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안], 그 대도시는 왜 몰락했을까

<바바리안>, 2022, 잭 크레거 감독 / 조지나 캠벨, 빌 스카스가드, 저스틴 롱 출연

미국 프로농구 NBA 리그엔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를 연고로 하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라는 팀이 있다. 이 이름을 들으면 아마도 데니스 로드먼과 아이제아 토마스 등이 주축이 되었던 이른바 ‘배드 보이스’ 시절을 떠올리는 NBA 팬들이 많을 듯. 개인적으론 배드 보이스 시절 말고도 포스트 내/외곽을 넘나들며 훌륭한 퍼포먼스를 펼쳤던 그랜트 힐의 전성기 시절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아무튼 그런 팀의 이름은 왜 하필 피스톤스일까? 디트로이트가 미국 내에서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그것과도 전혀 무관하진 않지만 애초 팀 출범 당시의 첫 구단주가 ‘하필이면’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피스톤을 제조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와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한다. 다만 전술했듯 디트로이트란 도시를 대표하는 산업이 자동차 산업이기도 하고, 뭔가 공업이 흥한 도시로서의 이미지와 참 잘 어울리는 느낌이긴 하다. 그러고 보니 기름 냄새 풀풀 풍겼던(?) 처절한 디스토피아 <로보캅>의 공간적 배경도 바로 디트로이트였고, 2018년 최고의 게임 중 하나로 평가 받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아예 제목에서부터 디트로이트 출신(?)임을 밝히고 있다.

그처럼 디트로이트는 과거엔 공업도시로서의 면모를 과시했지만, 현재는 미국 내에서 가장 쇠락한 지역으로 꼽힌다. 어느 정도 고만고만한 동네 중에서 하나 꼽히는 게 아니라, 아예 도시가 파산 지경에 이르러 치안이나 교육, 의료 같은 공공서비스 분야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미국 내에서 가장 살기 힘든 지역이 되어버린 것. 그 이유는 당연히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 때문인데, 일례로 예전엔 중산층 가구가 많이 살았던 다운타운 지역의 주택가는 도로 관리가 되질 않아서 군데군데 패어있기도 하고 잡풀이 자라 시야를 가리는 지경이다.

<바바리안>은 수상한 동네에 위치한 음산한 집이 배경의 거의 전부다

<바바리안>(2022, 잭 크레거 감독 / 조지나 캠벨, 빌 스카스가드, 저스틴 롱 출연)은, 바로 이와 같은 배경 지식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상태에서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처럼 사설을 길게 늘어놓았다. 다만 대부분의 저예산 호러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스포일러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다. 어쩌면 스포일러 언급을 방지하기 위해 앞선 이야기를 한 것일 수도 있고.

간단하게 줄거리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테스(조지나 캠벨)은 구직 면접을 위해 다른 도시로 가는 도중 에어비앤비를 통해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에 위치한 한 가정집에 묵기로 한다. 숙박이 예정된 집에 가봤더니 왠 낯선 남자 키스(빌 스카스가드)가 이미 와 있는 것 아닌가? 이른바 ‘더블 부킹’이 된 것인데… 그 전반부의 이야기는 ‘일단’ 잠시 멈춤을 하게 되고, 후반부에는 성추문으로 커리어를 홀랑 날리게 생긴 한 영화감독 AJ(저스틴 롱)가 바로 그 집에 오게 되면서 또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저예산 호러 영화 중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집 한 채 안팎에서 진행되는 이와 같은 영화는 결코 드물지 않다. 일단 공간이 한정되며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가장 큰데, 그와 같은 한계가 오히려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를 샘솟게 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는 점은 바로 그 분야(?) 출신인 제임스 카메론, 존 카펜터, 제임스 완 같은 감독들이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바이기도 하다.

<바바리안>은 이전의 많은 저예산 호러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전형적인 루트를 그대로 따라가는 듯하다가, 갑자기 조향장치를 확 꺾어버리는 몇몇 지점에서 특별한 흥미로움을 준다. 수상쩍은 남성의 존재, 미로 같은 지하 공간, 집 바깥의 살풍경한 모습과 역시 의문스러운 노숙자 같은 다양한 장치들은 모두 필요에 의해 구성되었고, 각자의 몫을 적절하게 잘 수행하고 있다.

‘깜놀’하게 만드는 이른바 ‘점프 스케어’보단 음산한 분위기로 승부하는 호러

다시 돌아와서, 글의 맨 처음 이야기한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의 몰락과 <바바리안>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는 공간적 배경이 디트로이트이긴 하지만 여기에 덧붙여서, 한 몹쓸 범죄자가 ‘바로 그렇게’ 되기까지 생활환경의 변화(라기보단, 말하자면 ‘급전직하’)가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름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투영한 것이다. 영화 내에서 과거에 다소 풍요로웠던(?)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 장면은 유독 ‘때깔이 곱게’ 그려진 부분만 봐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그러면서 현재의 침침한 회색 빛 동네는 더욱 선명하게 두드러진다).

따지고 보면 제목부터 살짝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바바리안’이란 말은 야만인이라는 뜻인데, 영화에 출연하는 캐릭터 중 과연 누가 진짜 야만인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중요한 스포일러를 빼고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뭔가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하는 어색한 느낌이 들긴 하는데, 참 오랜만에 담백한(?) 저예산 호러 영화를 보게 되었다. 외국에선 극장 개봉도 하고 해서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는데, 국내에선 극장 개봉 대신 디즈니 플러스 채널을 통해서만 공개가 되었기 때문에 국내의 호러 팬들에겐 그 부분이 살짝 아쉬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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