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를 통해 몇 번 밝힌 바 있는 내용. 나는 <왕좌의 게임> 드라마 시리즈를 무척 좋아한다.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이른바 ‘인생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정도. 당연히 지난 2019년, 마지막 시즌의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모두 봤고.
시작은 거창했으나 마지막에 가선 완전히 망쳐버린, 그러니까 용두사미로 끝난 드라마의 대표작(?)이 바로 <왕좌의 게임>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사실 팬이 많았던 만큼 그렇게 뒤돌아선 이들이 굉장히 많은데) 나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그렇게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넘쳐났던 캐릭터들이 왜 마지막에 가선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게 여전히 불만.
물론 이건 원작자 조지 R. R. 마틴(흔히 ‘쌍알 영감’이라고 불리는)의 게으름 탓이 크다. 그가 원작에서 더 이상 진도를 빼지 않아서 마지막 시즌은 여러 작가들이 투입되어 서둘러 마무리를 하게 되었기 때문. 드라마를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선 쌍알 영감이 못내 괘씸하기까지 했을 정도. 도대체 원작을 몇 년째 왜 안 쓰고 있는 건지? 그러면서 무슨 요상한 스핀오프니 다른 드라마니 심지어 게임이니 찾아 다니는 건 또 뭔지?
사실 원작의 진도가 더 이상 나가지 않고 있는 점에 대해 작가 스스로가 밝힌 바가 있기는 하다. 일단 그는 나이가 많다(1948년생이니 이제 곧 팔순을 앞두고 있다). 그러니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기도 하고, 드라마의 엔딩에 대한 많은 논란 때문에 그 압박감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제 적지 않은 <왕좌의 게임> 팬들 사이에선 ‘우리 생전에 원작 엔딩을 못 보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인데 작가 본인은 원작을 계속 쓸 것이라는 의지도 밝히는 동시에 “(원작 소설의 엔딩은)드라마판 엔딩과는 다를 것”이란 이야기도 하고 있는 중.
어쨌든 원작 팬의 한 명으로서 그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현재 할 수 있는 게 없… 아니, 그렇지 않다. 할 수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드라마를 다시 정주행하는 것! ^^ 게다가 지난달엔 쿠팡플레이에서 그야말로 쟁쟁한 HBO 드라마 시리즈들이 대거 업데이트되는 낭보가 전해지지 않았는가.
그래서 쿠팡플레이 업데이트 이후 글을 쓰는 바로 지금 시점까지 다시 ‘달리고’ 있는데, 유일한 단점이라면 중간에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다는 것. 내용을 다 알고 보는데도 진짜 손에 땀을 쥐어가며, 마른침을 꼴깍 삼켜가며 보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내가 진짜 ‘왕겜’을 좋아하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왕좌의 게임>을 다시 보며 든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 정말 인상적이었던 장면들
처음 보기 시작한 이후, 정말 꾸준하게도 달려서 오늘 새벽에 6시즌까지 돌파했다. 그러니까 웨스테로스 대륙 북부에서 ‘까마귀’들과 야인들과 화이트 워커들과 스타니스 바라테온의 군대까지 한 번 이상 붙는 커다란 전투가 있었고, 산사 스타크는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으며, 바다 건너 에소스에선 ‘용엄마’ 대너리스 타르가르옌과 티리온 라니스터가 이제 막 만난 때. 물론 여기에 미처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캐릭터들이 수많은 곡절을 겪었다.
지금까지 보면서 느낀 점은, 내가 예전에 <왕좌의 게임>을 보면서 유독 기억에 남았던 정말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은 의외로 드라마 초반에 많이 집중되어 있었구나 하는 점이었다.
티리온 라니스터의 블랙워터 전투 전 연설(2시즌 에피소드 9)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캐릭터이면서 드라마의 실질적 주인공이기도 한 티리온 라니스터는 수많은 명장면과 함께 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바로 그 전설의 ‘블랙워터 전투’ 직전, 병사들을 앞에 두고 한 연설이었다.
킹스 랜딩 코앞까지 들어온 스타니스 바라테온의 군대를 맞아, 국왕 조프리는 아니나 다를까(ㅋㅋㅋ) 일찌감치 꽁무니를 뺐고, 이제 왕의 수관인 티리온이 군대를 이끌어야 할 상황. 스타니스의 압도적인 전력 때문에 지레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 앞에서 티리온이 일장 연설을 펼친다.
