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영화관을 좀 자주 갔다 싶었는데, 지나고 보니 너무 뻔한^^;; 영화들만 봤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누구나 보는’ 영화 외엔 솔직히 꼭 보고 싶은 영화도 별로 없었고 상영 시간도 워낙 불편해서. 조조라면 그래도 할인된 가격에 볼 수 있어서 좋겠지만 평일 밤 9시, 혹은 11시 상영 시작이면 ㅡㅡ;;
<F1>, <슈퍼맨>, 그리고 <판타스틱 4> 등등의 작품들은 취향 코너에서 이미 다뤘고 OTT에서 본 드라마와 영화 몇 편에 대해 짤막 소감을 전한다. 지난 짤막 감상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
지난 얼마간 즐겼던 영화와 드라마들에 대한 짤막 소감 / 2025년 6월
<파인: 촌뜨기들> 강윤성 감독 / 시나리오 강윤성, 안승환 / 류승룡, 임수정, 양세종, 김의성 등 출연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11부작 드라마. 그리고 그 웹툰은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지난 1970년대 말,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난데없이 보물선이 발견되었던 사실은 아직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 이 보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극이 원작 웹툰의 내용이었는데, 웹툰 연재 당시에도 무척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근데 결말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 참고로 웹툰은 <미생>과 <야후>(이 작가 작품 중 가장 좋아한다) 등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의 작품.
드라마는, 정말이지 선한 구석이 아주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캐릭터는 단 한 명도 안 나오는, 진짜배기 악당들만 드글드글한 피카레스크물이면서 보물(돈)을 놓고 악다구니가 벌어진다는 점에서 케이퍼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류승룡, 김의성, 김성오, 우현, 김종수 같이 ‘한 무게감 하는’ 배우들이 드센 전남/경남 사투리를 써가면서 눈 부신 연기를 펼친다. 드라마 전체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배우들의 퍼포먼스만 놓고 봤을 때 단연 올해의 드라마 반열에 올려도 큰 무리는 없을 정도.
다만 악당이라고 해서 영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모습만 보여지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말이 났으니 말인데, 관석(류승룡) 같은 경우 ‘그저 간장게장 좀 해먹으려고 간장이나 훔치던’ 좀도둑에서 발전(?)해서 수십억 원이 돌아다니고 수십 명을 부리는 현장의 지휘자(?)로 각성하기까지 하니, 마치 직장인처럼 성실한 악당이라고나 할까? 작중 상황을 이런 식으로 조명하는 데에는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사실 작품 공개 전후로 해서 감독 및 배우들이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내용이 언급되기도 했다. 이른바 ‘야만의 시대’. 실제로 1970년대를 회고하는(나이가 많건, 적건) 이들은 당시를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시대로 인식하는 경우가 적잖다. 그리고 이미 말했듯, <파인: 촌뜨기들>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에게선 착한 구석이란 걸 찾을래야 찾아볼 수가 없으니. ㅋㅋㅋ
연기를 논하면서 본작에 출연한 조연 배우들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벌구 역의 정윤호는 진짜 대단한 연기를 보여줬다. 이 배우가 정녕 아이돌 출신이란 말인가. 그리고 실제 바다에 나가 ‘뽀인뜨’를 딱 짚는 역할을 했던 복근(김진욱)의 경우도 엄청난 퍼포먼스였고. 레슬러 지망생 덕산(권동호)도 빼놓을 수 없고. 장담컨대, 본작에서 조연이나 단역으로 나왔던 배우들 중 올해 안에 다른 큰 규모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눈길을 끄는 감초처럼 나올 배우가 분명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1970년대 배경의 정감 넘치는(?) 구현에다 <범죄도시>와 <카지노>의 강윤성 감독 특유의 굵직한 연출 등이 어우러져 꽤 재미있고 볼만한 작품이 나왔다. 덧붙여서 감독과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집필한 안승환 작가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서 ^^;; 더 반갑기도 했고.
같은 감독의 작품이자 본작과 마찬가지로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콘텐츠이기도 했던 <카지노>의 경우 엔딩에서 너무 힘이 빠지면서 아쉬움이 컸지만 <파인: 촌뜨기들>은 엔딩도 나름 깔끔했다고 생각한다. 역시, 플랫폼이 달랐다면(노골적으로 말해 넷플릭스를 타고 공개됐다면) 지금보단 훨씬 더 많은 이들이 보고 호평을 했을 터인데… 아무튼, 추천하고픈 작품.
<발레리나> 렌 와이즈먼 감독 / 아나 데 아르마스, 안젤리카 휴스턴, 가브리엘 번, 키아누 리브스 등 출연

많이 알려진 것처럼 <존 윅> 시리즈의 세계관에서 파생된 스핀오프 타이틀. 타임라인을 따지자면 <존 윅> 3편과 4편 사이에 위치하는데, 3편에서 존 윅이 루스카 로마의 수장 디렉터(안젤리카 휴스턴. ‘바로 그’ 존 휴스턴 감독의 딸)를 만날 때의 장면도 잠깐 나온다.
