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상적인 경험의 이면에는

극장가가 모처럼 반짝 호황을 맞았다. 모든 대한민국 국민 중 대다수에게 이미 지급된 민생지원 소비쿠폰에 이어 역시 전국 대부분의 극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할인 쿠폰도 배포되었다. 그러면서 7월 마지막 주 ‘문화가 있는 날’의 경우 (중복 할인의 혜택을 받아)최소 1천원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전국적으로 약 86만 명이 넘는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다. 이는 올 상반기 일간 평균 영화 관람객 수인 약 23만 명의 4배 가까운 수치.

이번 영화관 할인 쿠폰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작품은 한국영화 <좀비딸>로 보인다. 자극적인 구석 없고 무난하게 보기 좋다는 관객들 사이의 입소문에 힘입어 주말 동안 1백만 관객을 동원했고 개봉 일주일 만에 누적 관객 220만 명을 동원, 무척 가파른 흥행 추이를 보이고 있다. 이 추세대로면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최고의 흥행 기록을 쓴 <야당>의 300만 기록을 깨는 건 그저 시간 문제.

한편, 다소 의외의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는 영화가 있다. 브래드 피트 주연,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F1 더 무비>(이하 <F1>)가 개봉하고서 거의 30주가 지난 시점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역주행의 부스터(?)를 켜고 질주하는 중. 특히 4DX나 스크린 X 같은 이른바 특별관에서의 경험이 무척 인상적이라는 관객들의 평가를 들으면서 300만 명의 관객을 (뒤늦게)동원했다. 잘만 하면 올해 초특급 기대작이었던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의 370만 관객 동원 기록을 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런 예측을 하게 만들고 있다.

이상하리만치 땡기질 않아서(…) 관람을 미루고 있다가 모처럼 극장 나들이를 하게 되어서, 예매 직전까지도 <F1>을 볼까 <판타스틱 4>를 볼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F4>보다는 <F1>가 먼저일 듯해서(…)’ 무려 4DX관에서 보게 되었다. 어땠냐고? 적어도 올해 들어 내가 내린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그냥 2D 플랫폼에서 봤다면 그 감흥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터. 좌석이 정신 없이 흔들리고, 사방에서 물방울이 뿌려지고(?) 안개가 피어 오르고(??) 뒷덜미에선 뜨거운 바람이 훅훅 불어오는 경험은 분명 특별한 것이었다.

어쩌면 테마파크에서 신나는 놀이기구를 타고 났을 때의 느낌. 아무튼 관람 후, 흥분을 가라앉히고 영화를 곰곰이 씹어보면 몇 가지 아쉬운 지점이 없진 않았지만(그 부분은 뒤에 자세히 언급하기로 한다) 아무튼 무엇보다 ‘재미있는 영화’였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그래서 재미있는 이야기 <F1 더 무비>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과 평론가들이 <F1>을 두고 ‘트랙 위의 <탑건>(엄밀히 말하면 <탑건 매버릭>)’이라고 하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일단 연출(조셉 코신스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에런 크루거)가 같고, 심지어 촬영감독(클라우디오 미란다)과 음악(한스 짐머)까지도 같다! 그런 물리적인 요소 외에, ‘한 물 간 베테랑이 다시 현역에 복귀하여 젊고 팔팔한 에이스와 합을 맞춰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시킨다’는 이야기의 큰 줄거리마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앞서 언급한 이야기 같은 경우야, 따지고 보면 옛 신화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찾을 수 있고 웨스턴이나 무협 영화에서도 많이 봤던, 이른바 원형(Prototype)에 가까운 내러티브이긴 하다. 요즘 서브컬처 진영에선 이와 같이 전형적인 스토리를 두고 ‘왕도물’이란 표현도 쓰고 있다(반대로 전형성을 벗어난 이야기에 대해선 ‘사도물’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렇게 ‘뻔하지만 그만큼 익숙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지기 위한 장이,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여전히 매력적인 브래드 피트를 주인공으로 하여, 시속 340km를 넘는 질주가 펼쳐지는 트랙에 마련되었다. 어찌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있을까?! 다만 우리나라에선 다소 생소한 F1이란 스포츠(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F1은 단순히 뛰어난 드라이버 한 명이 운전만 잘 하면 장땡인 자동차 경주가 아니라 최첨단의 기술과 끈끈한 팀웍과 절묘한 전략이 필요한, 엄연한 스포츠다)를 전면적으로 다뤘다는 점이 다소의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F1이란 스포츠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문외한으로서도 <F1>을 보면서 큰 지장을 느끼진 못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다만 관람 중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차라리 모른 채로 계속 있는 게 나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중에선 주인공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가 거의 30년만에 F1 무대에 복귀해선, 매 경기마다 다소 희한한 트릭(?)을 쓴다. 예컨대 의도적인 ‘길막’을 한다든지, 일부러 다른 선수의 차량에 부딪히기도 하는 등, 뭔가 좌충우돌하는 소니의 캐릭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은 플레이가 펼쳐지는데 영화를 보는 중 ‘저런 플레이가 실제 경기에서도 그대로 용납이 되나? 혹시 뭔가 규정 위반 같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그래서 찾아본 바, 아니나 다를까, 실제 경기에선 100% 규정 위반에 해당하진 않더라도 ‘꼼수’에는 속하는, 매우 더티한 플레이란 것을 알게 된 것. 이게 작중에선 마치 ‘상대의 허를 찌르는 기상천외한 전술’처럼 묘사된다는 것이 다소 못마땅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야 F1이 대중적이지 못하다고 해도 세계적인 기준으로는 거의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못지 않은 메이저 스포츠에 속한다고 하면, 그만큼 경기 룰에 해박한 팬들도 이 영화를 볼 텐데 왜 시나리오를 굳이 그렇게 썼는지 의아할 따름인 것이다.

