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현실이, 창작된 이야기보다 더 기가 막히고 도무지 믿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런 데다 흔히 ‘야만의 시대’라고 많이들 하는 1970년대 전후라고 하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아무튼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수긍하게 된다.
바로 넷플릭스 드라마 <애마>(이해영 감독 / 이하늬, 방효린 등 출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언급해야 할 부분이 있다. <애마>는 실제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극화한 드라마는 아니다. 그러나 <애마>라는 드라마에서 그려진 내용 중 상당수는 실제 있었던 일인 것도 맞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창작일까? 그걸 구분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진 않다.
때는 1970년대 말.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여배우 정희란(이하늬)이 새 작품을 둘러싸고 껄렁한 영화제작자 구중호(진선규)와 티격태격하는 중, 곽인우 감독(조현철)과 제작자는 아예 뉴페이스를 발굴하기로 하고 오디션을 연다. 그 오디션에서 선발된 신인 신주애(방효린)가 타이틀 롤을 맡아 제작에 들어가게 되는 영화는, 극중에서나 실제 대한민국 영화 역사에서나 기념비적(?)으로 남게 될 바로 그 문제적 작품, <애마부인>.
<애마>는 총 6부작으로 구성된 드라마 시리즈로, 초반엔 단순히 ‘영화 한 편 만들기’에 관한 요절복통 코미디처럼 보이다가 자연스레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하게 되고 일견 퀴어물을 연상케 하기도 하면서 종국엔 당차게 우뚝 선 한 여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다분히 개인적인 감상이라면 아주 옛날 참 재미있게 봤던 영화 <델마와 루이즈>도 생각났고 넷플릭스 영화 <블론드>도 생각났던 와중, 그래도 몇 편인가 봤던 <애마부인> 시리즈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났던 게(ㅋㅋㅋ) 조금 특이하다면 특이했던 경험.
확실히, 대한민국의 1970년대부터 80년대 정도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들은 당대의 상황을 어떤 식으로든 조명할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시대정신’을 담기 위한 시도 혹은 노력 정도로 한정할 필요도 없다. 애초 정당성 없이 권력을 찬탈한 독재자가 실시한 ‘3S 정책(스포츠, 스크린, 그리고 섹스)’ 자체가 당시 대중문화 분야에 무척이나 큰 영향을 끼쳤고, 당시에 벌어졌던(비록 한참 뒤에 전모가 밝혀진 경우라고 해도) 실제 사건 자체가 꽤 드라마틱하기도 하기 때문.

예컨대 영화제작자가 ‘포주’ 노릇까지 하면서 최고 권력자에게 여배우를 ‘진상’한 일은, 당연하게도 당시엔 언급 자체가 금기였으나 이후 여러 가지 증거들(하긴, 보는 눈이 한둘이었겠는가)이 뒷받침되면서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 일단 ‘벗는’ 연기로 얼굴을 알린 여배우가, 안 그래도 척박하고 엄혹했던 시절 주변의 남정네들로부터 받은 곱지 않은 시선은 또 어떻고. 오죽하면 실제 <애마부인>의 주연이었던 안소영 배우(<애마>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중견 연기자로 특별출연을 한 그녀를 보고 괜히 뭉클해지기도 했다)조차 주변의 시선 때문에 아예 우리나라를 떠서 미국에서 살기도 했다.
그러니, 극중에서 작정하고 모든 사실을 폭로한 정희란을 ‘마치 진짜 애마부인처럼’ 말(馬)을 타고서 다가닥 다가닥 달려와 구해낸 신주애의 모습이 대단히 통쾌하게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페미니즘에 대해 내가 아는 건 극히 적지만, 적어도 이 정도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면, 야만이 횡행하던 시절 불건전하게 소비된 여성성에 대한 21세기의 대답이라고 할만하지 않은가!
말이 났으니 말인데, <애마>는 얼핏 퀴어물의 외피를 쓰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신주애는 동거하는 동성 친구(이주영)와 선을 넘을 듯 말 듯, 묘하게 긴장되는 관계를 내내 유지한다. 또한 직전에 언급한 장면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정희란과 신주애는 단순히 돈독해진 선후배 관계를 넘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연인 사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면 비중 있는 남자 캐릭터는 찌질하기 이를 데 없이 그려지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라면 재미있는 부분이다. 비열한 제작자 구중호는 말할 것도 없고, 신주애를 스토킹하는 연예부 기자 이재근(박해준)은 아마도 실제 발기불능일 테고. ㅋㅋㅋ
배우들의 연기도 꽤 좋았다. 주인공 이하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70년대~80년대의 톱스타처럼 보였고 이전까지 주로 단편영화에 출연했던 방효린은 보석 같은 뉴페이스 그 자체. <극한직업>에선 이하늬와 그토록 애틋했던(?) 진선규는 양아치 제작자로 호연을 펼쳤고, <폭싹 속았수다>에선 세상 착실하고 불쌍하기도 했던 박해준의 그 느물거리는 연기란 진짜… 지금 생각해도 토가 나올 지경.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이해영 감독은 이전까지 무척 다양한 필모를 갖고 있었는데 데뷔작(이자 공동 연출작)이었던 <천하장사 마돈나> 외에 그다지 인상적인 작품은 없었다는 점이 솔직한 개인적 감상이었다. 그런 중, 본작 <애마>가 이해영 감독의 필모에서 가장 내세울 만한 성취가 되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애마>는 때로 유쾌하고, 때로 진지하며, 전체적으로 매우 인상적인 작품으로 기억에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