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이 어떤 사건(특히 부정적인 내용의)에 연루되어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그런 경우 당사자가 어쩌다 뉴스의 카메라에 포착되거나 아니면 아예 사법기관의 포토라인에 설 때가 있는데, 그 유명인이 실제로 범죄를 저질렀는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서 참 희한하게도 그/그녀의 ‘패션’에 관심이 갈 때도 있다.
황색 저널리즘에 절여질 대로 절여진 미디어가 이런 그릇된 풍조를 조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돌이켜보면 사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은근히 역사가 깊다. 세기말 신드롬이 우리 사회를 한참 달구던 지난 1999년 살인, 강도 등 희대의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극을 펼치다 결국 경찰에 검거된 신창원을 아직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수갑이 채워진 채 카메라 앞에 섰던 그는 참 희한한 디자인의 쫄티를 입고 있었는데 그게 나름 유명 브랜드의 제품으로 알려지면서 동일한 디자인의 티셔츠가 잠시 유행(?)한 적이 있다(참고로 당시 신창원이 입고 있던 건 가품이었다고).
그 외에도 2016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법원에 조사를 받으러 가던 최순실이 취재진 사이에서 밀쳐지면서 구두 한 짝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었는데 그 구두 브랜드가 하필 프라다여서 ‘악마는 역시(?) 프라다를 입는다’는 말도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고. 덧붙이면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그녀가 입었던 노비스 패딩이 유행하기도 했다. 꼭 패션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역시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하여 열린 청문회에서 당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립밤을 바르는 장면이 회자되면서 ‘부회장님 립밤’도 덩달아 유명해지는 일도 있었다.
이렇게, 사회적 지탄의 당사자들이 의상이나 소지품이 갑자기 대중의 관심을 끄는 현상을 ‘블레임 룩(Blame Look)’이라고 한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를 ‘욕 하면서 계속 보는’ 심리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비난하다’는 뜻의 블레임이란 영어 단어가 쓰였지만 의외로(?) 우리나라 언론에서 만든 신조어로 ‘콩글리쉬’에 속하며 영어권에서는 의미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하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신조어가 재조명되는 일은 결코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언론의 전반적인 수준이 높지 않은 경우 더더욱 위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블레임 룩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건 바로 얼마 전 카메라 앞에 선 그녀, 김건희 때문. 지난 8월6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피의자 입건된 영부인(이전에도 영부인이 법원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 적은 있으나 이전의 경우엔 단순 참고인 조사였다)이 된 그녀의 혐의는 선거 개입과 국정농단 등 다양(?)한 와중, 이른바 ‘목걸이 게이트’에 관해서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다.
지난 2022년 NATO 순방 때 그녀는 나 같은 패션 문외한이 척 봐도 무지 비싸 보이는 목걸이를 착용한 바 있다. 순방 직후 이 목걸이에 대해 논란이 벌어지자 대통령실은 ‘지인에게 빌린 것’이란 해명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른바 ‘김건희 특검’이 본격화되고 당시 논란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루어지자 올해 5월엔 ‘진품이 아니라 모조품’이라면서 이전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내놓았다. 더 희한한 일은 이후에 벌어졌다. 특검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그녀 오빠의 장모(?) 집에서 해당 목걸이가 발견되었는데 이 목걸이는 모조품인 것으로 밝혀졌고, 한 발 더 나아가(?) 특검은 이 모조품 목걸이가 진품 목걸이와 바꿔 치기(…)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
그야말로 ‘까도 까도 의혹이 계속 나오는’ 양파 같은 상황.
마지막으로 붙이는 말. 김건희가 지난 8월6일 특검 사무실에 출두할 때는 당연히(?) 그저 수수한 블랙 정장을 입었고 목걸이 같은 장신구는 없었으며 토트백을 하나 들었는데 그 백에는 ‘희망’이란 뜻의 HOPE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녀에게 희망이 있을까? 아무튼, 이 가방은 국내 모 브랜드의 15만원짜리 가방이라고 하지만 실제 그녀는 300만원짜리 디올 백을 받기도 했고 그 외에 샤넬 백과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도 수수했다는 의혹이 있다.
다시 한 번, 그녀에게 희망이 있을까? 글쎄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