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시장’이란 단어를 이야기하면 각자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닭 한 마리 칼국수와 육회, 김밥 등을 비롯한 다양한 먹거리가 떠오를 수도 있고, 패션 산업의 중심지라는 이미지도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와중, 적어도 지난 2005년 이후 동대문시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 이라면 미처 못 보고 지나치기 힘든 동상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 이름을 다시 되뇔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이름, 바로 전태일.

전태일이라는 이름 석 자는 대한민국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이정표였고, 이후로 수십 년간 대한민국 사회가 발전해 나가야 하는 지향점이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52년 전 스스로 산화하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던 전태일은 당시 우리 사회에서도 가장 비참한 생활을 피하기 힘들었던 도시 노동자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했던 것. 그리고, 전태일 이후에서야 비로소 전국 각지의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환기가 이루어지며 1970년대 민주노조 설립에 이어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6월 항쟁, 그리고 대기업에서의 노조 조직 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전태일은 매우 가난했던 탓에 초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한 채 17살 때부터 동대문 평화시장 내 봉제공장에서 일을 했다. 당시 인근의 봉제공장에는 전태일의 또래거나 그보다도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하루는 병에 걸려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어린 여공이 해고를 당하는 모습을 본 전태일이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고… 급기야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 ‘영원한 청년, 착하고 마음씨 좋은 오빠 전태일’로 남게 되었다.


지난 10월15일,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SPC 그룹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에서 업무 중이던 직원이 소스 배합기 기계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민들은 하필이면 사망한 직원이 집안에선 가장 노릇을 하던 젊은 20대 여성 노동자였다는 점에 특히 더 안타까워했고, 사망사고가 발생한 현장조차 온전히 수습되지 않았는데 현장에 얇은 천만 쳐놓은 채 업무를 지속할 것을 지시했다는 회사측의 행태를 전해 듣고선 분노했다.
정말 아연실색할 만한 내용은, 이번에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계에선 불과 일주일 전에도 한 직원의 손이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해당 직원이 정규직 아닌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회사 차원에서 병원에 데려가는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SPC 그룹은 사망사고 직후에도 특별한 입장발표나 언급이 없었으나 시민들의 지탄이 늘어나자 사고 후 이틀이 지나서야 유가족에게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긴)했다.
SPC 그룹은 파리바게뜨를 비롯해서 베스킨라빈스 31, 던킨 도넛츠 등 유명 프랜차이즈를 다수 보유한 식품 업계의 중견 기업이지만, 노동자에게 민주노총 탈퇴를 종용하는 등의 부당노동행위를 다수 자행한 사실이 드러나 애초부터 예민한 소비자들 사이에선 이미지가 매우 나빴던 기업. 그러면서 이번 사고까지 발생하자 많은 시민들이 ‘SPC 불매’라는 키워드를 SNS에 걸고 불매운동 동참에 나서고 있다.
2022년의 대한민국 사회는, 한 젊은 노동자가 목숨을 바쳐 고발한 52년 전의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얼마나 발전했는가? 그때보다 지금이 그나마 나아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깨어있는 시민들의 참여가 훨씬 용이해졌다는 점일 터다.
우리는 ‘피 묻은 빵’을 먹을 수는 없다.

사람이 죽었다. 한 세상이 사라졌고,
무한한 가능성이 꺼져버렸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