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티찰라, 그러니까 전직 블랙 팬서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1대(MCU에서 1대라는 의미) 블랙 팬서 역을 맡았던 배우 채드윅 보스만이 2년 전에 지병으로 사망을 했고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이 영화의 세계관 내에서도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아주 훌륭하게 구축된 캐릭터를, 아주 매력적인 배우가 연기를 했으니 당연히 그 인기는 꽤 높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것도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배우에 대해서, 많은 팬들과 관계자들은 안타까움의 탄식을 자아냈다. 그리고 영화에서 그려진 장례식은, 아주 장엄하다. 그 추모의 분위기는 영화 마지막에 다시 한번 환기되기까지 한다.
국왕인 동시에 아들이기도 한 존재를 잃은 여왕은 슬픔 속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고 자신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리고 여차저차 왕위와 함께 슈퍼히어로로서의 주인공 자리까지 물려받은 왕녀는 이전과 비슷하면서도 달라진 모습으로, 새로운 적과 맞서 싸운다. 다만 그 새로운 적에게도 나름의 곡절이 있고 사연이 있는지라 마냥 악당으로만 그려지진 않는다.

<블랙 팬서>는 1편에서도 그랬다.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되새겨보면 결코 작지 않은 스케일의 이야기가 나름 흥미롭게 펼쳐지는데, 막상 이게 기승전결로 이어진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참 희한하게도 뭔가 핀트가 어긋났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물질(당연히 가장 비싼)을 유일하게 생산하는 강대국의 국왕은 싸움 일진(…)이어야 하고, 총기류 따위는 원시적이라고 하면서 창으로 격투를 하는 ‘무협지스러운’ 모습이야 어디까지나 영화에서 시각화하기 좋은 제재를 활용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잔뜩 갖고 있는 ‘화’를, 전혀 엉뚱한 데다 풀고 있으니 관객으로선 동질감을 느끼기가 어렵게 된다. 자신들을 제외한 세상 모든 나라가 침략을 노리고 있는 두 나라가 지금 서로 툭탁거리고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손꼽힐 만한 국력을 가진 강대국들이 맞붙는 전쟁에 동원된 인원이 고작해야 수백 명이라니? 만약 1편에서 보여진 내용 중 다소 부족했던 부분들을 2편에선 보완해야 되겠다고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생각을 했다면, 2편이 이런 식으로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1편이 거둔 엄청난 흥행 기록(<블랙 팬서> 1편은 미국 내에선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그 과정에 흑인 커뮤니티의 도움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새로 소개된 캐릭터 중 네이머는 나쁘지 않았다. 수중의 국가 ‘탈로칸’을 다스리는 국왕이자 슈퍼히어로로서 앞으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란 가능성을 보여줬다. 일단 캐릭터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전투력 외에 바다와 육지 어디서든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과(물론 다소 제약은 있다) 비행능력도 보유하고 있어 향후 더 신선한 액션을 보여줄 수 있을 것. 다만 그 부분이 이번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서 온전히 드러나지 못한 것은 좀 아쉽다.

덧붙이면, 네이머가 다스리는 탈로칸이 고대 중앙/라틴 아메리카에서 번성했던 문명을 모티브로 한 것은 인상적이긴 한데 한 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물속에서 오래 살게 되면 아무래도 생체 메커니즘 자체가 물고기에 가까워질 텐데, 여러 가지 장식이 그렇게나 화려한 것이 좀 웃겼던 것. 물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일 때 오히려 방해만 될 듯한데. 그렇긴 해도, 심해에 사는 물고기의 외양이 의외로 굉장히 화려한 경우도 있으니, 뭐 그 정도만 하고 넘어가는 걸로. ^^
네이머 외에 새로 선을 보인 또 다른 캐릭터, 아이언하트에 대해선 불만이 있다. 마블에서 아이언하트를 향후 아이언맨을 계승할 캐릭터로 포지셔닝할지 어떨지에 대해선 아직 모르지만, ‘흑인’이며 ‘여성’인 캐릭터를 그저 기계적인 안배를 통해 배치시켰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아이언하트 리리는, 어떤 인종이든, 어떤 성별이든 무관하지 않은가? 그 캐릭터가 반드시 ‘흑인’이어야 할 이유도, ‘여성’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는 이야기다. 차라리 오코예 정도로 개성도 있고 매력도 있으며 나름 사연을 가진 캐릭터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텐데, 리리의 경우엔 인종적으로도, 성별에 있어서도 그 어떤 특별한 감정을 제공하는 서사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마블, 정확히 말하자면 MCU의 팬들이 그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화끈한 스펙터클을 원 없이 소비할 수 있다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트집(?)을 많이 잡았는데,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서 그렇게 ‘보는 재미’라도 제공을 했으면 큰 불만이 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하이라이트에서 펼쳐지는 와칸다와 탈로칸의 전투 장면은 스케일 측면에선 왜소해 보였고, 전반적으로 솔직히 심심했다.
그런 데다, 와칸다와 탈로칸이 각자의 국운과 민족의 명운을 걸고 서로를 반드시 멸망시켜야만 하는 그 이유에 공감하지 못하게 되면서, 이 전투에선 어느 한 쪽이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처절함이 사라지고 그저 ‘싸움을 위한 싸움’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정리하면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는데(러닝타임도 무려 161분이나 된다!) 이를 효과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채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빠졌다는 느낌이다. 1대 블랙 팬서이자 티찰라인 채드윅 보스만에 대한 추모의 심정, 그것 하나만은 제대로 전달된 점에 대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티찰라의 빈 자리가 이렇게도 크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