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국뽕, <한산: 용의 출현>

<한산: 용의 출현> 속 이순신 장군은 아직 젊은 모습이다

어쩔 수가 없다.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면,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무려 1760만 명) <명량>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두 편은 같은 주인공이 각각 다른 두 배우에 의해 극화되었고, 서로 다른 시간적 배경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다뤘다는 점에서 참 보기 드문 기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전작 <명량>이 관객 동원을 제외한 측면에선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두 편을 비교해 보는 차원에서 전작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는 것.

1760만 명이란 어마어마한 숫자는 사실 대한민국에서 영화를 볼 만한 사람은 거의 다 본 수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전작과 비교해서 ‘좋다 or 나쁘다’는 점만 제대로 언급이 되면 일종의 가이드로서 본 리뷰는 나름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명량>에서 가장 따끔하게 지적을 받았던 부분은, 억지 감동을 쥐어짜낸 점이라고 하겠다. 그 과정에서 신파조가 심하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영화에만 나왔고 실제론 없었던 사건 같은 부분이야 극적 구성을 위한 영화적 허용이라고 할 수 있어도, 민망하기 짝이 없는 대사(“우리 고생을 후손들이 몰라준다면, 그건 호로자슥이지!” 같은)를 굳이 넣어서 평가를 깎아먹은 부분이 의아했던 것이다. 더 안타까운 건, 정말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명량해전은 말년의 이순신 장군이 그야말로 죽을 각오로(실제로 이순신 장군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려면)내가 죽어야겠지…”라는 대사까지 한다) 배수의 진을 친 상태에서 일당백으로 적들과 맞서 통렬한 승리를 거둔 전투가 아니던가!

전작 <명량>과 비교하면, <한산>은 어떨까?

그와 같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번엔 <한산>을 살펴보자. <한산>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화두라고 하면 단연 ‘의(義)’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까진 젊었던 이순신 장군이 당시 바라본, 따라서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이 전쟁의 성격이 바로 의와 불의의 싸움일 것이다. 말하자면 옳음과 그름의 대립. 물론 보는 입장에 따라 대립하는 양자에 대한 해석은 달라지겠지만, 중요한 건 영화에서 그리고자 하는 이 전쟁의 성격이 매우 간결해졌다는 것.

그런 만큼 전작 <명량>에 비해, <한산>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수가 적지 않음에도 개별 캐릭터에 부여하는 서사의 분량은 줄었다. 대신 젊은 이순신 장군의 대사에도 나온 것처럼 “압도적 승리”를 위한 빌드업 과정을 차근차근 거치고, 그 대미는 ‘바다 위의 성(城)’으로 이미지화에 성공한 학익진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이순신 장군 다음으로 중요한 캐릭터(?)인 구선, 즉 거북선이 참전한다.

(업그레이드된)거북선이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대사를 이순신 장군이 직접 내뱉기까지 하지만, 우리 모두는 전투의 클라이맥스 부분에 거북선이 반드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다. 사실 이는 장르 영화에선 이미 익숙한 클리셰. 다만 클리셰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거나 지양해야 할 건 아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마지막, 타노스가 불러온 대군 앞에 홀로 선 캡틴 아메리카가 거기서 허무하게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객이 누가 있을까? 얼마나 덜 진부하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연출을 하는 것이 중요할 터.

그런 점에서 <한산>에서 거북선은 매우 효과적으로 캐릭터화에 성공했다고 본다. <한산>의 해상 전투씬을 보고 있으면 조선 수군과 왜군이 탄 배들은 정말 그저 전투에 필요한 도구처럼 느껴지지만 거북선은 정말이지 살아있는 생물, 혹은 왜군들이 말한 바다괴물 ‘복카이센’처럼 느껴진다. 바다를 휘저으며 왜군들의 배를 박살내는가 하면 왜군이 밀집한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사방에 방포를 하기까지 하는데, 이 순간의 쾌감은 그 어떤 할리우드산 슈퍼히어로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캐릭터화’에 성공한 거북선. 근데 위의 장면은… 살짝 삑사리 났을 때의 모습. ^^;;

전작 <명량>에서, 솔직히 유일하게 건진 부분이 해전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명량>에선 전황이 시시각각 변하는 구석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탄 배 한 척이 선두에서 왜군들을 유인할 때, 승전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한 조선 수군 장수들은 뒤로 한참 빠져 있다가 적절한 순간에 참전하는 등 일진일퇴의 공방(+실제 명량해전에선 없었던 ‘백병전’까지)이 벌어지는 모습을 매우 긴박하게 그려냈다.

반면 <한산>에서의 해전은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산>에서의 해전은 앞서 말한 것처럼 대망의 ‘학익진’이 펼쳐지는 마지막의 그 한 순간을 위해 서사를 쌓아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사이사이 거북선이 선보이는 개인기(?)로 지루할 틈은 없다.

<한산>에선 배우들도 빛났다. 박해일 배우는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역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전작의 주인공 이순신 장군 역에 적잖은 부담을 가졌을 법한데 이순신 장군의 이른바 ‘정중동’의 모습을 잘 소화했다.

이 작품에서 최고의 연기는 단연 와키자카 장군 역 변요한 배우에게서 볼 수 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세간의 평을 듣고 그에 대해 이해를 하는, 그리고 전장에서 이순신 장군을 만나 지략을 펼치는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이것 봐라? 제법인데?’ 라고 하는, 기어코 자신의 마지막을 마주하게 되고는 ‘모든 것이 끝났구나’라고 하는, 그 각각의 심정을 모두 눈빛으로 보여주는, 정말 탁월한 연기를 선보였다(덧붙이면 실제 와키자카 장군은 한산대첩에서 패퇴했지만 결국 살아남아 구사일생으로 일본에 돌아갔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정중동’의 모습을 잘 보여준 박해일
그야말로 눈부신 연기를 선보인 변요한. 왠지 분량도 이순신 장군보다 많은 듯한 느낌

그 외에 늙었지만 노련한 장수 어향도 역 안성기, 일본 출신으로 조선에 투항하여 왜군과 맞서 싸운 항왜 장수 역 김성규, 윤제문, 김성균, 김민재 배우 등 꽤 많이 알려진 주/조연급 배우들이 적지 않게 출연해서 모두 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신파조의 대사도 적고 전반적으로 담백한 모습을 담아냈다고 하는 와중 개인적으론 기름기를 조금만 더 걷어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지만, 또 한편으론 전작에서 하도 지적을 많이 받은 감독이 참고 또 참은 결과가 지금 보는 <한산>일 거란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곧 우리는 충무공의 마지막도 만나게 된다. 바로 <한산>과 거의 동시에 촬영을 했다는 ‘이순신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이자 실제 이순신 장군이 전사를 한 바로 그 전투, 노량해전을 그린 <노량: 죽음의 바다>가 남아있는 것(이 작품에선 김윤석 배우가 이순신 장군 역할을 맡았다). 여러 모로 한국영화 역사상 다시 존재하기 힘들, 높은 수준과 규모를 보여준 이 기획의 대단원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에 자부심을 갖는 일을 저어하지 말지어다. ‘이유 있는 국뽕’은, 나쁜 게 아니다.

국뽕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나쁜 건 비틀린 애국심과 그걸 이용해 먹으려는 장사치의 못된 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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