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얼마간 즐겼던 콘텐츠들에 대한 짤막 소감 / 2024년 10월

말 그대로 지난 얼마의 기간 동안 본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콘텐츠에 대해 ‘각 잡고 앉아서’ 리뷰를 할 만한 시간도 부족하고 경우에 따라선 굳이 취향 코너 한 꼭지를 통해 소개를 하기엔 적당하지 않은(그렇다고 해서 그 가치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아님을 알아주시라), 하여튼 그런 콘텐츠를 이야기하는 시간. 요 꼭지를 따로 올린 것도 벌써 두 달 전의 일이다. 아직 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어 무척이나 덥던 때. 그런데 10월분 이야기를 하는 오늘의 낮 기온은 섭씨 11도.

윈터 이즈 커밍. 겨울은 어김없이 온다.


<아노라> 션 베이커 감독 / 마이키 매디슨 등

참 씁쓸한데 참 명랑한(?) 분위기. 그리고 먹먹한 엔딩 <아노라>

사전에 아무런 정보 없이(심지어 줄거리는 어떤지조차 모른 채)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참 오랜만이었다. 아, 정보가 전혀 없진 않았는데 바로 올해 열린 제77회 칸느영화제에서 작품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것. 까놓고 말해서 바로 그런 타이틀이 아니었다면 볼 일이 없었을 터. 션 베이커 감독의 이름은 전에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하고 생각을 해보니 참 귀여운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던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연출했던 그 감독. 딱 요 두 가지 정보만 갖고 있던 채로 상영관으로 향했고, 이어서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시작하자마자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지더니, 이어지는 내용도 조금 의외였다. 주인공은 뉴욕의 한 유흥업소에서 스트립 댄서로 일하는 아노라/애니(마이키 매디슨). 러시아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이유로 러시아에서 온 젊은 남자 손님 이반(마르크 에이델스테인)과 ‘합방(?)’을 하게 되는데, 아노라를 마음에 들어 한 이반은 그녀를 따로 지명해서 계속 만남을 갖는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건과, 사건들.

영화에 대한 이야기, 즉 비평을 한다고 할 때 크게 두 가지 부류로 구분을 한다(물론 이 구분에 들어가지 않는 글도 있을 테지만 어디까지나 ‘큰 구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선 그 작품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글이 있다. 예컨대 어떤 감독이 연출했고, 어떤 배우가 출연했으며, 내용은 대략 어떻고, 경우에 따라선 기대되는 흥행 성적까지도 이야기하곤 한다. 이를 저널리즘적 비평이라고 하고, 영화를 관람하기 전인 독자에게 최대한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주로 북미에서 흥한 비평의 한 부류.

한편 어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감독의 전작들을 일별하며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려고 하는 방식의 비평이 있다. 결국 감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품으로 한다는 지점에 주목하는 것. 이를 작가주의적 비평이라고 하고, 영화에 대해 산업적 가치보다는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더 높게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주로 유럽의 평단에서 흥한 방식이기도 하다.

당연하지만 이 두 가지 비평의 부류를 기계적으로 나눌 필요는 없고, 물리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경우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더 적절한 방식을 택하면 그만일 터. 일반적으로 자본이 많이 들어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상업성이 짙은 작품의 경우 저널리즘적 비평을, 상대적으로 자본에서 자유롭고 흥행보다는 예술적 가치를 더 높게 치는 저예산이나 인디 영화 등의 작품은 작가주의적 비평을 택하는 일이 많은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쨌든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은 <아노라>

