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실험정신과 야심, 그리고 300억짜리 레쥬메 그 사이 어딘가

엄청난 액션이 몰아치는 영화 <카터>

세상엔 참 다양한 영화들이 있다. 주인공이 있고, 배경이 있고, 상황이 있고, 드라마가 있고, 주인공이 어떤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데 종종 그걸 방해하는 악당 위치의 캐릭터가 있고, 결말 부분에 가선 모든 갈등이 봉합되거나 아니면 한꺼번에 터져버리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흐름을 관객에게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감독은 여러 가지 선택을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된 영화문법은, 그 자체로 학문적 가치를 가질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형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이루는 물리적 요소들인 쇼트의 배치와 카메라의 움직임과 시퀀스의 구성 같은 부분들은 일정한 전제를 공유한다. 이를테면 서로 대화를 나누는 두 캐릭터를 쇼트 구분으로 각각 보여줄 땐 시선을 각각 반대 방향으로 두게 하는(액션과 리액션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른바 ‘가상선(Imaginary Line)’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가끔은 이와 같은 고전적 영화문법을 깡그리 무시한 돌연변이 같은 작품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카메라가 주인공의 눈높이에서만 이동한다든가, 영화 전체를 편집 없이 한 컷으로만 구성한다든가, 심지어 아예 카메라를 1인칭 시점으로만 움직이게 한다든가 하는 영화들이 그것. 이렇게 매우 특이한 영화들이 꼭 단편영화나 아트하우스에 걸리는 예술영화들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멀쩡하게(?) 극장에 걸리는 대중영화 중에도 이와 같은 시도를 한 작품들이 있었다.

그런 독특한 시도가 성공한 경우도, 실패한 경우도 있었다. 오늘 리뷰를 하게 될 영화 <카터>는 그런 점에서 보자면 아주 극단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이야기는, 이전에 많은 스파이(+액션) 장르에서 자주 본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기억을 모두 잃은 채, 낯선 곳에 버려진 특수요원.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모르는 그의 목숨을 노리고 달려드는, 숙달된 킬러들.

생각해 보면 ‘제이슨 본’ 시리즈에서도 기술적으로 새로운 시도가 많았다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취를 이룩한 영화는 단연 ‘본’ 시리즈라고 할 수 있겠다. 돌이켜 보면 ‘본’ 시리즈도 기술적인 부분에서 남다른 시도를 많이 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이른바 ‘셰이키 캠’이라고 하는 핸드헬드 촬영, 과감한 시점 쇼트와 플래시백 구성 등, 영화를 이루는 여러 물리적 요소가 꽤 인상적으로 남았다.

기술적 부분에서의 시도라고 하면, <카터>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영화와도 비교를 거부한다(!). 일단 러닝타임 처음부터 끝까지, 쇼트와 쇼트의 이음매를 최대한 가려서 전체가 원 테이크로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편집점을 구분하려고 작정을 하면 구분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고, 또 그 이음매 부분에 CG가 동원된 것 또한 쉽게 확인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보이도록 한 감독의 의도는 무엇일까? 당연히 관객의 긴장감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카터>에서 보여지는 다종다양한 액션은 산전 수전 공중전(!)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며, 각각의 장면에서 ‘도대체 이런 장면은 어떻게 찍었지?’라는 의문을 들게 할 정도로 눈을 휘둥그렇게 만든다.

어떻게 찍었냐고? 요렇게 ^^

초반 어느 정도까지는, 그러니까 주인공은 왜/어떻게 과거의 기억을 잃었는지, 지금 그를 제거하기 위해 몰려드는 이들은 누군지, 주인공은 저 무지막지한 킬러들과 맞서서 어떻게 제 한 몸 건사하는(?) 일이 가능한지 등등에 대해 의문을 갖기 전까지는 그 모든 시각적 자극이 제대로 기능을 한다.

