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세상이 지옥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되겠습니다.” 난치병을 앓는 환자의 가족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듣게 될 사형선고와도 같은 이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힘들 것이란 건 당연한 생각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본인이, 무슨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닌데 “(당신은)앞으로 2주 뒤에 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정신이 멀쩡할 사람이 있을까?

이런 호기심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어느새 예상 외의 방향으로 진행된다. 백주대낮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 줌 재가 되어버린 사람은 정말 지옥에 간 걸까? 저렇게 사망한 사람을 ‘지옥으로 데려갔다는’ 근육질의 시커먼 사자(?)들은 정말 신의 대리자가 맞는 걸까? 지옥에 갔다니, 생전에 무슨 엄청난 죄를 지었길래 저런 형벌을 받게 된 걸까? 응당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이런 부분들에 대한 관심을 가질 새조차 없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지옥(Hellbound)’에선, 그 대신에 저 혼란한 지옥도가 펼쳐진 지금의 세상에서 사람들이 벌이는 악다구니에 포커스를 맞춘다. 작품 속에서 직접 언급된 표현을 빌리자면 “자연재해나, 재난”을 자신의 저급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마음대로 사용(?)하는 이들이 나오고, ‘죽어 마땅한 인간’들에 대해 정의를 실현한다는 미명으로 백색테러를 자행하는 이들이 나오는가 하면, 사이비종교 단체에 휘둘리는 무능한 정부가 나온다.

이쯤 되면 이 드라마의 제목이 ‘지옥’인 이유가 너무나도 명백해진다. ‘지옥이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이 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웅변하는 것. 아닌 게 아니라 작품 내에서도 주인공격인 등장인물이 바로 그렇게 말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 겁 주고 벌 줘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시겠다? 그런 데가 하나 더 있죠. 지옥이라고.”(배영재 PD / 박정민 분)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사뭇 갈리는 듯한데, 넷플릭스를 타고 세계에 동시 공개된 터라 국내에서의 반응 외에 해외에서의 반응에도 관심이 쏠린다. 바야흐로 K-드라마의 전성시대! 호불호가 갈리면서 호평 쪽이 조금 우세한 국내에서와는 다르게 해외에선 “포스트 ‘오징어 게임’”이라며 사실상 호평 일색. 다만 작품 성격상 내용이 지나치게 어둡고, 비주얼이 잔혹하다는 지적도 있다(그런데 ‘오징어 게임’도 그런 면에선 결코 떨어지지 않았는데…).

연출자인 연상호 감독은 초기 애니메이션 작품인 ‘사이비’, ‘돼지의 왕’과 실사 영화 데뷔작인 ‘부산행’ 이후, 나름 흡족한 성공을 거둔 사실상 첫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전의 ‘염력’이나 ‘반도’ 같은 경우 좋게 봐주려고 해도 결코 좋게 보기가 힘들었던 작품이기에. 어쨌든 절치부심하며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돌아온 듯한 모습이다.

출연진의 연기는 대부분 좋았다. 신의 대리자(처럼 보이는 사자)가 사람의 목숨을 폭력적으로 앗아가는 스펙터클(!)을, 무단으로 이용하는 일에 나선 정진수 역, 유아인은 현학적인 대사를 낮게 읊조리는 연기에서 평소 실제 본인의 아우라(?)를 투영시키는 듯했다. 아, 물론 훌륭한 연기였다는 뜻이다. ^^;; 사실상 선(善)역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민혜진 역 김현주도 커리어 사상 처음 선보인 액션 연기와 함께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한 가지 덧붙이면, 당사자에겐 상당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전까지 김현주란 배우에 대한 개인적인 인식은 ‘젊었을 때 얼굴만 예뻤던’ 연예인이란 생각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뀐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OCN 드라마 ‘왓쳐’에서 한태주 변호사 역의 연기. 이 드라마에서 악당은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선한 역도 아닌, 묘한 위치에 속한 캐릭터를 탁월한 해석과 함께 선보였다. 중년 이후의 커리어가 더 기대되는 배우. 개인적으론 이혜영(이만희 감독의 따님인 그녀), 이일화, 김혜수, 전도연, 그리고 김현주 같은 중년 여배우들이 타이틀 롤을 맡는 볼륨 좀 있는 영화, 예컨대 ‘델마와 루이즈’의 한국판 같은 작품을 꼭 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사실, 민혜진 역 김현주 외에 박정자 역(김신록 분) 연기도 엄청났다

박정민의 연기에 대해선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가 출연한 영화 중에 망작 소리를 듣는 작품은 있어도 박정민이 연기 못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을 듯.

자, 이제 남은 건 새 시즌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만약 나온다면 언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질문. 일단 지금 공개된 6개 에피소드에선 미처 해결되지 못한 궁금증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신이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이며, 그의 사자들이 행하는 ‘고지’와 ‘시연’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지금의 흥행과 시청자들의 평가를 보면 2시즌은 거의 반드시 나올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시간 문제로 보인다. 그리고 새 시즌에선 필연적으로 출연진이 대거 교체될 텐데 또 어떤 배우가 출연해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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