적들이 침탈하려는 건 너희들의 도시다.
적들이 들어오면 너희들의 집을 불태우고,
너희들의 재산을 빼앗고, 너희들의 아내와 딸을 겁탈할 것이다.
Let’s Go and Kill them!
그야말로 간지 폭발(…). 여기에 티리온 역을 맡은 배우 피터 딘클리지의 신체적 핸디캡이 겹쳐 보이면서 정말 뭉클한 감동까지 느꼈다. 실제로 해외의 평단에서도 피터 딘클리지 일생 일대의 연기였다는 평도 자자하고.
장벽에 함께 오른 존 스노우와 이그리트(3시즌 에피소드 6)

‘까마귀’ 존 스노우가 야인들과 함께 하게 된 이후, 마치 예정된 수순처럼(?) 아리따운 여인 이그리트와 눈이 맞고(실제로 이 배우들은 결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들과 함께 장벽을 올라가고자 한다. 극중에서 ‘얼음으로 만든’ 장벽을 보고 저기를 기어올라가려고 하는 미친 짓(…)을 하는 인간이 과연 있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장벽을 올라가는 이들을 막기 위한 무시무시한 장비가 이미 있고, 밤의 순찰자들도 그들을 막기 위한 전투를 익숙하게 펼치는 걸 보니 실제로 이전에 진짜 미친 누군가가 올라가긴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ㅋㅋㅋ
아무튼 천신만고 끝에 장벽에 오른 존 스노우와 이그리트. 이 둘을 부감으로 잡은 카메라는 장벽 북쪽과 남쪽을 번갈아 돌아가며 비춘다. 당연히 북쪽은 차가운 얼음이 잔뜩. 그와 반대로 남쪽은 풀밭이 펼쳐져 있고. 당연히 장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처럼 극단적으로 기후가 갈리는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극중에서 이 장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베린 마르텔의 장엄한(…) 퇴장(4시즌 에피소드 8)

페드로 파스칼이란 배우는 물론 <왕좌의 게임> 이전에도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있으나 오베린 마르텔 배역이 확실히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도 있다. 그만큼 오베린 마르텔은 캐릭터가 참 많은 <왕좌의 게임>이란 드라마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 아마도 출연 시간이 짧아서(ㅠㅠ) 더욱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마르텔 가문이 위치한 도르네 지역은 대륙의 최남단. 따라서 생활 환경도 북부와는 다르고 사람들의 인식도 다르다. 물론 그 사람들의 ‘인식’이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면 양성애에 관대한 것일 테고. 아무튼 오베린 마르텔은 조프리 왕을 독살했다는 누명을 쓴 티리온을 대신한 ‘챔피언’이 되어 이른바 ‘결투 재판’에서 오베린 본인의 누이였던 엘리야 왕비를 겁탈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산더미’ 그레고르 클리게인과 결투를 벌인다. 그리고 그 결과는… ㅠㅠ
처음 드라마로 이 장면을 봤을 땐, 원작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여서 그가 이렇게 죽을 거라곤 정말 생각도 못했는데.
피의 결혼식(3시즌 에피소드 9)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놀랄만한 죽음이라면, <왕좌의 게임> 드라마 전체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놀라움을 전한 장면은 바로 ‘피의 결혼식’. 뜬금포로 캐릭터 죽이기에 일가견이 있는(…) 원작자 조지 쌍알 마틴 영감의 악취미가 제대로 발현된 장면 아닐까?
스타크 가문의 맏이 롭이 전쟁에 나서면서, 어쩔 수 없이 왈더 프레이 가문과 정략결혼을 해야만 하는 상황. 그런데 전장에서 다른 여인과 눈이 맞은 자신 대신 모계인 툴리 가문의 에드무어가 프레이의 (무척 예쁜)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결혼하기 싫다’면서 징징대던 에드무어가 신부 얼굴을 보자마자 헤벌쭉해지는 장면이 일품(?).
