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명작을 귀로 듣다: <노인과 바다>,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변신>

지난 114호 업데이트 때 ‘프로듀서의 눈’ 꼭지에 적은 것처럼 지난달부터 전자책 앱을 사용 중이다. 마침 지난달에 이동통신사 약정이 딱 끝났고, 요금이 저렴한 알뜰폰으로 넘어가기 전 프로모션 조건이 조금 괜찮은 곳이 있나 찾아보던 중 일정량의 데이터와 함께 전자책 앱을 묶은 프로모션을 제공하는 회사가 있어서 냉큼 선택.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는데, 새로 시작한 일이 몸과 마음에 모두 스트레스가 적지 않은 업종이라 힘도 들고 피곤하고 한동안(지난 여름 동안)은 너무 덥다는 핑계 등으로 책을 도통 읽지 않고 지난 세월이 워낙 오래라 책을 좀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앱이란 바로 밀리의 서재. 전자책 앱은 해당 플랫폼을 통해 텍스트 형태의 전자책이 제공되어 한 페이지씩 손으로 넘겨가며 볼 수도 있고 전문 성우, 배우, 혹은 저자, 심지어 음성 생성기로 만들어진 목소리 등등이 책을 읽어주기도 하는 이른바 오디오북 등이 있는데 그 중 내가 밀리의 서재에서 주로 사용한 서비스는 후자. 책에 따라, 그리고 플랫폼에 따라 두 가지 서비스가 모두 제공되기도 하고 그 중 하나만 제공되기도 한다. 사실, 국내에서 전자책 앱이라고 하면 밀리의 서재 외에 윌라, 교보문고 등과 함께 3대장으로 꼽히는데 그 중 낭독 서비스는 윌라가 훨씬 잘 되어있다고 하지만 윌라는 프로모션을 하는 알뜰폰 회사가 없어서 ㅠㅠ 그래도 지난 기간 동안 나름 괜찮게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전자책 플랫폼의 낭독 서비스를 사용하기 전, ‘이게 과연 집중이 될까?’하는 의문이 크게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귀로 듣는 내내 이야기에 내가 집중할 수 있을까 했던 우려가 있었던 것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 우려는 기우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지난 짧은 기간 동안 낭독 서비스를 이용하며 겪은(나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사항에 대해 언급하려고 한다.

처음으로 사용하게 된 전자책 앱 ‘밀리의 서재’

1) 어떤 책을 ‘들을’ 것인가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디오북 서비스에 최적화된 장르는 아마도 소설(혹은 희곡). 바로 이런 낭독 서비스의 취약점이라고 할 것 같으면 ‘조금만 정신을 딴 데 팔면 바로 직전에 어떤 내용이 흘러갔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고, 내가 언제부터 ‘다시’ 들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되돌아가기가 어렵다는 것. 그런 점에서 전후 관계를 나름 분석하면서 볼/들을 필요가 있는 특정 학문 분야의 교양서는 이 서비스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소설이나 희곡이라면, 게다가 성우들이 연기까지 해주는 경우라면 그 옛날 ‘라디오 극장’ 듣던 기분으로 들으면 되니까.

2) 가급적 전문 성우, 배우, 저자가 직접 낭독하는 콘텐츠가 좋겠다. 내가 사용 중인 밀리의 서재도 그렇고 이 바닥에서 원래부터 유명했던 윌라도 그렇고, 특히 배우들이 낭독에 참여한 오디오북의 경우(당연하게도) 그 배우들은 원래부터 딕션도 좋고 음성도 차분해서 좋은 김혜수, 박정민, 정우 등으로, 듣고 있으면 그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전문 성우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런데 음성 생성기로 만들어진 목소리는… 진짜 못 들어주겠다;;; 특히 배우가 낭독한 콘텐츠 바로 직후에 듣게 되면 비교가 안 되어서 도저히 집중을 하기가 힘들고. 예전에 비해 요즘 나오는 생성기 콘텐츠는 AI TTS라고 해서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실제 성우나 배우의 낭독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

그렇게 해서 지난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주로 출퇴근 시간 동안 들었던 작품은 세 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카프카의 <변신> 등이다.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전제를 토대로 생각할 때, ‘이전부터 내용은 대충 알고 있었는데 완독을 한 적은 없었던’ 작품을 선택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서 고전문학 작품을 위주로 골랐는데 그 선택은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 / 열린책들

헤밍웨이가 왜 대문호인지 알려준 <노인과 바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노인과 바다>는 이전에 내용만 알고 있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일정한 서사를 갖춘 모든 형식의 콘텐츠에 대해 나름의 평가를 내릴 때, ‘전체 이야기를 쉽고 짧게 줄일 수 있을수록 훌륭한 작품’이란 기준(?)을 갖고 있는 1인으로, <노인과 바다>는 그 전형에 해당하는, 그러니까,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노인과 바다>의 이야기는 굉장히 간단하다. 쿠바의 한 어부 노인이 먼 바다에 나가 커다란 고기를 잡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에게 다 뜯기고 겨우 몸만 돌아온다는 내용. 그런데 그 짧은 요약으론 미처 다 담을 수가 없을 만큼 엄청난, 요컨대 문학에서 독자가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두근거림’의 요소가 다 들어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인간의 의지, 페이소스… 그 모든 요소가 작가 헤밍웨이 특유의 간결한 필체를 타고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

