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隔世之感).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들이 바뀌어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뜻의 고사성어. 일반적으로 그저 단순히 ‘바뀐다’는 차원보다는 다소 긍정적인 뉘앙스로 많이 쓰는 말이다. “철수가 작년만 해도 수학에선 50점도 간신히 맞았는데, 지난 달 기말고사에선 90점이나 맞았으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하는 식으로.
그런데 오늘 오전에 한 뉴스 기사를 보고는 조금 이상한(?) 데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었다. 당연하지만, 뭔가 긍정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었다.
‘열도의 소녀들’이라며 성매매 155만원 강남 온 일본 여성들(머니투데이)

위 뉴스는 일본인 여성을 동원하여 성매매를 알선한 일당이 검거되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온라인 성매매 사이트에 ‘열도의 소녀들’이란 제목의 글(네이밍 센스 하고는 참… 거기다 ‘소녀’라는 말을 갖다 붙이면 관심을 더 많이 끌 수 있을 걸로 생각한 모양이다)을 올린 일당 4명과 함께, 성매매에 직접 참여한 일본인 여성 3명도 검거된 것.
대한민국에서 적어도 중년 이상의 세대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일본’이란 단어와 ‘성매매’란 단어의 조합에서 매우 느끼한 냄새를 맡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에서 19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반 정도까지의 기간 동안 일본의 돈 많고 나이도 많은 남자들이 한국의 젊은 여성을 이른바 ‘현지처’로 두고서 성매매를 하는 일이 왕왕 있었고 뉴스에도 가끔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더불어서 비슷한 기간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었다. 일본에서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들이라면 으레 한국으로 여행을 오는 일이 잦았는데, 방학 기간에 한두 달 바짝 아르바이트를 하면 ‘무척 호화롭게’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한국 여행을 할 수 있는 비용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
참,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라고 아니 할 수가 없다. 굳이 성매매 이야기까지 꺼내지 않더라도 대학생들의 여행 이야기라면 지금 완전히 뒤바뀌지 않았는가? ‘제주도 가느니 일본 간다’는 이야기가 나온 건 최소 10년도 넘은 듯하다. 물론 그 말엔 (여행객 입장에서)제주도 물가가 비싸다는 뜻이 숨어있지만 최근 기록적인 엔저 현상이 지속되며 ‘거리도 가깝고, 경제적 부담도 덜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기 좋은 여행지’로 일본이 뜨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면서 옛날에 들었던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대학생 시절 정말 좋아했던(지금도 좋아한다. ^^;;) 정태춘 선생이 부른 <나 살던 고향>이란 노래. 제목만 들으면 갸우뚱할 수도 있겠지만 “육만 엔이란다~”라는, 매우 인상적인 시작 부분의 가사는 한 번 들으면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그 노래. 나는 어느 대학 축제 무대였는지 아니면 공연이었는지, 따지고 보니 그게 그거네. 아무튼 정태춘 선생이 직접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부른 노래를 직접 들었다! 그 처연했던 가사 하며, 멜로디는 또 어떻고. 30여 년 전 ‘섬진강’의 몸값은 육만 엔이었는데… 아무튼, 참 이상한 데서 격세지감을 느꼈던 하루.
나 살던 고향
곽재구 시 / 정태춘 곡
육 만 엔이란다
후꾸오까에서 비행기 타고
전세 버스 부산 거쳐, 순천 거쳐
섬진강 물 맑은 유곡 나루
아이스 박스 들고, 허리 차는 고무 장화 신고
은어 잡이 나온 일본 관광객들
삼박 사일 훌코스에 육 만 엔이란다
초가 지붕 위로
피어 오르는 아침 햇살
신선하게 터지는 박꽃 넝쿨 바라보며
니빠나 모노 데스네, 니빠나 모노 데스네
까스 불에 은어 소금구이
혓바닥 사리살살 굴리면서
신간센 왕복 기차값이면
조선 관광 다 끝난단다 음, 음
육 만 엔이란다
초가 지붕 위로
피어 오르는 아침 햇살
신선하게 터지는 박꽃 넝쿨 바라보며
니빠나 모노 데스네,니빠나 모노 데스네
낚싯대 접고, 고무 장화 벗고
순천의 특급 호텔 싸우나에 몸 풀면
긴 밤 내내 미끈한 풋가시내들
써비스 한 번 볼만한데 음, 음
환갑내기 일본 관광객들
칙사 대접받고, 그저 아이스 박스 가득, 가득
등살 푸른 섬진강 그 맑은 몸 값이
육 만 엔이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좆돼부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