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뉴스를 통해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몇몇 강력사건들을 돌이켜본다. 어린 여학생을 폭행하고, 그것도 모자라 몹쓸 짓까지 저지르며 그걸 촬영한 영상을 미끼로 삼아 돈을 갈취했던 사건, 무면허 상태에서 훔친 차를 몰다가 사람을 치어 숨지게 만든 사건, 초등학생을 유괴해 살해한 후 사체를 유기한 사건 등등.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불과 초등학교를 갓 졸업했거나 중학생 정도의 연령대였다는 것. 흔히 이야기하는 ‘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질렀을 당시 만 14살 미만인 경우를 말하는데, 촉법소년이 저지른 강력범죄를 포함해서 만 14살 이상인 청소년이나 미성년자가 저지른 강력범죄 또한 꾸준히 이어지는 추세(촉법소년을 포함한, 나이 어린 범죄자들의 강력범죄 수가 증가하는지, 아니면 감소하는지 여부는 참고하는 자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사설(?)이 좀 길었다. 넷플릭스에서 지난 2월25일 공개된 ‘소년심판’은 대한민국 탑클래스 여배우 김혜수가 주연을 맡은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란 점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김혜수 외에도 이성민, 김무열, 이정은 등 진작부터 탁월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이 출연을 했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그런 데다가, 앞서 말한 것처럼 최근 들어 촉법소년을 포함한 미성년 범죄자들의 강력범죄 사건이 뉴스에 오르내리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는 일이 있었다는 건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오죽하면 이번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유력 후보들 중 정의당 심상정 후보만 제외한 모두가 촉법소년의 연령을 현행 만 14세보다 낮출 것을 공약으로 내놓기까지 했다. 아무튼 그런 상황을, 무엇이든 거리낌 없이 표현하기로 유명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다룬다고 했으니 예고편 공개 때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것도 사실.
그리고, 전 시리즈 공개. 이야기 진행에 있어 개연성이 다소 부족하다는(아무리 소년부에 검사가 없기로서니 판사가 무슨 경찰 같기도 하고 변호사 같기도 하고 ㅋㅋㅋ) 점이 지적되나, 그 외에 거의 모든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특히 피해자에 대한 온정주의적 시각이나 범죄자/가해자에 대한 지나친 악마화를 지양하고,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유려한 연출과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잘 살린 부분이 호평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특성상 잔혹한 범죄의 세부적인 묘사가 나올 법도 한데, 드라마 전체를 보면 그런 부분이 그다지 보이지 않았고 대신 피해자의 가족이 겪는 극심한 고통에 공감을 할 수 있게끔 구성된 연출 또한 좋다.


드라마 초반엔 강직한 성품의 심은석(김혜수) 판사와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차태주(김무열) 판사 사이에 소년범을 향한 극명한 시각차이에 갈등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나 전체를 다 보고 나면 각 캐릭터가 왜 그런 성격을 갖게 되었고, 그 성격에 따라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살짝 미스터리 스릴러의 분위기도 풍기고.
어쨌든 드라마에는 모든 문제를 일거에, 속 시원하게 해결하는 슈퍼히어로 같은 등장인물은 나오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70년 전에 제정된 이후 조금도 수정되지 않은 촉법소년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는 지능범(?)까지 출현한 세상에서, 그런 세상을 가감 없이 그린 드라마 ‘소년심판’의 주인공은 바로 그런 소년범을 혐오하는(소년범에 대한 심은석의 인식은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다) 판사일 뿐.
뻔한 설정과 뻔한 이야기에서 벗어난, 단단하고 치밀한 드라마를 오랜만에 만나서 기쁘다. 빨리 시즌 2 제작 발표가 전해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