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이 정말 대단한 이유에 대한, 역설적(?)인 고찰

많은 영화 팬들의 기대 속에 지난 3월1일 ‘더 배트맨’(맷 리브스 감독, 로버트 패틴슨 주연)이 개봉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현재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올해 들어 개봉한 영화 중 ‘언차티드’에 이은 흥행 기록을 세우는 중(그리고 물론 이 기록은 금방 깨질 걸로 보인다).

일단 배트맨이 실사 영화로 선보인다고 할 때, 이 영화에 대해 영화 팬들이 갖는 기대감의 수준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서사는 어떤 식으로 이어지고 완성이 될지, 스펙터클은 또 얼마나 훌륭하게 구현이 될지, 빌런의 존재감은 얼마나 될지, 하다못해 배트맨이 얼마나 신박한(?) 특수 장비들을 들고 나올 것인지 등등.

그렇다면 ‘더 배트맨’에서 그와 같은 기대의 수준이 충족되었나?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못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더 배트맨’에서 관람객이 만나게 되는 배트맨은 다소 낯선 모습이고, 어쩌면 지금까지 배트맨 실사 영화가 그렇게도 많았는데 각 영화마다 정말 다른 개성으로, 정말 다른 장르의 전형으로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배트맨이기에 ‘참 대단한 캐릭터구나’라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배트맨은 정말 대단하구나.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도 돋보였다

본작 ‘더 배트맨’의 주인공 브루스 웨인은 정확한 나이가 언급되지 않지만 고작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인다(관련 정보를 검색해보니 배트맨 2년차라고 한다). 나이가 젊은 만큼 날렵한 액션을 보여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육중한 배트맨 수트를 입고서 범죄자들과 치열한 격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그 쪽이 아직 설익은(?) 배트맨에 더 잘 어울리는 듯한 생각도 든다. 그와 같은 배트맨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한 배트카는 시리즈 사상 최초로 전형적인 미국산 머슬카를 베이스로 개조한 모습이고, 숨가쁜 카체이싱 장면에선 그야말로 쩔어준다!

그리고 본작의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을 그다지 무겁게 받아들이진 않고 있는 모습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고담시 경찰청 옥상에 배트 시그널이 설치가 되어 있긴 하지만 아직 고담시의 경찰들은 자경단원으로서 배트맨이 하는 활동을 백안시할 정도이니(‘더 배트맨’에서는 이전까지의 그 어떤 배트맨 영화보다도 경찰로부터 받는 ‘푸대접’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어디까지나 제작자 및 연출자,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는 물론이고 출연진들까지도 의기투합한 선택의 결과가 바로 ‘설익은’ 배트맨, 2년차 배트맨이란 이야기.

아직은 설 익은 배트맨의 이야기, ‘더 배트맨’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한 가지 더 해보자면 ‘더 배트맨’에서는 연쇄살인마이자 테러리스트인 리들러가 빌런으로 출연하는데 그에 맞서는 배트맨은 리들러(이름 그대로 ‘문제를 내는 자’)가 내는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바로 그러면서 그 수수께끼 주변에 있는 단서에 주목하는데 그 과정에서 나름 탐정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리들러의 수수께끼가 그렇게까지 어렵거나 단서가 그렇게까지 복잡하진 않은 편이지만, 어쨌든 이전까지의 배트맨 실사 영화에서 익숙하게 본 모습은 아니라고 할 수 있고 나름 배트맨의 ‘새로운’ 모습이기도 하다.

슈퍼히어로로서 배트맨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화끈한 액션을 비롯한, 화려한 볼거리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풋내기’ 배트맨의 설익은 모습에 다소 실망을 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까지 우리가 거의 보질 못했던 배트맨의 낯설고 어둡기 짝이 없는 모습을 의외의 성과로 여길 관객도 적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든다. 요컨대 그렇게 많은 배트맨 영화들마다 조금씩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건, 배트맨이란 캐릭터가 오랜 세월 동안 다져졌는지, 그 세계관은 얼마나 공들여 구현되었는지, 그래서 배트맨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 될 터다.

추신: 그리고 ‘더 배트맨’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3부작, 그 중에서도 ‘다크나이트’가 얼마나 훌륭한 영화였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

‘더 배트맨’이 별로인 관객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후지다는 말은 아니다. 악당 리들러도 괜찮았고…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