설마 로봇?
일단 직전에 이야기한 커다란 사건들이 시작부터 펑펑 터지는데, 그것만 뺀 나머지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는 생각보다 느려서 살짝 지루한 편이긴 하다. 그래도 이야기 자체의 무게감이 상당하고 우라사와 나오키의 원작 작화가 그대로 살아난 애니메이션 작품을 보는 재미는 솔솔하다.
<비질란테> 최정열 감독 / 남주혁, 유지태, 김소진 등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드라마인데 처음 2편까지의 에피소드를 보고선 그야말로 ‘손발이 오글거려서’ 못 봐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액션은 그럭저럭 볼만한 편인데,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을 굳이 꼽자면 최미려 기자 캐릭터와 김소진 배우의 연기. 정확히 말하자면 배우의 연기 자체보다는 감독의 디렉팅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종종 기자, PD 등 뉴스 미디어 종사자들이 나오는데 그 모습들이 지나치게 스테레오타입화 되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저 선정적인 이슈 몰이에만 관심이 있는 승냥이 정도로 그려지는 편. <비질란테>에서도 마찬가진데, 여기서 더 가관인 건 일개 기자가 한 프로그램의 책임 PD에게 ‘대거리’를 한다. 게다가 PD는 제끼고 아이템 선정까지 기자 멋대로 하고. 방송사가 선후배 규율이 얼마나 엄격한 곳인데!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김소진 배우는 혼자서 연극 연기를 하는 듯한 톤으로 대사를 친다. 김소진만큼 능력 있고 출중한 배우를 데려다가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람.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는 배우보다는 감독의 디렉팅에 따른 결과라고 보인다.
그래도 주연급 배우들은 연기가 볼만 하고 액션도 나쁘지 않으니 계속 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최미려 캐릭터에서 갑자기 거슬리니… 계속 볼까 말까, 생각 중.
<독전 2> 백종열 감독 / 조진웅, 차승원 등

<독전>의 속편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란 소식을 듣고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전작이 속편까지 나올 정도로 흥행이 됐나? 아닐 텐데?’라는 것이 그 중 하나, 나머지 하나는 ‘전작 내용이 뭐였더라? 2편 보기 전에 다시 챙겨봐야 하나?’라는 것.
뭐, 다 제쳐두고, 작품을 보고 나니 처음부터 끝까지 별로여서 그냥 킬링타임만 잘 했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한없이 진지하고 심각한데 보는 사람은 그냥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앞으로가 기대되지도 않는, 웃기는 상황. 보니까 해외 로케이션도 한 모양이던데, 이 정도의 프로덕션 역량을 갖고서 차라리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해서 영화든 드라마든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어느새 2023년도 한 달 조금 더 남았다. 얼마 안 남은 올해 안에 몇 번이나 보리스 매거진을 업데이트할 수 있을지 아직까진 잘 모르지만 그래도 최대한 시간을 내볼 생각이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