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중화민국(신해혁명 이후 중국에 수립된 과도 공화정)의 정치가이자 군인으로 활약했던 장쭤린(張作霖, Zhang Zuolin)이란 인물이 있다. 장제스 이전까지는 중국 대륙에서 가장 파워가 막강했던 군벌이었는데, 그가 만주를 기반으로 세력을 넓히던 때는 하필이면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만주의 막대한 자원과 함께 ‘대륙 진출’의 꿈을 꾸고 있던 시절과 겹친다.
아무튼 1925년 일본은 이른바 미쓰야 협정을 체결, 장쭤린이 한국 독립군을 토벌하는 만큼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한다. 이에 따라 장쭤린은 그 누구보다 악독하게 한국 독립군을 잡아들였으며 그 과정에서 독립군과는 거리가 먼 한국인들도 많이 잡혀가 고문과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겐 만주에서 세력을 키워나가는 장쭤린이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다. 어쩌면 애초부터 장쭤린에게 큰 부를 안긴 미쓰야 협정 자체가 그의 환심을 사서 경계심을 늦추게 하기 위한 움직임이었을 수도 있다(사실 일본과 장쭤린 사이엔 만주에 철도를 건설하는 일로 의견차이가 생기기도 했다). 장쭤린의 효용가치가 다했다고 판단한 일본은 관동군 참모 고모토 다이사쿠로 하여금 장쭤린을 암살하도록 ‘사실상’ 사주한다. 장쭤린이 탄 열차가 지나는 다리에 설치된 폭탄이 터지면서 그가 목숨을 잃으니, 이것이 1928년의 황고둔 사건이다. 사망 이후 장쭤린의 본거지였던 만주가 고스란히 일본의 손에 들어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세계사에서 살펴볼 수 있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사냥이 끝나면, 효용가치를 다한 사냥개는 숙청되고 만다는 것이 그 의미. 위에 예로 든 이야기처럼 꼭 전쟁이나 아니면 적어도 목숨을 걸고 벌어지는 일은 아닐지라도 실제 토사구팽의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서기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보게 되었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여당과 여당 소속의 서울시장, 서울시의회 의원들에겐 김어준을 쫓아내는 것으로 TBS의 효용은 다했다. ‘그렇게만 하면, 예산을 주겠다’고 직접적인 워딩으로 이야기한 사람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작년 연말까지의 상황을 놓고 보면 그야말로 삼척동자도 알 수 있던 사실 아닌가? 그런 데다 그걸 믿기까지 했으니. ㅋㅋㅋ
이렇게 된 이상, 어쩌겠는가. 뉴스공장 시절 끌어 모은 유튜브 구독자 수로 뭘 어떻게든 사업을 벌이든지, 아니면 말든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 각자도생의 트렌드는 그 누구도 피해가지 않는다는 것이 2023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