덧붙이면, 역시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실제 F1에서 활약하는 유명 드라이버들과 관계자들 상당수가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을 했으며 일종의 기술 자문도 맡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F1이 첫 시작을 알린 75주년 기념작으로 협회(FIA)에서 대대적인 지원을 했다고 하는데 주인공의 플레이를 왜 그렇게 묘사했는지 여전히 의문.

작중에서 소니의 ‘더티 플레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시나리오에 또 다른 불만이 있다면, 아아, 정말이지 꼭 그랬어야만 했냐! 하는 소리가 나오는 부분이 있다. 바로 소니와 케이트(케리 콘돈) 사이의 로맨스. 영화에서 선남선녀가 눈 맞아 하룻밤 보내는 일이야 다반사로 일어나지만, 스스로 무척이나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하고 “난 팀원과 눈 맞을 일 없다”고 철벽까지 친 케이트의 행동이 무색해지니 말이다. 물론 (환갑은 넘었지만)여전히 매력적인 소니, 아니, 브래드 피트의 플러팅에 안 넘어갈 여자가 세상에 존재하긴 할지 의문이지만 이 로맨스는… 뭔가 좀 ‘그저 보여주기 위해 보여준 장면’ 같아 보인다. 둘 다 돌싱이면서 마지막에 그냥 헤어지는 건 또 뭐람.

어쨌든 앞서 이야기한 ‘왕도물’이란 표현에 걸맞게, 주인공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감동의 승리를 쟁취한다. 그렇다. ‘너무 뻔하다’. 하지만 그 뻔한 맛이란 게 또 사람을 끌리게 만드는 법. 개인적으론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루키 조슈아(댐슨 이드리스)가 마지막에 우승을 차지하는 엔딩이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그래도 일생에 단 한 번, 어차피 이번 경기 끝나면 훌훌 털고 멀리 떠날 일이 예정되어 있는 늙은 주인공에게 포디움의 가장 꼭대기에 서는 영광을 선사하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다.

전술했듯 <F1>은 꾸준한 흥행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팬데믹 이후, 엄밀히 따지면 팬데믹의 여파로 극장들이 관람료를 일제히 인상한 이후 극장에 걸린 대부분의 작품들 흥행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모처럼 많은 관객들의 선택을 받는 작품인 것이다. 작중에서 주인공 소니의 레이스는 (적어도 F1 트랙에선)끝났지만 영화는 앞으로도 쭉 ‘달릴’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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