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삼 재론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게임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시리즈의 인기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그 인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 정도. ‘스타크래프트’ 1편도 그렇고, ‘디아블로’ 시리즈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았던 2편의 경우도 첫 출시로부터 20년도 넘게 지났는데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수많은 게임들이 포스트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2’를 표방하고 나섰지만 그 어떤 게임도 그 자리에 올라서지 못했음은 자명하다.
그리고 블리자드는 ‘디아블로 2’를 그 옛날 시스템 그대로, 그래픽만 보강해서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디아블로 2 레저렉션’. 블리자드의 복안은 당연하게도 20년 전 이 게임을 즐겼던 청년들이 이제 아재가 되어서도 그 옛날 향수를 떠올리며 잠깐 접속하는 게임 속에서나마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것이었을 게다.
그런데 블리자드는, 20년 전의 기억을 ‘필요 이상으로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말았다. 마치 게임 속에서 다른 유저들과 파티를 맺어 잡고, 잡고, 또 잡았던 디아블로와 메피스토 같은 몬스터들이 재접을 할 때마다 살아 돌아오는 것처럼. 무슨 이야긴고 하니, 바로 게임 서버 이야기. 지난 9월 출시되어 역시나 20년 전 악마를 수도 없이 사냥하고 이 땅에 정화를 가져왔던 역전의 용사들을 게임으로 불러모으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20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접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 용사들을 낙심하게 만들고 있는 것.
문제는 과거에 ‘디아블로 2’를 즐겼고 지금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을 즐기는 유저들이, 20년 전엔 홀몸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데에 있다. 아무래도 과거에도, 지금도 블리자드 게임들의 가장 큰 지지세력은 대략 30대 중후반 ~ 40대 초중반(혹은 50대 초반까지) 정도에 속하는 남성 유저들일 텐데 지금 딱 그 나이 또래는 가정을 꾸렸다면 아이들이 어린 경우가 많아 오롯이 게임을 즐기기엔 녹록치 않은 상황이란 것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게임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기도 한데, 아무튼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서도 정말 잠시 짬 좀 내서 게임 좀 해보자고 몰려든 아재들이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밤 10시만 되면 울부짖는 3040 “애 재웠다, 게임 좀 하자” (https://news.v.daum.net/v/20211016003953748)
블리자드는 속히 서버를 증설하든, 어떻게든 해서 20년만에 다시 악마 사냥에 나선 아재들을 욕보이지 말아야 한다. 안 그래도 안팎으로 어려운 일이 많은 요즘, 건전(?)한 취미생활 좀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란 말이다!
경영학에 ‘므두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이란 말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좋았던 옛 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일종의 추억보정 같은 현상. 어쩌면 지금의 대한민국 아재들은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을 플레이하면서 지금 당장 더 좋은 아이템을 줍줍하는 것보다, 그래도 팔팔했던, 예컨대 친구들과 1차 삼겹살에 소주, 2차 맥주에 마른안주, 3차 감자탕에 소주까지 달리고 PC방으로 가서 파티로 공포의 군주 디아블로, 파괴의 군주 바알, 앵벌의 군주(?) 메피스토를 때려잡은 다음 24시간 해장국집에서 아침까지 회포를 풀었던 그 시절의 향수를 더 소중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아, 좋았던 옛 시절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