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타오르게 하는 불꽃은 무엇입니까? ‘소울’

한때 우리나라 서점가에선 무엇에든 ‘미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그린 책들이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있다. 성인들은 부동산과 주식투자에 미치고, 학생들은 공부와 스펙 쌓기에 미치고, 은퇴자들은 남은 인생 재설계에 미치고… 요즘은 예전에 비해 좀 덜해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그런 느낌이 좀 남아있는 듯하다.

한 번뿐인 인생,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고 무엇에든 미쳐보는 일이 나쁘진 않을 것이다. 다만 그와 같은 개인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지 누구에게나 강권을 할 일도 아니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딘가 뒤처지고 모자란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재단을 하는 건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와중에 보게 된 장편 애니메이션 한 편에 코끝이 찡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작품의 제목은 ‘소울’.

주인공 조와 22의 ‘소울’

고등학교에서 방과후 교사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조 가드너 선생은 원래 뛰어난 재즈 뮤지션의 아들이자, 본인 또한 뛰어난 연주 실력을 갖췄다. 전업 뮤지션이 되기엔 주변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홀로 양복점을 운영하며 아들을 키웠던 어머니의 반대도 컸기 때문. 이 와중 학교에선 정규직 채용의 제의가 들어오는데, 동시에 평생의 꿈이었던 유명 뮤지션 도로테아 윌리엄스와의 협연 제의도 들어온다. 사실상 둘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 쪽은 내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조 가드너는 목숨을 잃고 만다(?!).

국내에선 하필이면 코로나 19의 지속되는 창궐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던 시점에 극장 개봉을 했으나 2백만 명을 웃도는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의외로 선방을 한 작품이 ‘소울’이기도 하다. ‘코시국’만 아니었으면 그보단 더 많은 관객을 동원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고, 이후 디즈니 플러스 채널을 통해 공개가 되었다.

아무튼 그럼에도 본 관객보단 안 본 관객이 훨씬 많을 텐데 주인공이 사망을 한다는, 중요한(?) 스포일러를 초반부터 뿌리면 어떻게 하냐는 원망은 접어두시라. 실제 작품 내에서 조는 러닝타임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사망을 하고, 그의 영혼(소울)이 아직 사람으로 태어나기 전의 영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천국도 아니고 연옥도 아닌 ‘머나먼 저 세상’으로 가면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니.

자신의 죽음(사실은 코마 상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조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고등학교의 정규직 교사가 되기 위한 게 아니라 평생을 꿈꿨던 도로테아 윌리엄스와 협연을 하기 위해서다. 디즈니/픽사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슬랩스틱 액션(?)이 몇 차례 펼쳐지는 도중에도 조와 영혼 22는 계속 자문도 하고,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당신을 타오르게 하는 불꽃(Spark)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걸 정확히 알아야 모든 것을 제대로 된 상태로 돌려놓을 수가 있기 때문.

그렇게 바라던 재즈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조가 마지막으로 피아노 앞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해,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 답이 정답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어쩌면 바로 이 지점에서 주인공 조 가드너가, 아니, 바로 이 작품 ‘소울’이 택한 재즈라는 장르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겠다.

재즈의 특성은 누가 뭐래도 즉흥성. 그저 오선지 위의 음계와 음표만으로 구현되지도 않고 정의되지도 않는 음악이기에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불꽃은 저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고, 바로 그런 점을 역설하기 위해 엄격한 클래식 대신 자유분방한 재즈가 바로 이 작품의 주제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적합한 선택이었다고 하는 이야기다.

당신을 뭉클하게 만드는, 당신만의 ‘불꽃’은 무엇입니까?

어렸을 적 아빠와 함께 들었던 음악, 자전거를 타고 가며 보았던 파란 하늘, 길거리 카페에서 친구와 나누는 수다, 그리고… 정말 작고 연약하지만 이 땅에 새 생명을 틔우기 위해 스스로 떨어지는 단풍나무 씨앗처럼, 누구에게나 그날그날 지나가는 일상이 자신의 인생을 불태우는 불꽃이라는 사실을,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어떻게 보면 새로울 것도 없는 뻔하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와 같은 주제를 누구나 공감하게끔 그려낸 제작진의 연출 솜씨가 빼어나다.

결국 새 삶을 살게 된 조 가드너가, 그리고 ‘탄생 전 세상’에서 사실상 영겁의 시간을 보낸 영혼 22가 현세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지 작품에서 굳이 보여주지 않는 것 또한 사람들이 저마다 생각하고 이루고자 하는 삶의 방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일 터다. 여기에 옳고 그름은, 없다. 그저 저마다의 선택이 있을 뿐. ‘소울’은 인생의 설계라는 심오한 질문에 대해 디즈니/픽사가 보여준 최고의 비전이다.

디즈니/픽사는, 참 뻔한 이야기를 자신들이 가장 잘 하는 방식으로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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