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얼마간 즐겼던 콘텐츠들에 대한 짤막 소감 / 2025년 1월~2월

2025년 들어 보리스 매거진 업데이트 사이의 주기가 확연히 길어졌다. ㅠㅠ 연초에 희한하게 바쁜 일이 생기거나 몸이 아파서(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한 번 아프면 예전처럼 쉽게 낫지 않는다. ㅠㅠ) 글 작성이 어려워지기도 하고 등등. 여러 가지로 아쉬운 2025년 벽두를 보내는 중, 그래도 조금씩 짬을 내서 본(주로 OTT 플랫폼에서) 드라마와 영화들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중증외상센터> 이도윤 감독 / 주지훈, 추영우, 하영 등 출연

2025년 상반기 넷플릭스 최대의 아웃풋, <중증외상센터>

2025년 상반기, 아마도 넷플릭스 최대의 아웃풋이 될 작품. 실제로 공개 후 글로벌 차트에서 최상위권에 오르기도 했고 넷플릭스 이용자 수가 증가하기도 했다고. 작년 연말 공개된 <오징어게임> 2시즌에 이어 넷플릭스의 귀염둥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K-콘텐츠’의 대표주자라 할 만하다.

‘신의 손’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그러면서 일부 과거는 의문에 싸인) 천재 외과의사 백강혁(주지훈)이, 보건복지부장관의 추천을 받아 한국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에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이 의사이고,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 자체가 병원이다 보니 응급수술을 비롯한 의학적 처치 등이 많이 나오지만 진지하게 고증을 따지는 메디컬 드라마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슈퍼히어로(…)에 가까운 주인공이 종횡무진 활약하는 판타지(?)나, ‘병원 입장에서 돈이 되지 않는’ 중증외상센터를 굳이 조명하며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빌런들을 희화화하기도 하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중증외상센터>는 처음 공개된 1월24일 이후부터 많은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도저히 현실에선 일어나기 힘든(의사가 응급구조 현장에서 헬기 레펠을 타고 내려온다든가 하는) 장면을 보고 ‘이걸 계속 봐야 되나’하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계속 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어 결국 1시즌을 완주하고 나니 그래도 다 보길 잘했구나 하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런데 <중증외상센터>의 원작인 동명의 웹소설(그리고 웹툰)에서 주인공 캐릭터 구현의 모티브가 된 이국종 교수의 언급에 따르면 “작품에 나온 대부분의 일을 실제 겪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본작이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큰 지지를 얻고 있는 와중, 실제 대한민국에서 지난 11년간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 기관의 역할을 수행했던 고대구로병원이 이달 말이면 문을 닫는다는 것. 정녕 슈퍼히어로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존재로구나.


<조명가게> 김희원 감독 / 주지훈, 박보영, 김민하 등 출연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던 <조명가게>

디즈니 플러스 채널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무빙>에 이어, 강풀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조명가게>는 기획 발표 단계부터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놀랍게도 배우 출신(“이거 방탄유리야 이 XX야~!”)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게다가 김희원 감독은 <무빙>에선 배우로 나왔다) 출연하는 배우진도 제법 네임밸류가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

다만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원작 웹툰 자체가, 대중적이라곤 하기 힘든 호러 장르였기 때문에 이 작품이 과연 어떻게 구현될지도 궁금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기획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강풀 작가 작품들의 가장 큰 매력은 특정 장르를 떠나 개별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는 것. 본작에서도 나름 적지 않은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그들 중 특정 누구에게 치우침도 모자람도 없이 밸런스가 잘 잡혔고 역시나 다 보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감을 잡기 힘든 초반 서너 편의 에피소드만 잘 넘기고(따지고 보면 원작 웹툰에서도 초반 진행이 조금 느리긴 했다) 시리즈를 완주하면 누구나 뿌듯(?)해질 작품.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의 쿠키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바, 이른바 ‘강풀 유니버스’는 계속 이어진다!


<가족계획> 김선, 김곡 감독 / 배두나, 류승범, 백윤식 등 출연

엔딩에 가서 조금 힘이 빠졌지만, 그래도 좋았던 <가족계획>

지금까지 선보인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중엔 <안나>, <소년시대> 정도가 그나마 인지도를 얻었는데 나머진 안타깝지만 ‘그런 드라마가 있긴 했는지’ 시청자들이 기억조차 못했던 상황. 당연하게도 이용자 수가 적은 플랫폼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던 건데, 작년 연말 선보인 <가족계획> 역시 태생적으로 그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론 나름 재미있게 본 터라 더 많이 알려지지 못한 게 안타까웠고.

영화와 드라마를 소개하는 팟캐스트 ‘배드 테이스트’에서 본작을 두고 ‘<덱스터>와 <조용한 가족>의 만남’이라고 표현했는데 딱 적당한 언급이라고 생각한다. 가상의 도시 금수시(‘짐승’을 뜻하는 금수라는 도시 이름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지은 것으로 보인다)에 이사온 한 가족이, 그들 자체도 뭔가 수상한데 그들보다 더 수상한(?) 사건에 휘말린다는 이야기.

