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뉴스 꼭지에서도 알린 것처럼 2026년 상반기 극장가에 모처럼 화색이 돌고 있다. 설 연휴 특수를 노리고 개봉한 한국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글을 작성하고 있는 3월2일 기준으로 무려 8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 이와 같은 흥행 기세는 무척 놀라운 것이어서, 팬데믹 사태 이후에도 큰 흥행 기록을 세웠던 <범죄도시> 시리즈와 <파묘>, <서울의 봄> 등의 관객 동원 수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될 정도. 다만 개인적으로 크게 기대했던 <휴민트>가 생각보다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약 170만 정도 관객을 동원한 후 개봉관에서 속속 내리는 추세여서 아쉽다.
이 정도로 관심을 모으는 작품이 극장에 걸렸을 때, 평소 같았으면 (거의 반드시)두 편 모두 봤을 것.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그렇다. 두 편 모두 아직까지 못 봤다는 것이다. ㅠㅠ 가족 중에 갑자기 환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바로 옆에서 간호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쳤기 때문이다.
출근도 해야 하고, 어차피 하루 24시간 내내 환자 옆에 붙어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몇 시간 동안 외출을 하기는 곤란한(물론 출근은 제외) 상황이기에 영화 관람은 언감생심. 게다가 이 상황이 금방 타개될 것 같지도 않아서 개인적으로 참 힘들고 피곤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가 참 오랜만에 PC게임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예전엔 게임 바닥에서 밥 먹고 산 적도 있고 실제 게임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나이를 먹어선지 게임에 대한 관심도 예전만 못하던 차, 어차피 갖고 있는 PC도 최신 게임을 돌리기엔 사양도 많이 부족하니 옛날에 즐겼던 고전게임을 살펴보다가 내 인생 최초로 구매했던 한정판(!) 게임 타이틀이 생각난 것.
바로 그 게임의 제목은, <시드 마이어의 문명 3(이하 문명 3)>.

지난 2001년에 출시된 이 게임을 다시 해보니, 바로 지금의 내 상황에서 즐기기에 가장 잘 맞는 게임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환자 옆에 내내 붙어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고 환자가 급하게 부를 때 잠깐 가서 보는 식인데, 바로 그런 상황에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가 제격인 것. 게다가 고전게임이니 저사양 PC로도 돌릴 수 있어 좋고. 그리고 역시, 예전에 했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다시 돌리고 있으니 ‘내가 <문명> 시리즈를 참 좋아하긴 했구나’하는 추억에 젖을 수도 있었고. 덧붙이면 <문명> 시리즈는 5편까지만 했는데 그 중 3편을 제일 오랜 시간 플레이한 기억이 있다.
전술했듯 개인적으로 처음 구매했던 한정판 게임 타이틀이 바로 <문명 3>였다. 다만 구성은 그다지 훌륭하진 못했는데, 양철 케이스는 마음에 들었지만 게임 타이틀하고 매뉴얼, 그리고 문명 발전 단계를 그래픽으로 구현한 포스터 정도가 들어있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국내 출시 당시 <문명 3> 한정판은 영문판으로만 나왔고 나중에 국내 배급사에서 한글 패치를 배포해서 그걸 깔고 플레이했던 기억도 났고.
워낙 옛날에 나온 게임이고, 비단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에 한정하지 않고 ‘게임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봐도 그야말로 기념비적으로 남은 걸작이기에 구태여 부연할 필요가 있나 싶긴 하지만 그래도 개인의 감상 정도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몇 가지 붙여보고자 한다.
이미 많은 게이머들과 평론가들이 언급한 것처럼, <문명 3>는 승리 조건이 꽤 다양하다. 2편까지만 해도 그저 상대 문명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정도만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 3편에 와선 군사적 승리 외에도 문화적, 외교적, 과학적(‘알파 센터우리’로 떠나는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승리 조건이 갖춰졌다. 사실 20여 년 전에 게임을 할 땐 그저 빨리빨리 군사 유닛을 뽑아서 상대 문명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벌여 이기는 승리만을 추구했는데,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그런 승리보단 오히려 싸움은 최소한으로 하고 상업적, 외교적 및 기타 다른 방식으로 하는 플레이를 하게 되었다(예전에 비해 난이도를 좀 낮춘 것도 이와 같은 플레이를 가능하게 한 요소일 것이다). 게다가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바로 한류 문화가 전 세계의 젠지(Gen-Z)를 열광하게 만드는, 이른바 ‘문화 승리’의 시대 아니던가! ㅋㅋㅋ
그리고, 옛날 기억에 의존해서 쓰는 글이라 사실 좀 모호하긴 한데, 2편까지만 해도 자원의 종류가 그다지 많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3편에 와선 자원의 종류도 무척 다양해졌고 각 자원의 개별적 가치도 꽤나 높아졌다. 특히 자원의 가치라는 부분에 대해선 플레이 시간이 오래 지나고 문명이 충분히 발전한 상태가 되는 때에야 비로소 실감하게 될 터.
<문명> 시리즈는 원래부터 유명했고 그만큼 국내에도 팬이 많았지만 특히 국내에서 이 시리즈의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 건 아마도 5편에 와서 세종대왕 캐릭터가 출연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문명 5>의 세종대왕 캐릭터는 비단 게임 관련 미디어뿐 아니라 TV 뉴스 등의 레거시 미디어에서도 다뤘을 정도였으니(“조선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 이여~”라는 대사가 한동안 꽤 유명해졌다. ㅋㅋㅋ).
무엇보다 <문명 3>에 들어온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이후의 시리즈에게 큰 영향을 끼친, 말하자면 시리즈를 전반적으로 정립시킨 타이틀이란 점도 반드시 다시 새겨야 할 부분.
아무튼 저간의 사정으로 <문명 3>를 다시 하게 되긴 했는데, 처음 몇 번은 옛날 기억이 희미하기도 했고 그냥 감만 믿고 플레이를 하다 보니 망테크(…)를 타게 될 것이 뻔해서 그냥 날려버리고 다시 새로운 문명으로 시작하기를 몇 차례, 이제서야 좀 제대로 각을 잡고 플레이하게 되면서 시간은 참 빨리도 흘러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구식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향하는 재미란, 바로 이런 걸까.
그건 그렇고… 게임은 재미있는데, 지금의 내 상황은 그리 행복하지 못하니 이 아이러니를 어찌할 거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