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요량이었고, 함께 생사를 넘나들며 고락을 함께 했던 동지가 실제로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광경을 코앞에서 지켜본 역전의 용사. 이제는 돌아와 가족과 행복함을 만끽하고자 하는 때, 자신의 지난 행동이 송두리째 부정을 당하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이면서 MCU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소속된’) 시리즈인 ‘호크아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화려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아기자기한 액션도, 2대 호크아이로서 슈퍼히어로의 이름을 계승하게 된 케이트 비숍의 활약도, 이제 공식적으로 MCU 참가가 확인된 일부 캐릭터들(그들에 대한 언급은 뒤에 자세히 하기로 한다)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모습도, 우스꽝스러운 트레이닝복 차림의 악당들이 펼치는 개그씬도, 아니다. 물론 앞서 말한 그 모든 장면들이 좋긴 했다. 단지 “타노스가 옳았다”는 낙서를 봤을 때의 처연한 눈빛,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동지의 추모비 앞에서의 서러운 독백. 당연히, 모두 호크아이, 아니, 클린트 바튼의 몫인 이 장면들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세상을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으로 돌려놓는 데에 성공한 마블의 슈퍼히어로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세대교체를 했고, 그들 중 일부가 영화 아닌 드라마로 선보인다고 했을 때 전체적인 스케일의 축소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특정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돋보여야 할 드라마에서 팀업 무비 수준의 스케일을 기대할 순 없는 노릇이니.
대신 이야기의 밀도는 더욱 크게 가져갈 수 있을 것이고, 지금까지 소개된 MCU 드라마들은 그 부분에서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완다비전’에서의 야심적인 구상, ‘팔콘과 윈터솔져’에서의 다층적 사회상에 대한 조명 등이 시청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호크아이’다.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드라마들과 비교하면, 주인공인 클린트 바튼(그리고 2대 호크아이가 될 케이트 비숍)에 내러티브를 더 많이 집중시켰다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선 어쩌면 캐릭터 원맨쇼에 가까운 ‘로키’와 더 비슷한 측면이 많지 않은가 하는데… 보는 이에 따라선 또 다르게 느낄 수도 있을 듯하고.

이전까지 시리즈로 이어진 MCU 작품(영화)들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진 측면이 없다고 하기 힘들면서도 정상적(?)인 가정을 꾸렸다는 배경을 가진 사실상 거의 유일한 캐릭터가 바로 호크아이다보니 주인공으로 출연한 드라마는 다양한 측면에서 아기자기한 재미를 줄 수 있는 구석이 많다는 기대를 갖게 했고, 그 기대는 상당부분 성공을 했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 차세대 호크아이, 케이트 비숍의 좌충우돌하는 매력도 인상적이었고, 특히 시리즈의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 (타 MCU 작품에서 이미 출연하여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는)생각지도 못했던 킹핀과 옐레나 등의 캐릭터가 모습을 드러낸 부분은 이 시리즈, 아니, MCU의 미래가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요소라고 하겠다.

무엇보다 단독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한 다른 캐릭터들과 비교하면, 항상 슈퍼히어로로서 선한 측면과 책임감을 강조하는 등의 모습이 이제 그 이름을 뉴페이스에게 물려줄 1세대 선배로서의 무게감을 돋보이게 하는 모습이어서 짠하면서도 뭉클했다. 이것이 바로 어른의 의무! 아빠의 청춘은 오늘도 원더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