결혼을 축하하는 연회가 벌어지는 와중, 연회장의 연주자들이 ‘카스타미어의 비’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뭔가 이상한 낌새가 풍기긴 하는데… 루스 볼턴이 태연한 표정으로 임산부인 제인의 비를 칼로 푹 쑤시는 장면에선 진짜 경악을 했고. 이어서 결국 롭의 가슴에도 칼을 쑤시면서 이런 말을 한다. “라니스터가 안부 전해달라더군” 그러면서 스타크 가문은 몰락하고, 드라마에선 사실상 처음으로 다뤄진 웨스테로스의 내전은 거의 종식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에다드 스타크의 죽음(1시즌 에피소드 9)

개인적으론 피의 결혼식만큼 놀랐던 장면이 바로 에다드 스타크의 죽음이다. 1시즌을 처음 볼 때만 해도 ‘숀 빈이 나오니 언젠가는 죽겠네 ㅋㅋㅋ’라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주인공처럼 나오다가 결국 1시즌 말미에 참수를 당하고 마니 이 어찌 놀랍지 않을까. 그리고 극중에서 언젠가 죽기야 죽겠지만(…) 자신의 죄를 (허위)자백까지 했는데도 악랄한 왕에 의해 결국 목이 베인 것이니 그 놀라움은 더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드라마를 앞으로 계속 봐야겠구나.
지금까지 2차 정주행을 하면서 본 장면들만 정리한 게 아니라 예전에 처음 드라마를 볼 때부터 기억에 남았던 장면들인데,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정말 대부분 시즌 전반부에 (개인적으로 생각한)명장면들이 많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위에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 외에도 4시즌 스타니스의 북부 진격(개인적으로 스타니스가 너무 찌질하게 보여서 참 별론데, 이 장면 처음 볼 땐 육성으로 ‘우와!’하고 터졌다)이나, 브리엔과 함께 목욕(…)을 하게 된 제이미 라니스터가 넋두리를 하는 장면도 진하게 기억에 남았던 장면들. 덧붙이면 협해 너머, 에소스에서 있었던 일들은 의외로 그렇게까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대너리스는 드라마 전체를 보면 중반 이후에서나 본격적으로 활약을 하게 되는 터라서…
▲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비싸진다’?
HBO 드라마의 특징이라면, 물론 성인 취향의 작품이 많다는 거겠지만 그 외에도 확실히 투입되는 제작비의 차원이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왕좌의 게임>도 제작비는 억수로 들어간 작품이고.
다소 희한한 점이라면, 시즌이 점점 진행될수록 제작비가 더 많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실제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고.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다.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원작자 쌍알 영감은 이야기를 진행시킬수록 스케일을 점점 키워나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보여줄 ‘꺼리’가 많아지다 보니 제작비도 자연스럽게 높아졌겠지.
그리고 시즌 후반에 가면 ‘용엄마’ 대너리스와 드래곤들이 본격적으로 활약을 하게 되고, 동시에 대륙 북부에서 화이트 워커들도 대거 출몰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CG 처리가 많아지기도 해서 점점 ‘비싸지는’ 느낌.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제작 기간도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가 더 길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 故 물뚝심송(박성호)의 명복을 빌며
우리나라에서 <왕좌의 게임>이 유명세를 얻고 많은 팬을 확보하게 되기까지, 지금은 고인이 된 필명 물뚝심송(박성호)님의 공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진작부터 SNS(주로 트위터)에서 이름을 날렸던 논객이자 언론인이기도 했던 그는, 한국어 최초의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출연해서 <얼불노>, 즉 <왕좌의 게임> 원작 소설과 드라마에 대해 무척이나 화려한 소개(화려한 개드립과 함께)를 했다. 그것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면서.
사실 나도 그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왕좌의 게임>을 접하게 되었다고 고백해야겠다. 그러면서 예전에 나온 번역판은 완전 엉망이고,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번역판(나중에 확인해보니 판타지 장르 전문 번역가가 붙은 작품이라고)이 진짜배기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새 번역판도 같이 봤고.
만약 아직까지 <왕좌의 게임>을 전혀 접한 적이 없는 이라면 물뚝심송님의 팟캐스트를 청취할 것을 권한다. 정말 강추하는 시리즈. 덧붙여서 일단 팟캐스트를 차례대로 듣고, 드라마를 먼저 본 다음, 마지막으로 소설을 읽는 순서를 추천. 그리고 가급적이면 작품 속에서의 진도를 따라가며 듣고 보고 하면 더 좋을 것이다. 팟캐스트는 아래 링크에 들어간 다음 검색창에 ‘얼음과 불의 노래’ 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
http://xsfm.co.kr/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