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며, 궁극적으로 가장 큰 ‘재미’를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는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라고 할 수 있겠다. 개미 한 마리 죽이기도 힘들어 보이는 유약한 주인공이 수련을 거듭해 금강불괴로 거듭난 뒤 부모의 원수를 갚는다든가,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아님 육체적으로든 하여튼 어떤 어려움을 겪는 주인공이 갖은 고난을 겪은 뒤 어떻게든 행복을 찾는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인류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지어졌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이유가 다 있는 것.
직전의 이야기(들)에선 주인공의 명백한 적이었던 이들이, 한 데 뭉쳐서, 커다란 위협으로부터 시민들을 지킨다? 너무 급진적인 아이디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거기에 충분한 이유와 근거가 부여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게 잘 되면 또 이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지.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마블은 그걸 해냈다. <썬더볼츠>에서 하나로 뭉친 이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암살 전문가, PTSD에 시달리는 전직 군인, 신체적으로 몹시 불안한 환자(?) 같은 캐릭터들이 이전의 MCU 작품들에서 빌런으로 출연하긴 했지만 그래도 연쇄살인마나 아동 유괴범 같이 세상 흉악한 범죄자들은 아니었던 게 다행(?)스럽게 느껴질 정도(그렇게 되기까진 MCU 작품들이 12세 이용가 등급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란 ‘어른의 사정’이 존재했을 것이다. 아, 물론 <데드풀>은 빼놓고).
애초에 원작 코믹스가 있고 그로부터 나온 실사 영화이긴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MCU는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하긴 했다(사실 진작부터 필요하긴 했다). 한 번 이상 세상을 구했던 위대한 영웅들은, 사망했고, 나이를 먹고 은퇴했으며, 세대교체는 지지부진했다. 영화 속에선 그랬고 현실에선 더한 위기가 닥쳤다. 플랫폼을 넘나드는 세계관의 확장은 관객들의 피로감을 부채질했고 작품 수도 많아지면서 완성도는 들쭉날쭉, 널뛰기를 탔다. 그 와중에 몇몇 배우들은 부정적인 가십에 연루되면서 관객들로부터 반감을 사기도 했고.

그러니까 애초부터 기획된 부분이든 아니든, 빌런들의 연합 <썬더볼츠>가 MCU의 페이즈와 페이즈를 연결하는 일종의 브리지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것이 참 공교로운 점이라고 하겠다. 시작부터 참 거시기한데,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그것도 지령을 받고) 처음 만났다. 성격이 무던할 리 없는 캐릭터들이 티격태격하는 것 자체가 재미를 주는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희한하게도 그 누구 하나에게라도 미운털이 박히질 않는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멕이면서’ 드라마를 쌓아가다가 만나는 거대한(?) 적. 따지고 보면 <썬더볼츠>에서 뉴욕이라는 대도시 하나가 통째로 사라질뻔한 위기는 외부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그 수습도 그냥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썬더볼츠>의 장점이자 단점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즉, 이 모지리들은 최악의 어려움에 직면해서 똘똘 뭉쳐서(정말 ‘육체적으로 함께 뭉쳐서’) 최고의 결과를 이루어낸다. 영화에서 “넌 혼자가 아니야”란 대사가 계속 나올 정도. 이전의 MCU 작품들에서 좋았던 점이 바로 이런 점 아니었던가. 약점 있는 슈퍼히어로들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우정이나 사랑 같은 테마로 하나가 되어 문제를 극복하고 결국 정의를 이룩한다는 것.
반면 특별히 외부의 거대한 적이 없다 보니 전체적인 스케일이 작게 느껴진다. 그리고 격투 실력과 전투력으로 따지면 이 세계관 내에선 그래도 손꼽히는 캐릭터들인데 액션도 별로 많지 않고. 하긴, 맞서 싸워야 할 적 자체가 총, 칼, 주먹으로 뭘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기도 했고. ^^;;
MCU 작품들은 쿠키 영상으로도 유명한데, <썬더볼츠>의 쿠키 영상 두 개는 이 시리즈 전체에서 따져도 수위를 다툴 만큼 인상적이고 재미있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 쿠키에선 이제 이 장대한 세계관에 처음 참전하는 새 캐릭터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대감을 듬뿍 주기도.
관람 전엔 솔직히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고스트(한나 존 케이먼) 같은 경우 그다지 인상적인 캐릭터도 아니었고 ‘짭틴 아메리카’ U.S. 에이전트(와이어트 러셀)는 <팔콘 & 윈터솔져> 안 본 관객이라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인지도가 낮은 캐릭터였으며 결정적으로 직전에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참 별로였기 때문.
그러나 기대를 넘어 꽤 준수한 모습을 <썬더볼츠>가 보여줘 반갑다. 이 시리즈와 세계관의 오랜 팬을 자처하는 나 같은 이들은 앞으로 나올 <판타스틱 4>를 비롯한 새 작품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