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시절이 있었다. 불과 5년 뒤면 한 나라의 정치체제가 송두리째 바뀌는 상황에 대해 시민들이 불안감을 느끼던 시절. 동시에, 바뀌기는 할 텐데 평범한 민초의 삶은 그리 많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란 조심스러운 낙관을 하던 시절. 그리고 이와 같은 양가적 감정이 더없이 세련된 모습으로 다듬어지던 시절.
말하자면, 홍콩이란 도시가 전세계에서 가장 힙한 도시였던 시절.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후의 홍콩은 무능한 파시스트가 지배하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 도시가 되었다. 잘못된 코로나 19 방역 정책으로 하루에도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모습,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군인과 경찰의 모습, 생기를 잃은 시민들의 얼굴이 회색으로 물든 모습을, 2022년의 우리 모두는 목도하고 있다.

약 한 달 전부터 넷플릭스에 올라오기 시작한 왕가위 감독의 작품들 가운데 <중경삼림>을 봤다. 물론 이번 관람이 처음은 아니다. 참 희한하게도(어쩌면, 당연하게도) 왕가위 감독의 많은 작품들은 여러 번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랑을 통조림에 담아 유통기한을 만 년으로 하고 싶은 젊은 남성은, 언제 비가 오고 언제 맑은 날이 올지 몰라 선글라스와 레인코트를 동시에 착용하고 있는 여성과 엮인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조그만 일탈을 꿈꾸는 여자는 감성이 풍부한 남자와 엮인다. 여기서 ‘엮인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각 커플(?)들이 연애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게 명확하게 표현이 되지도 않고 그들이 진짜 연애를 하는지 어쩐지 그런 것 자체가 영화에선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홍콩에선 그랬다는 얘기. 이를테면 어떤 특정한 상황과 모습을 대변하는 ‘퍼스낼리티(Personality)’가 그저 그 자체로서 존재 가치를 지녔고, 그 모습을 그저 덤덤하게 그려내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었던 시간과 공간의 통시적 집합체가 바로 28년 전의 홍콩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불안한 느낌은 여지없이 들어맞기 마련. 글 맨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고 보고 있는 2022년의 홍콩은 어떤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문화적으로 그토록 훌륭한 성취를 일군 홍콩은 지금, 영화에 있어선 생각이란 걸 하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렸지 않은가. 그저 단순히 옛 추억 생각에 아련해지는 게 아니고, 그저 좋았던 옛 시절 생각에 애틋해지는 게 아니라 현재 상황이 너무 망가진 데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만 크다.

물론 옛날 생각이 나긴 했다. 그 옛날, 학교 후문가 카페 알바생이었던, 왕정문을 닮았던 그녀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나와 친한 후배 여학우가 내심 관심을 갖고 있던 ‘문과대 금성무’는 또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번 주말엔 <화양연화>를 또 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