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나 지인을 만나 술잔을 나누면서 회포를 풀고, 늦은 시간 귀가를 하려는데 이미 지하철과 버스는 끊겼고 택시를 잡으려니 도통 오지 않는 차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는 비용을 흥정하는가 하면, 서울로 치면 영등포나 양재, 사당처럼 외곽으로 빠지기 직전에 위치한 동네에선 아예 두당 일정 금액을 지정(?)하고 승객 4명(그러니까, 운전사까지 총 5명)이 찰 때까지 기다렸다 출발을 했던 경험도, 술 좀 마셨다 하는 사람 치고 없는 사람 없을 것이다.
물론 요즘은 어지간해선 접하기 힘든 광경이 되었다.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을 거치면서 밤 늦은 시간까지 부어라 마셔라 하는 사람도 적어졌을 뿐더러, 스마트폰 앱으로 목적지와 금액까지 한 큐에 해결할 수 있는(물론 그런 택시도 물리적으로 내가 있는 위치에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긴 마찬가지) 세상이 되었으니.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택시 합승이 공식적으로 허용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국토교통부(장관 원희룡)는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이 2022년 6월15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개정안의 골자는 당연히 택시 합승 허용. 사실 합승이라면 앞서 이야기한 예전 스토리 못지 않게 짜증나고 불쾌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한데, 왜, 하필 지금 이런 개정안을 국토교통부가 내놓았는지 의문이다.
그래서 한번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의 택시 합승 허용에 관해서.
1) 플랫폼 택시만 가능?
전술한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은 “합승 서비스를 운영하려는 플랫폼가맹, 플랫폼중개사업자의 플랫폼 서비스가 갖춰야 할 승객의 안전, 보호 기준”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이른바 ‘플랫폼 택시’란 것만 합승 서비스가 가능한 것.
그렇다면 플랫폼 택시란 건 뭐지? 간단하게 말해서 브랜드화를 이룬 택시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회사택시, 혹은 개인택시 상관 없이 특정 플랫폼에 가입해서 네트워크를 통해 승객 및 교통 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운행되는 택시가 바로 플랫폼 택시.

그런데 조금 웃기는(?) 건, 이미 현재 대한민국에서 운행되는 전체 택시 약 24만여 대 가운데 약 22만여 대(92.8%)가 특정 단일 플랫폼, 그러니까 ‘카카오 T’에 가입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비율은 특히 수도권에서 높은데, 서울 택시의 카카오 T 가입 비율은 98.2%, 경기도는 무려 99.3%, 인천은 98.8%에 달했다. 카카오 T를 제외한 플랫폼은 UT, 타다 등이 있는데 이 비율까지 합하면 합승이 허용된 택시는 사실상 지금 길에서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 택시 대부분에 해당되는 것이다. 물론 합승을 허용하는 조건이 승객 본인의 확인이라면 특정 플랫폼에 소속된 택시에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90%가 넘는 택시가 대상이라고 하는 건, 글쎄, 좀 웃기는 일 아닌가 이 말이다.
2) 합승은 동성(同性)만 가능?
이번 개정안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부분이 바로 ‘합승은 동성만 가능하다’는 것. 합승을 원하는 승객은 합승을 하기로 한 다른 승객에게 본인의 탑승 시점과 위치를 공개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성별을 통해 필터링이 되는 것이다.
혹시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성 관련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고육책이란 건 알겠는데, 생각을 해보면 동성간에도 성 관련, 혹은 다른 종류의 범죄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실제 성범죄 관련 데이터를 조사해보면 피해자의 80%가 여성인데(이 수치에는 군대, 교도소 등 특수한 장소에서 벌어진 성범죄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 가해자의 대다수인 80%는 남성이지만 나머지 약 20%에 달하는 경우는 동성인 여성에 의해 저질러졌다. 당연하게도, 남성을 대상으로 남성 가해자가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많다.
어쨌든 오죽했으면 이런 제한까지 둘까 하는 생각도 든다.
3) 합승이 필요할 정도로 택시 승객이 많고, 택시 대수가 부족한가?
글 초반에 언급한 것처럼 최근엔 늦은 시간에 택시를 잡는 일이 예전처럼 어렵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서울의 택시 이용 건수는 팬데믹 이전인 2017년부터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 물론 이제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이 모두 해제되고 이곳 저곳에서 ‘마치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는 있지만, 진짜 합승이 필요할 정도로 택시 승객이 많고 택시 대수가 부족한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사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적 모임을 가질 수가 없게 되다 보니 혼술, 홈술을 하는 경우도 늘어났고, 우리 주변에선 건강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 이도 많아진 것을 볼 수가 있다. 즉, 주류 소비 문화의 트렌드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 어차피 늦은 시간에 택시를 탄다는 그 자체가 음주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 부분 아니겠는가?
국토교통부의 택시 합승 허용에 대해 몇 가지를 살펴봤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이전에 종종 겪으면서 그 ‘짜증나고, 불쾌한’ 기억의 원흉이 되었던 택시 기사의 강요에 의한 합승은 여전히 법적으론 금지다. ‘택시 합승 허용’이란 뉴스 제목만 보고 식겁했던 독자가 있다면, 그 부분은 알아두시기 바란다.
그건 그렇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택시 자체를 타본 지가 참 오래 됐다. 따지고 보면 이전에 택시를 탈 때 합승 강요만큼 빡쳤던 건 (일부)택시 기사들의 되도 않는 정치 타령이었는데. 그런 부분이나 좀 개선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