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툼레이더>: 라라 크로프트가 여전한 사랑을 받는 이유

※ 필자 주: 본 글은 지난 1996년 첫 타이틀 출시 이후 2018년의 최신 타이틀 <섀도 오브 더 툼레이더>까지 20편이 넘게 출시된 게임 <툼레이더> 시리즈 전체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인상비평입니다. 게임에 대해 밝지 않은 독자에겐 다소 낯선 표현이 나올 경우 양해 부탁 드리며, 이른바 ‘리부트 3부작’이라 일컬어지는 <툼레이더 리부트(2013)>, <라이즈 오브 더 툼레이더(2015)>, <섀도 오브 더 툼레이더(2018)> 위주로 언급됩니다.

그녀의 데뷔는 충격 그 자체였다

법에서 정한 성인으로서의 연령도 훌쩍 지나 이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세대가 태어날 무렵인 지난 1996년, 라라 크로프트의 데뷔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게임을 즐기는 인구 중 다수는 남성인데, 그런 남성 소비자들에게 (보다 쉽게)어필할 수 있는 여성 캐릭터로서 라라의 장대한 스토리가 시작된 것.

물론 라라 이전에도 게임 속 여성 캐릭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실제 뛰고 구르고, 점프하고 총질을 해대는 한편으로 특정 학문 분야(고고학)의 지식을 갖추고서 온갖 위험한 플레이를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해내는, 그러면서 그 누구보다도 섹시한 여성 캐릭터로서의 라라는 충분히 인상적인 것이었다.

당연히 후속작들이 뒤이어 출시되면서 시리즈가 이어졌고, 몇 번은 나쁘지 않았으며 몇 번은 매너리즘에 빠지는 가운데 2013년(이것도 벌써 10년 전이다) 리부트를 통해 출시된 타이틀은 이 시리즈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음을 부정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고사양의 플랫폼 덕을 본 거긴 하지만 훌륭한 그래픽과 박력 넘치는 연출, <언차티드> 등의 후배(?)들이 참조한 성공적인 플레이의 요소들을 집대성한 구성은 물론, 누구나 부담 없이 플레이를 즐길 수 있게 해준 넉넉한 판정 시스템 등이 모두 좋은 평가를 받은 것.

섹스어필의 요소를 벗어버린 라라 크로프트(툼레이더 리부트)

전반적으로 이전의 클래식 시리즈를 발전적으로 계승한 가운데, ‘뭔가 매우 중요한’ 보물을 찾아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서 갖은 고생을 다 겪으며 성장을 이룩하는 캐릭터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 라라 크로프트를 지금의 인기 캐릭터 반열에 올려놓는 데에 큰 영향을 준 ‘섹스어필’의 요소는 빠졌다. 돋보이는(?) 가슴이 거의 드러난 탱크탑, 아찔한 핫팬츠는 어느 모로 보나 성적 대상화라는 혐의를 벗어나기 힘든 요소. 바야흐로 21세기에 성공적인 시리즈로서 명맥을 이어가길 원한다면 현대의 소비자들이 지향하는 감수성을 반영해야 함을 잘 이해한 결과라고 하겠다(덧붙이면 리부트 시리즈에선 게임 도중 라라의 복장을 다양하게 바꿀 수가 있다. 물론 과거의 ‘클래식’ 복장도 포함해서).

그렇다면 혹시, 여기에서 라라 크로프트로부터 고고학자로서 불편부당한 역사적 인식을 요구할 수는 없을까? 그 점에 대해선 게임 자체에 대한 평가를 떠나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들다는 의견에 적지 않은 이들이 공감할 듯하다. 우리 모두는 과거 제국주의에 의한 침탈의 역사를 아직 기억하고 있고 그 상처도 여전한데, 세계 각지의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외국의 신비한 고고학 유물을 ‘수집’하는 캐릭터가 벌이는 활극에 열광을 한다는 게 부끄러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툼레이더> 시리즈는 그 플레이의 특성상 한 타이틀에 일정한 시작과 끝맺음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내러티브의 중요성이 강조되기에, 이야기의 구성에 더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근작 <라이즈 오브 더 툼레이더>와 <섀도 오브 더 툼레이더>의 경우 스토리 모드를 마치고 난 이후 2차, 3차 플레이를 통해 다양한 콜렉팅 요소에 도전하게 만드는 이른바 오픈 월드의 형식을 취하고 게이머들에게 이를 권장하고 있지만, 역시나 시리즈의 특성 때문에 스토리가 끝나고 나면 플레이의 목적의식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

라라가 벌이는 활극에 지나치게 심취한다고, 미안한 마음까지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게임을 게임으로 즐기는 일에 지나치게 엄격한 판단 기준을 세우고서 ‘역사적 인식의 탈각’이니 어쩌니 하는 데에까지 이르진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게임의 소비자로서 즐길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즐기되, 제품의 완성도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의문과 요청할 수 있는 사항은 가능한 경로를 통해 제작사에게 충분히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정도가 맞지 않을까 하는 것.

마지막으로, 약 10여 년 전에 <툼레이더> 시리즈를 즐기던 때와 2022년 바로 지금 <툼레이더> 시리즈를 즐길 때의 차이에 대해 덧붙이고자 한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게이머들이 꽤 자주, “나이를 먹으니 젊었을(혹은 어렸을) 때만큼 게임을 즐기지 못하겠다”는 말을 한다. 그 이유는 당연히 나이를 먹으면서 체력과 집중력이 부족해지면서 느끼게 되는 현상일 터.

그런데 여기에, 이전엔 실감하기 힘들었지만 나이 먹고서 묘하게 절실하게(?) 실감하게 되는 일이 또 하나 더 있으니, 그것은 바로 게임 캐릭터의 액션에 따라 플레이어인 내가 몸에 캐릭터와 비슷한(!) 수준으로 힘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방구석에서 <툼레이더>를 플레이하는 아저씨들 대부분, 아니, 거의 모두는 라라처럼 벽에 매달릴 수도 없고, 준비 없이 아찔한 짚라인에 뛰어들 수도 없으며, 수영은커녕 뜀박질도 30초 이상 못 할 것이다. 그런데 라라가 정말 움찔움찔하게 만드는 액션을 취할 때마다 꼭 사지에 힘을 주게 되니… 그러면서 체력과 집중력이 더더욱 금방 고갈된다는 것.

나이를 먹으니 참 별 게 다 서러워진다. ㅠㅠ

그건 그렇고, 이달 초 <툼레이더> 시리즈의 팬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이 시리즈의 차기작이, 새롭게 공개된 언리얼 엔진 5로 제작이 된다는 것. 아직은 제작 초기 단계라고. 출시 전 예상에 비하면 다소 못 미친 완성도를 보였던 최신작 <섀도 오브 더 툼레이더>보다는 나아진 모습을 기대한다.

라라와 함께 새로운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됐는가, 게이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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