각설하고, 굳이 내용을 정리하는 게 필요할까 싶을 만큼 ‘이야기란 게 없다!’ 이브(아나 데 아르마스)가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아픔을 가슴에 삭히고 훌륭한 킬러로 무럭무럭 성장해서(?) 결국 복수를 한다는 게 내용의 전부. 러닝타임 내내 벌어지는 화끈한 액션 장면을 제외한 나머지, 드라마 부분은 그저 액션 페이즈(Phase)와 페이즈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정도로만 존재한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
<존 윅> 시리즈가 팬이 많은 만큼(그런데 실제 흥행 데이터를 살펴보면 그렇게까지 크게 흥행에 성공한 것도 아니긴 하다) 이 세계관을 다 알고 있다는 점에 한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제법 있다. 컨티넨털 호텔이라든가(컨시어지 역 랜스 레딕은 본작이 유작이 되었다. 그의 명복을 빈다), 이 킬러들의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주화라든가, 나름의 규칙 같은 부분들이 바로 그것. 그렇긴 한데, 그런 내용들을 전혀 모르고 봐도 감상에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발레리나>에는 정말 상상할 수 있는, 아니, 간혹 상상조차 하기 힘든, 아무튼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인명 살상의 방법이 모두 나온다. 때론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거의 슬래셔 장르에서나 볼법한 비주얼이 나오기도. 이것은 적어도 <존 윅> 시리즈의 주된 스펙터클이었던 총격 액션보다는, 다양한 무기와 현장에서의 애드립(유리병, 접시, 망치 등)을 갖고 펼치는 격투 액션이 위주가 된다는 이야기다.
비교적 최근 들어 할리우드에서 쏟아지고 있는 후속작들 중 일부에서, 원작(혹은 원작의 주인공)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 와중(그래, <스타워즈> 시리즈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다) 그래도 <발레리나> 정도라면 원작과 그 두터운 팬들을 꽤 신경 쓴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존 윅이 출연하기도 하고, 작중에선 여전한 네임밸류를 보여주기도 하고 있으니.
어쨌든 화끈하고 시원시원한 눈요기가 충분한 작품이었다. 몇 가지 재미있는 트리비아가 있는데, 우선 두 주연인 아나 데 아르마스와 키아누 리브스는 새끈한 어반 호러 <Knock Knock(똑똑)>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는 것(이 작품은 유부남 한정 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큰 공포를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같은 <발레리나>라는 제목의 한국 영화(전종서 주연)에서처럼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 등.
<트리거> 권오승, 김재훈 감독 / 김남길, 김영광 등

“만약 한국도 미국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총을 소유할 수 있다면, 한국 인구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란 이야기가 있다. 안 그래도 화가 많은(…) 민족인데, 누구나 손쉽게(?)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총이 있다면? 아파트 위 층이나 아래 층에서 조금 시끄러운 소리만 들려도 민감한 사람들이나, 말도 안 되는 업무 분량을 떠넘긴 부장의 괴롭힘에 시달리는 사람, 전세 사기를 당해 하룻밤에 모든 재산을 잃은 사람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바로 이런 상상력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트리거>를 완성시켰다. 어느 날, 대한민국에서 총기를 이용한 범죄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개인이 만든 조악한 사제 총기가 아니라 엄연히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군인과 경찰이 사용 중인 현용 총기를 이용한 범죄. 전직 특수부대원이자 현직 경찰 이도(김남길)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수사에 나선다.
꼭 밀리터리 분야에 관심이 많은 이가 아니라도 대한민국에서 총기를 이용한 범죄가 발생했다면 경찰이나 군대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 안다. 생각보다 무척 신속하게, 그리고 압도적인 화력이 동원되는 것. 얼마 전 인천에서 일어난 사제 총기 사건 같은 경우는 제외하고라도, 실제 군/경의 총기를 이용해 일어났던 대부분의 사건에서 범인은 대부분 사살되었던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트리거>에선, 참 희한하게도 택배를 통해 총기가 멀쩡히(?) 돌아다니는데도 경찰이나 군대는 손을 놓고 있는 수준. 물론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리얼리티가 희생된 측면이 큰데, 그렇다곤 해도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
뭐, 그런 건 ‘드라마니까’ 일단 넘어가보자. 그렇다면, 드라마로서의 가치나 완성도는 충분한가? 적어도 그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까지 많이 나쁘진 않았다. 액션 장면도 훌륭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은근히 볼만했다. 특히 좁은 승합차 안에서 문백(김영광)이 정만 일당을 상대로 펼치는 액션은 촬영과 편집 모두에서 거의 <제이슨 본>처럼 보이기도. 전직 명사수인 이도(김남길) 역시 총을 잡는 폼이 제법 멋져 보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실성이 많이 제거되긴 했지만 드라마가 던지는 문제제기 또한 나쁘지 않았다.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말 개인이 자구책을 찾는 게 맞는가? 그렇지 않다면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들이 바로 그렇다.
다만 시청자로서 견디기 힘들었던 건 그 흐리멍텅한 엔딩. ㅠㅠ 왜 이야기를 하다 만 것같이 끝나버리는 거니. 게다가 <트리거>란 제목처럼 다양한 총기류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 총들이 사용된 총격 액션 장면은 의외로 적다는 것도 다소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가지 덧붙이면서. 하필 비슷한 시기에, 완전히 같은 제목의 한국 드라마가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되었다. 물론 내용은 전혀 다른 작품.
다음달 개봉 예정인 박찬욱 감독의 기대작 <어쩔 수가 없다> 정도를 제외하면, 당분간 극장에 ‘쎈’ 영화는 걸리지 않는 걸로 보인다. 그러니 당분간은 드라마나 보면서 지내야지. 아마도 다음 취향 코너에선 <에일리언 어스>를 다루게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