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바다, 너무 고요해서 탈(?)

가까운 미래. 지구는 환경오염 등의 영향으로 인류 생존에 필수 요소인 물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다. 모든 강은 말라버렸고, 하늘에선 눈비도 더 이상 내리지 않게 되었다. 철저하게 통제된 상태에서 사람들은 ‘계급’에 따라 정해진 양만큼만 물의 배급을 받을 수 있게 된, 디스토피아의 미래.

그런 중, 달에 건설된 ‘발해기지’에서 발생한 모종의 사태로 인해 상주 연구원 백여 명이 몰살을 당하고 기지는 이내 폐쇄된다. 5년이 넘도록 방치된 기지에서 매우 중요한 샘플을 회수하는 임무가 주어지고, 과학자와 의사, 그리고 군인들로 구성된 그룹이 이 위험한 임무의 수행에 나선다.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그들. 과연 이 임무는 성공할 것인가?

어디서 참 많이 봤던 이야기. 지난 202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한국 드라마 ‘고요의 바다’ 이야기다. 물론 그렇게 진한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 드라마가 함량 미달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선 안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전 세계의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사랑을 받는 이야기 구조 자체가 그저 몇 가지 구성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그러니까 ‘흥미로운 이야기란 게 구조를 살펴보면 사실은 대부분 비슷하다’란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작품, ‘겨울왕국’의 서사를 이미 거의 1백 년 전 러시아의 민속학자 블라디미르 프로프가 정립한 이론으로 어렵지 않게 해석을 하고 도식화를 할 수 있다는 점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아뿔싸,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무엇보다 ‘고요의 바다’가 야심적으로 표방한 장르는 SF. ‘사이언스 픽션’이란 장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선 모든 사람이 각자의 의견을 가질 수 있겠으나, 거기에서 빠져선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과학적 당위성.

‘고요의 바다’ 직전에 역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카우보이 비밥’(애니메이션 말고, 그 목불인견의 실사판 드라마)에서, 캐릭터들이 넘나드는 우주의 여러 행성은 그냥 지구와 똑 같은 대기와 중력을 갖고 있다.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런데 그런 걸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 건 이 드라마가 SF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요의 바다’에선 이야기 전개, 캐릭터의 행동, 갈등 상황과 해결에 이르기까지, 하여튼 드라마투르기를 이루는 그 모든 요소가 엄밀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에 두고 있어야 한다. 아니, 그래야 했다. 작품 내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인 ‘월수’를 두고 ‘분자 구조가 지구의 물과 다르지만 물이다’라고 하는 식의 대사가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다(다른 이야기지만, 분자 구조가 다르면 그건 그냥 서로 다른 물질이다). 완벽하게 규명되지 않은 모든 현상과 물질은 안 그래도 열악한 달표면의 기지라는 상황에선 모두가 잠재적인 위협 요소임에도 전문가란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헬멧을 벗고, 장갑조차 안 끼고 다니는 일이 발생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아니, 다 제쳐놓고, 전 지구적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물질을 5년이나, 그것도 달표면에 위치한 기지에 그대로 방치한다? 이건 과학적 엄밀성의 부재 정도가 아니라 이야기의 개연성 부족이다.

결과적으로 ‘고요의 바다’를 많이 타박한 글이 되었지만, 한국 드라마로선 정말 드물게 우주를 배경으로 한 본격 SF(를 표방한) 작품이란 점에서 그 시도에 나름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음은 있다. CG로 매우 근사하게 표현된 달표면과 우주 등은 확실히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모습과 비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편. 그리고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히트를 기록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공개 직후에 연달아 공개된 작품이기도 해서 시청자들의 기대가 너무 많이 높아진 상황에서 공개된 일 또한 ‘고요의 바다’로선 다소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앞으로 적어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대부분의 한국 콘텐츠들은 필연적으로 ‘오징어 게임’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앞으로는 여러 측면에서 더 잘 다듬어진 한국 SF 드라마를 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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