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지시르(Panjshir), 모두가 목놓아 부르는 이름이 되기를

중앙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나라 아프가니스탄을 최종적으로 장악했다고 탈레반이 대내외에 공식적으로 선언을 한 것이 지난 2021년 8월15일.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광복을 노래한 바로 그날,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비롯한 아프가니스탄 전역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손에 떨어진 것.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에 있는 판지시르(Panjshir) 지역에선 글을 작성 중인 9월 초까지도 탈레반과, 이에 맞서는 아흐마드 마수드(주니어)의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전선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서로 자신들의 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판지시르에선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에 대한 정확한 답변이 사실상 불가능한 이유는 이 지역에서의 전황은 그야말로 분초를 다투며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 그러니 조금 더 그럴싸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판지시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판지시르는 엄밀히 말하자면 힌두쿠시 산맥을 사이로 흐르는 판지시르강을 따라 길게 뻗은 판지시르 계곡을 말한다. 이 계곡은 북쪽으론 타지키스탄과 중국과 파키스탄을 접하고 있는 바다흐샨, 남쪽으론 넓은 쇼말리 평원으로 연결된다. 전체적으로 척박한 아프가니스탄 영토 내에선 거의 유일하게 비옥한 땅이면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가치도 매우 높은 지역.

하필이면 이 지역에서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전선이 맹렬하게 맞붙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면 판지시르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는 평균 해발 고도가 5천미터 수준으로 그 자체가 매우 깊은 협곡이며 첨단 무기로도 공략이 힘든 곳이기도 하다.

탈레반이 판지시르의 행정 수도인 바자라크 청사를 점령하고 그 앞에서 기념 촬영한 사진을 공개한 것이 지난 9월6일의 일. 그러나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 정보국의 개입 정황이 드러나자 국민저항전선을 이끄는 마수드 주니어가 이를 공개하면서 ‘외세 배격 + 반 탈레반’의 정서를 자극하는 고도의 전술을 폈다.

그리고, 이에 호응을 한 이들이 판지시르로 집결했다!

카불 함락 직전 자신들이 관리하는 전투기와 헬리콥터 등의 전략 자산을 몰고 타지키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으로 망명했던 전직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소속의 파일럿들이 바로 그 전투기와 헬리콥터 등을 몰고 다시 판지시르로 돌아와 탈레반을 공격했으며, 카불 함락 직후에도 탈레반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아직 노선을 확고하게 정하지 않았던 북부 지역의 소수 군벌들(반 파키스탄 정서가 무척이나 강한)까지 자신들의 병력을 이끌고 역시 판지시르로 진격을 한 것. 그리고 판지시르를 장악했다고 주장한 탈레반은 적지 않은 사상자를 남긴 채 퇴각했다.

2021년 9월 초까지, 외신은 물론 SNS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진 판지시르의 전황은 이렇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현지의 상황은 시시각각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또 언제 어떻게 다른 이야기가 전해질지 장담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

그렇다면,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의 윤곽을 어렴풋하게나마 잡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판지시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패퇴를 목전에 두고 있던 이들 앞에 돌아온 로한의 기마대처럼, 마치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마지막에 부서진 방패를 들고 홀로 일어섰던 캡틴 아메리카 앞에 돌아와 집결한 어벤져스처럼, 근사하고 드라마틱한 장면이 현실에서 연출될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기억하자.

21세기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지 않다고 부르짖는 극단적 원리주의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게 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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