그런 점에서 <아노라>의 경우, 션 베이커 감독의 전작들을 살펴보는 일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필모에서 관람한 작품은 딱 하나, <플로리다 프로젝트>인데 여기서도 그렇고 전작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직업이 있다고 한다. 바로 성매매 여성. ‘아노라’라는 이름 대신 (충분히 ‘미국적’인 이름인)’애니’가 바로 그렇다. 질펀한 스트립 댄스 장면과 베드씬이 자주 나오는데 개인적인 감상으론 그 장면들 대부분은 그다지 섹스어필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 이전에 본 미국 영화 중 스트립 댄스(미국에선 ‘남성의 무릎 위’를 뜻하는 랩/Lap 댄스라고 한다) 여성이 등장한 작품은 폴 버호벤 감독의 <쇼걸>이 있었고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클로저>가 있었는데, 살짝 가물가물하지만 이 두 작품에선 스트립 댄서가 업소에서 남자 손님과 실제 성행위를 하는 것만은 엄격히 금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아노라>에선 그런 금지가 없네? 이것도 업소마다 다른 건지 괜히 궁금하다(?). ㅋㅋㅋ;;

곰곰이 생각해보면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도, 참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덤덤하게 그려낸 션 베이커 감독인데 이번 <아노라>에서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난데없는 슬랩스틱 코미디까지 펼쳐지니(작품 속에서 캐릭터들은 무척 심각한데 완전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ㅋㅋㅋ) 참 ‘웃픈’ 상황.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면 장르가 조금씩 바뀌는 느낌도 들다가 엔딩에 이르러선… 정말 먹먹하게 만든다.

영화를 다 보고서 든 생각은 ‘과연 칸느영화제에서 최고 작품상까지 받을 만한 영화인가? 글쎄?’라는 생각이 든 게 사실인데, 뭐 일개 영화 팬보다야 그레타 거윅 감독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이 몇 백 배는 더 나은 선구안을 갖고 있겠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주인공 아노라 역 마이키 매디슨은 진정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출연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게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 ㅡㅡ;;


<더 킬러스> 김종관, 노덕, 장항준, 이명세 감독 / 심은경 외

<더 킬러스>의 모든 작품들은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를 모티브로 한다

<아노라>도 그랬지만, <더 킬러스>의 경우도 이렇다 할 정보 없이 영화를 봤다. 그나마 정보가 있었다면 이명세, 장항준 등의 감독이 꽤 작은 규모로 작업한 작품들을 옴니버스로 엮었다는 것 정도. 극장 개봉을 하긴 했지만 애초부터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어서 멀티플렉스 프랜차이즈는 아니고 이른바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보게 되었다(집에서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이런 영화관이 있다는 것도 나름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

김종관 감독이 연출한 <변신>은 뱀파이어가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노덕 감독이 연출한 <업자들>은 멍청한 양아치들이 엉뚱한 사람을 납치하곤 몸값을 요구하는 내용이다(개인적으론 네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다). 장항준 감독이 연출한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는 서로가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동네 작은 술집에 모여 지지고 볶는다는 내용. 마지막 이명세 감독이 연출한 <무성영화>는 지상의 세계와 언더그라운드의 세계에서 서로 다른 타임라인이 흐른다는 내용의 이야기.

옴니버스 한 편으로 묶인 총 네 작품은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심은경 배우가 모든 작품에(작든 크든) 출연한다는 것. 그리고 (김PD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품인)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방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이 일종의 모티브로 작동한다는 것. 굳이 또 다른 한 가지 공통점을 더 꼽자면 개성 강한 감독들이 자기 멋대로 신나게 놀았구나(?) 하는 느낌을 준다는 것 정도.

의심의 여지 없이 현존 최고의 축구선수인 메시(^^)를 비롯해서 손흥민 같은 대단한 선수들이 종종 가볍게 몸을 푸는 훈련 과정을 팬에게 공개하곤 한다(물론 팀 차원에서 하는 거긴 하지만 이런 세션에 모인 미디어의 카메라들이나 팬들의 시선은 거의 대부분 유명 선수 한두 명에 모이기 마련이니 선수 위주로 언급했다). 그야말로 팬서비스. <더 킬러스>도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단편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가, 개성 강한 창작자들의 취향대로 펼쳐지는 작품을 봤다. 상업성과는 거의 백만 광년은 떨어져 있는 작품을 보고 나니 <더 킬러스>가 공개되었던 부산국제영화제 생각도 났고.