배경에 관해 시시콜콜 잘 아는 것보단 오히려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보는 게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자세한 이야기를 하긴 꺼려지지만, 이 수상한 가족은 모두가 나름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정도만 언급하기로 한다. 한때 대한민국 독립영화판에서 꽤 주목 받는 이름이었던 김선, 김곡 쌍둥이 형제 감독이 모처럼 연출을 맡았다. 그리고 <가족계획>에선 무척 인상적인 조연들이 돋보였던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가족 중 여자 쌍둥이 백지우 역 이수현 배우는 원래 모델 출신인데 본작을 통해 배우로 데뷔. 마스크가 굉장히 독특해서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오길자 역 김국희 배우와 폭력소녀 미옥 역 윤가이 배우도 특별히 주목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가 흥미롭고 숨가쁘게 이어지다가 엔딩에 가선 조금 힘이 빠지는 느낌도 들었다. 무엇보다 마지막 액션에서 카타르시스가 크게 터져줘야 하는데, 굳이 일대일로만 격투를 붙인 장면에선 참, 뭐랄까 ‘연출이 가난하다’고나 할까. 그리고 굳이 새 시즌으로 이어지는 떡밥도 던졌는데 과연 새 시즌이 가능하긴 할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한국에선 꽤 보기 드문, 신박한 드라마였다.


<사나운 땅의 사람들> 피터 버그 감독 / 테일러 키취, 데인 드한 등 출연

태고적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일, <사나운 땅의 사람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6부작 시리즈. 미국 건국 초기, 그러니까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극화했다. 지금보단 젊었던 시절, 단연 돋보이는 꽃미남이었던 테일러 키취와 꽃미남 계열은 아니지만 퇴폐미가 물씬했던 데인 드한 등을 참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다(분장 탓이기도 하겠지만, 솔직히 둘 다 처음 봤을 땐 알아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원제부터가 <American Primeval>, 그러니까 원시시대나 다름없던 시절의 미국(남북전쟁도 벌어지기 전이니 그냥 신생국 아메리카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을 그렸으니, 본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단연 아메리카 대륙의 광활하면서도 웅대한 자연 풍경이다. 적어도 이 부분에선 뉴질랜드의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풍경으로 중간계를 굉장히 인상적으로 구현했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 못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요즘 각 가정에 많이 보급된 대형 TV로 보면 분명 굉장한 느낌을 받을 것.

어쩔 수 없이 연출을 맡은 피터 버그 감독의 전작 중, 직접 연출이 아닌 제작을 맡았던 <로스트 인 더스트>와 <윈드 리버> 등등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부분. 추천 여부는, 반반. 보려면 보고, 영 안 땡기면 관두시고.


<보고타> 김성제 감독 / 송중기, 권해효, 이희준 등 출연

‘때를 못 만나 안타까운’ 영화 <보고타>

관련 내용이 처음 공개된 약 3~4년 전만 해도 제작비가 꽤 많이 들어간 소위 ‘텐트폴’이자 기대작으로 꼽히기도 했지만 작년 연말 공개 이후 처참한 흥행 성적(이에 대해선 뒤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다) 때문에 예상보다 금방 OTT(넷플릭스)로 간 작품.

1990년대 말 대한민국을 휩쓴 IMF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국희(송중기)네 가족은 고국을 떠나 도피하듯 콜롬비아로 향한다. 그곳에서 아버지(김종수)의 옛 전우였던 박병장(권해효)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하는 국희. 그러나 예정된(?) 난관이 닥쳐오고.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하면서 기어코 보스의 자리에 오르는 주인공 이야기는 여러 느와르물에서 본 바로 그 모습. 이야기가 새로운 건 없지만, <보고타>에선 역시 이국적인 공간적 배경이 인상적이다. 스페인어 대사가 가장 많이 나온 한국영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언젠가부터 처절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자처하는(?) 것처럼 보이는 송중기의 모습이나 이희준, 권해효, 김종수 같이 무게감이 느껴지는 조연급 배우들의 퍼포먼스도 인상적.

다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뭔가 시대착오적이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대략 10년 정도? 아니, 팬데믹 이전이었던 5~6년 전에만 나왔어도 꽤 주목을 받았을 것 같은 영화란 생각이 들지만, 지금은 서기 2025년. 수백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태워서’ 어렵사리 완성한 영화가 극장에 걸리면 관객은 입장료 1만5천원을 내고 영화를 봐야 하는 때가 요즘이다. 게다가 나라 안팎으로 우환이 겹쳐 시민들의 소비 심리가 극도로 위축되어 있기도 한데, 이런 때 굳이 답답한 현실을 반영한 우울한 범죄물이 매력적으로 느껴질까? 그런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요컨대 ‘때를 못 만난’ 영화.


곧 개봉할 영화 중엔 역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에 관심이 가는데 사전 공개된 클립들을 몇 편 보면 조금 불안한 느낌이 스멀스멀 드는 것도 사실. 아마 다음 업데이트의 취향 코너에서 다루게 되지 않을까 한다. 부디 잘 나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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