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메시지의 허용 한도, 어느 수준까지 받아들일 수 있나

영화 속 메시지, 혹은 프로파간다

보리스매거진 핫 클립 코너에서도 소개를 했던 신작 영화 <프레이>를 봤다. 국내에선 아직 가입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듯한 디즈니 플러스 채널을 통해서만 공개가 되었는데, 일단 본 시청자들 사이에선 꽤 좋은 평이 나오고 있는 중. 지난 핫 클립 코너를 통해 소개할 때도 언급한 것처럼, 프레데터라는 캐릭터가 개성이 강하고 나름 매력이 있어서 은근히 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옛날에 나온 영화 1편과 2편 외에 적지 않은 후속작이 쏟아졌는데 그 후속작들 중 괜찮다는 평가를 내릴 만한 작품은 사실상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이 망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번의 후속작 <프레이>는, 결론부터 말하면 꽤 좋다. 이야기와 배경, 그리고 캐릭터가 절묘하게 어우러졌고 시종일관 흥미로우며 무엇보다 시리즈의 후속작으로서 원작에 대한 나름의 존중을 보여주고 있다.

<프레이>란 작품을 보고 나서 곧바로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리뷰보다는 칼럼 코너에 더 잘 어울릴 만한 테마가 갑자기 떠올랐다. 그리고 그 결과를 독자 여러분은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영화 등의 콘텐츠에서 창작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프레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그러고 보니 제목도 절묘하다. <프레이>에는 당연히 ‘프레데터’가 나오는데 프레데터는 말 그대로 육식동물, 포식자란 뜻을 갖고 있다. 반면 ‘프레이’는 피식자, 먹잇감이란 뜻을 갖고 있으니 원작이 된 작품의 제목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뜻. 아무튼 18세기 아메리카 대륙 개척 초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는 주인공으로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인 코만치족 소녀가 등장한다. ‘나루’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용맹한 기질과 준수한 사냥 실력을 갖췄는데 시대(혹은 당시의 사회)적 상황 때문에 ‘전사’로서의 능력을 키워나가기는커녕 같은 코만치족 남자 아이들한테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는 핀잔을 듣곤 한다.

그런데 코만치족에서 난다 긴다 하는 전사들은 물론이고, 외국(프랑스)에서 건너온 개척자 혹은 사냥꾼들까지 프레데터에게 그야말로 몰살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남은 것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 상황. 압도적인 무력 차이에도 나루는 결국 뛰어난 기지를 발휘하여 프레데터를 ‘사냥’한다.

이야기의 커다란 줄거리만 보면 전형적인 액션 영화인데(그리고 당연히 맞는 말이기도 하다. ^^) 사이사이에 자리잡은 행간을 살펴보자. 주인공인 어린 소녀는 부족(집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남성 그룹으로부터 배척을 받는데 그 이유는 누가 봐도 불합리한 것이다. ‘그저 여자이고, 오빠가 사냥을 훨씬 더 잘 하니까’ 무시무시한 육식동물을 추적하는 행군에서 빠질 것을 종용 받고, 결과적으로 나루가 프레데터 사냥에 성공하긴 하지만 실제 프레데터와 맞서서 그 존재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는 인물들은 그 누구도 죽을 때까지 나루를 인정하지 못한(않은) 셈이다(당연하다. 나루가 프레데터 사냥에 성공하기 전까지 그와 맞섰던 인물 모두는 사망을 했기 때문에).

인정할 건 인정하는 미덕(?)을 갖추자

정치적 올바름(Politically Correctness, PC). 최근 몇 년간 특히 할리우드를 비롯한 미국 대중문화 업계 사실상 거의 전부가 매우 경도된 것으로 보이는 이 움직임에 대해 매우 못마땅한 시선을 던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유색인종, 외국인, 성적 소수자, 장애인, 그리고 여성과 노인 등 메인스트림에서 꽤 떨어져 있는 이들이 지금까지의 대중문화판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최근 얼마간 새로 제작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캐스팅되거나 매우 중요하게 조명되는 캐릭터/내러티브가 매우 참신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까놓고 말해서 PC 아니었으면, 흑인 인어공주나 농아 슈퍼히어로나 용감하게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려고 하는 자스민 공주나 매우 특별한 능력을 가진 파키스탄 소녀를 우리가 어디서 볼 수 있었겠는가?

다만 문제는 앞서 이야기한 ‘반대급부’가 필요 이상으로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주인공 소녀가 얼마나 용맹한지 보여주기 위해 코만치족 남자 전체를 ‘여자는 집에서 밥이나 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멍청이들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고, 주인공 소녀가 사냥에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기 위해 우주 최강의 사냥꾼인 프레데터가 고작(?) 화살 몇 발하고 구식 총 한 발에 허무하게 죽어버릴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메시지를 강요하기 위한 억지 주장 대신 관객의 자연스러운 동화를 이끌어낸 걸작, <매드 맥스: 퓨리 로드>

바로 앞에 언급한 문제들은 비단 <프레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디즈니 작품들에 대해 불만을 가진 관객들이 많지만, <007> 시리즈나 최근 예고편이 공개된 아마존 프라임 채널 공개 작품인 <힘의 반지> 시리즈에 대해서도 이른바 ‘PC 묻어서 작품 망칠까 걱정이다’라는 의견이 꽤 많이 보이고 있지 않은가.

정리해보면, 영화가 되었든 드라마가 되었든 창작자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옳다고 믿는 특정한 메시지를 콘텐츠 안에 넣는 것까지 말릴 일은 아니다. 다만 앞뒤 맥락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메시지만을 위한’ 콘텐츠가 된다면 그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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