그런데 이야기의 실마리가 조금씩 설명이 되고, 이제 이야기 전체가 관객의 ‘이해’를 필요로 하게 되는 때에 이르러서는 피로해지는 것이 사실. 시속 250km로 질주를 하는 듯한 <카터>가 간과하고 지나친 사실이 바로 이 부분 아닐까. 관객이 감각기관을 통해 접하는 정보의 총량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시각적 자극의 정도가 강하다면 상대적으로 머리를 굴려서(?) 이해를 해야 하는 부분은 아주 쉽도록 이야기를 구성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카메라가 복잡하게 움직이면 이야기는 좀 단순하게 갔어야 한다는 것. 주인공 카터가 야쿠자들과 격투를 벌일 때는 야쿠자처럼 보이더니, CIA 요원들과 총격전을 벌일 때는 무슨 블랙 요원인가 갸우뚱해지다가, 북한까지 가서는 인민의 영웅이니 뭐니 하더니 좀비들은 또 갑자기 어디서 나와서… 스포일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카터>에선 이런 이야기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정말이다. ^^;;

이야기가 다소 아쉬운 것은 사실

<카터> 공개 이후 여러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의견을 보면, ‘(영화가 아니라)마치 게임 영상 같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카터>는 그저 시각적 요소만 게임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이야기 진행이나 구성 자체가 게임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영화 업계에서는 제작비를 많이 들여서 유명 스타를 캐스팅하고 화려한 볼거리를 잔뜩 구현한 작품을 ‘블록버스터’나 ‘텐트폴’ 등의 용어로 지칭한다. 게임 업계에서도 그와 비슷하게, 수많은 전문 인력을 ‘갈아 넣어서’ 엄청난 시각 효과에 리소스를 투입하고 전 세계적으로 수십에서 수백만 카피 판매고를 올리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대형 게임 타이틀이 있으니, 그와 같은 타이틀을 ‘AAA(급) 게임’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으로 <GTA> 시리즈나 <콜 오브 듀티> 시리즈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플레이 특징은, 주인공이 비교적 짧은 시간(혹은 거리)을 이동하며 특정한 미션을 수행하고, 또 다음 포인트로 이동하며 미션을 수행하고, 또 이동하며 미션 수행… 이와 같이 전체 플레이를 페이즈(Phase), 혹은 스테이지로 나누는 것. 이렇게 해야 게이머들이 게임의 전체 볼륨을 더 크게 느끼게 되고, 중간중간 ‘영화적 연출이 돋보이는’ 컷 신(Cut Scene)의 삽입도 용이해지기 때문이다(다만 다수의 AAA 게임들이 채택하고 있는 이와 같은 플레이 스타일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긴 한다).

<카터>도 이와 같은 식이다. 일단 살기등등한 적들을 여럿 만나게 되는데, 어떻게든 이들을 해치워야 한다. 온 힘을 다해 적들을 겨우겨우 해치우면 다음 포인트로 이동. 거기에서 또 적들을 만나고, 해치우고, 이동. 그러다가 ‘아이를 보호해서 특정 장소까지 이동하라’는 미션을 수락하고, 그 와중에 또 적들과 조우하고, 해치우고… 정말 게임에서 볼 법한(?) 진행이 숨가쁘게 이어지니, 누구라도 쉽게 게임을 연상하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AAA 게임, <콜 오브 듀티> 시리즈와 <카터>는 진행 방식도 비슷하다

요컨대 <카터>는, 지금 그 어디에서도 만나보기 힘든 타입의 영화인 것은 사실이다. 정병길 감독이 영화에서 집중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전작 <악녀>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정병길 감독은 <카터>에서 하고 싶은 걸 다 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카터>가 이 감독이 지향하는 최고의 지점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드는 것이다. 실제 정병길 감독은 <존 윅> 시리즈를 연출한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등 할리우드에서도 이름난 스태프들과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그 과정에서 <카터>와 넷플릭스에 관한 이야기도 분명히 나눴을 터. 그 스태프들 중에 직접 제작비를 조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니 ‘내가 가진 능력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이만큼이다’라는 차원에서, 할리우드에 내민 일종의 이력서가 <카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긴 이야기를 했지만, 어쨌든 정병길 감독은 자신만의 경쟁력으로 할리우드에 진출을 해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인재라고 생각한다. 그의 미래를 기대하며, 건투를 빈다.

정병길 감독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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