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사회에서 더 나아가서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무도실무관>을 봤다. 역시 넷플릭스 시리즈 <사냥개들>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감독답게, 액션 연출은 볼만했고 특히 주인공 이정도 역 김우빈이 꽤 많은 장면에서 대역 없이 직접 액션 연기를 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모델 출신이라 기럭지가 길어서 발차기 각이 제대로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원빈, 강동원에 김우빈까지, 우리나라 미남 배우들 중에 태권도 능력자가 꽤 있네.

강력 범죄를 저지르고 전자발찌를 착용한 전과자들을 관리하는 ‘무도실무관’(실제로 존재하는 직업이라고)으로 특채된 이정도(김우빈)가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 아동 성폭행범을 자력으로 구제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솔직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하긴 힘든 영화지만 작품 내에서 주인공 이정도가 다음의 이야기를 할 때 조금 울컥했다는 점을 고백한다.

(작품 내에서 악당들이 몹쓸 짓을 하려고 한 초등학생 여자 아이를 유괴하는데, 최악의 상황으로 가기 직전 주인공이 아이를 구해내긴 한다.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지는 상황) “열 살 먹은 그 아이가, 사람이 무섭다고 아직도 집 밖에 나가질 못한다고 해요. 내가 그걸 몰랐으면 몰라도, 알고서 어떻게 그냥 지나쳐요!”

내용 자체가 자경단으로서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어서 따지고 보면 매우 위험한 시각이기도 한데 그런 부분에까지 심각한 고민을 하진 않은 영화이긴 하다. 그런데 <무도실무관>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은근히 호평이 많아서, 비슷한 시기에 극장에서 개봉했고 역시 비슷한 내용을 다뤘으나 결국 자경단원의 한계를 조명한 <베테랑 2>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인 쪽이 우세한 점이 대비되어 눈길을 끈다.

넷플릭스 <무도실무관>,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은 편

음주운전으로 사망 사고를 내고도 심신미약이니 뭐니 해서 집행유예를 받거나,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고작 몇 년형에 그치고 마는 일을 주변에서 하도 자주 보다 보니 자경단원의 사적 제재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것도 당연하다 싶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경단원이라면 배트맨을 꼽을 수 있을 텐데, 바로 이런 점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비질란테’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는 그 역사도 매우 깊고 대부분 인기도 높은 편.

결국 법의 판결이 미온적이거나 일반인의 이른바 ‘법 감정’이란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면 거의 틀리지 않을 터(물론 범죄자가 거물급에 속하는 전관 변호사를 산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일단 예외로 하자). 그렇다고 무턱대고 모든 범죄에 대해 형량을 높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일단 배심원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자영업자, 교사, 직장인, 가정주부 같이 평범한 시민들이 판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법정을 배경으로 한 미국산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바로 그 배심원인데, 대한민국 법원이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는 대륙법계와는 다른 영미법계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우리나라가 200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국민참여재판제도가 그 사례이다.

다만 국민참여재판제도에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일반 시민의 법 감정이 중요하다곤 해도 법 자체에 대한 지식이 법조인의 그것을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에 완전히 엉뚱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그렇기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에선 그 명칭이 무색하게도 배심원 평결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데 이것이 미국과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다. 다만 재판장은 배심원 평결과 다른 평결을 선고할 때는 이를 설명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도 배심원제의 단점으로 꼽을 수 있다.

그래도 시야를 폭넓게 가져가보면 한 사람이나 한 가정, 나아가서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만한 중대한 판단을 내리는 일에 일반 시민의 참여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야 한다는 점은 꼭 주장하고 싶다. 민주 정치의 중요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삼권분립에서, 입법(국회)과 행정(정부)의 경우 국민투표를 통해 다수 시민의 의지가 반영될 여지가 있지만 사법의 단계는 애초부터 시민의 의견 개진이 극히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한 상황 아닌가.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차원에서, 지금보다 더 진보해야 하고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깨어있는 시민의 더 많은 의지가 사회 곳곳에 반영되어야 함은 당연하고. 언제까지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사회에 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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