진짜 눈물 나고 짠내 나고 ㅠㅠ 마지막까지 다 듣고 난 다음, 진짜 거짓말 아니고 눈물이 찔끔 나서 한동안 운전석에서 한숨 폭폭 쉬면서 차에서 내리지도 못했던 경험을 했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왜 헤밍웨이가 현대 서양 작가들에게 그토록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던 기회였다.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 현대사상

태어나보니 세상이 ‘억까’하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프랑켄슈타인>도 예전엔 내용만 알고 있었고 이번이 처음 완독. 덧붙여서, 이전에 도서관에서 두어 번 읽어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서간문(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주고 받으면서 내용이 진행되는 구조)의 형태로 되어 있어서 한 자리에 앉아서 읽기가 참 힘들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누군가가 읽어주니까’ 그래도 완독을 하게 되었다. ^^

본 작품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이는 내용. 많은 이들이 작품에 나오는 괴물을 프랑켄슈타인이란 이름으로 알고 있는 일이 많은데, 사실은 이 괴물을 만든 미치광이 박사의 이름과 성이 바로 빅터 프랑켄슈타인이고 그 괴물은 딱히 이름도 없으며 그저 ‘괴물’이나 ‘그 놈’ 정도로 불린다.

이 작품이야말로 후대의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큰 영향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창조주가 되고, 그가 만들어낸 피조물과 갈등을 일으킨다는 내용만큼 다종다양하게 변주가 된 이야기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스스로 뜻한 바 있어 스스로 말하고 움직이며 생각하는 존재를 만들어내는데, 막상 이렇게 만들어낸 생명체가 너무 보기에 흉하자(…) 이를 내쳤는데 그 ‘괴물’이 파국을 초래한다는 내용.

아무래도 옛날 작품이다 보니 지금의 시각으론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부분이 분명 존재하긴 한다. 박사가 만들어놓고 보니 너무 못생겨서(그러면 만드는 와중에 좀 ‘예쁘게’ 만들 것이지) 연구실에서 도망친 것도 그렇고, 괴물 입장에선 태어나자마자 자기가 너무 못생겨서 세상이 온통 자기를 억까하고 있는데 빡치지 않으면 그게 사람, 아니, 괴물이 아니지(?)

아무튼 인간의 책임, 작가가 작품을 쓰던 당시 사회에 만연한 과학적 진보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근원적 고찰, 무엇보다 이 작품이 새롭게 제시한 SF/호러 장르에 대한 선구적 비전 등을 확인할 수 있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변신> 프란츠 카프카 / 열린책들

‘출근을 못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문제인 직장인 그레고르 <변신>

본 작품은 단편이어서 앞선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완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 작품 또한 내용도 아주 간단하다. 한 남자, 그레고르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자신이 벌레(밀리의 서재 버전에선 ‘갑충’이라고 되어 있고, 다른 여러 번역본에서도 특정한 어떤 벌레라는 언급은 없다고 하던데 난 왜 하필이면 ‘바퀴벌레’가 된 걸로 알고 있었는지? ㅡㅡ;;)로 변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엔 이를 감추기 위해 전전긍긍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가족들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

대저 고전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변신> 또한 여러 가지 독법이 존재하고 작품이 상징하는 바에 대해 참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그런 중 김PD는 (작품이 소개된 당시 막 싹트기 시작한)자본주의를 대하는 개인의 무력감이란 해석이 가장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몸에 큰 이상이 생겼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이 ‘직장에 출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란 것부터가(게다가 그의 직업은 바로 출장이 잦은 영업사원이다) ㅠㅠ 바로 그런 생각을 대변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그레고르는 자신을 포함한 가족 네 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고, 결과적으로 출근을 못하게 되고 가계 소득이 사라지자 아버지, 여동생 등이 모두 취업전선에 나선다는 표현도 나오고, 어쨌든 가족의 일원으로서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게 된 후 그가 죽어나가도(이거, 스포일러인가? 출판된 지 120년이나 된 작품이니 부담 없이 깐다) 누구 하나 눈도 꿈쩍하지 않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니 말이다.


어쨌든 전자책 앱 중 어느 플랫폼이 더 낫고 덜하고를 떠나서, 적어도 지난 한 달여간 이용했던 밀리의 서재는 나에게 꽤 큰 만족감을 주었다. 특히 출퇴근 시간 중에 작품을 읽을/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전에 그 시간엔 거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다녔는데,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고 보니 계속 업데이트되면서 채 듣지 못한 팻캐스트들이 쌓이고 있긴 하지만… ^^;;

다음에도 기회가 되는대로 후기를 업데이트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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