<지옥 시즌 2> 연상호 감독 / 김형주, 김성철, 김신록, 문근영 등

<지옥 시즌 2>에서 문근영은 훌륭한 연기를 보였다

보리스 매거진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1시즌 리뷰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

지금, 이 세상이 지옥이다(링크)

넷플릭스를 통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동시에)공개되기를 많은 이들이 기다린 작품. 바로 <지옥 시즌 2>(이하 <지옥 2>)다. 1시즌을 인상 깊게 봤던 입장에서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이젠 ‘넷플릭스 공무원’ 소리를 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은 솔직히 부침이 있었던 게 사실이어서 기대 반 걱정 반이기도 했다.

그런데 참 다행스럽게도 <지옥 2>는 나름 만족스러운 작품으로 선보였다. 무엇보다 전 시즌에 이어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돋보였던 점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꽤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선 문근영 배우가, 이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그 나이에 어울리는 역할을 맡아 좋은 연기를 선보인 것이 기억에 남았다(솔직히 처음엔 얼굴을 못 알아봤는데 조금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예전의 귀엽던 모습과 많이 달라지긴 했구나). 이젠 그 이름을 말하기 곤란한 배우가 스캔들로 하차한 이후 정진수 역을 새롭게 맡은 김성철 배우에 대해서도, 전 시즌과 비교하여 조금 떨어진다는 평가를 하는 이들도 있던데 개인적으론 뭐, 나쁘지 않았다. 다만 전직 변호사인 중년 여성 민혜진(김현주)이 여전히(?) 무예의 달인처럼 나오는 건 여전히 좀 웃겼지만. ㅋㅋㅋ

반면 아쉬운 부분도 있긴 했다. 무엇보다 부활한 정진수를 통해 지옥과, 부활이란 부분에 대해 어떻게든 조금은 구체적인 설명이 나오길 바랐던 팬들로선 계속 떡밥으로만 남은 점이 바로 그럴 듯. 그리고 1시즌에서도 매우 위험한 존재들로 묘사된 광신도 무리 ‘화살촉’은 무슨 ‘자기네들만 매드맥스(…)’라는 등의 비아냥도 나오는 것이 그래도 나름 정부와 공권력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떼거지로 모여서 드러내놓고 테러를 일삼는 이들이 백주대낮에 활보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론 화살촉 집단에 대한 묘사가 그렇게까지 큰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감독이 다분히 소격 효과를 노리고 의도적으로 연출한 측면이 있다고 보는 입장. 그래도 만약 다음 시즌이 또 나온다면(‘어쩔 수 없이’ 새 시즌에 대한 여지는 남겨놓고 마무리가 되었다) 2시즌에 와서까지도 시원하게 설명되자 않은/못한 부분에 대해선 조금 더 시원하게 알려주길 바라며.


<기동전사 건담 복수의 레퀴엠> 에라스무스 브로스다우 감독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뭔지는 알겠는데…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들 중에서도 정말 독보적인 IP인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3D CG 작품. 에피소드 총 6편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꽤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작품들이 나오면서 건담이 속한 지구연방이 대략 주인공격의 진영이고 그 반대편의 지온 공국이 대략 빌런격의 진영이었던 것 정도만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 <복수의 레퀴엠>은 특이하게도 지온 공국 진영의 자쿠 파일럿이 주인공이고 자연스럽게 건담이 적대시되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른바 뉴타입으로서의 능력을 갖췄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말 그대로 전장을 ‘날아다니면서’ 적(이자 ‘우리편’인 지온 공국의 자쿠들)을 상대로 무쌍을 찍는 모빌슈트 건담은 지온 공국 입장에선 그야말로 전장의 악마이자 살인귀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모든 전쟁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는 명제는 영원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창작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는, 일단 알겠다.

그런데 엔딩에 가서는 왜 갑자기 이야기가 이렇게도 부실해지는 건지. 서로를 도륙이라도 낼 것처럼 죽자 사자 달려들더니 갑자기 일장연설(?)을 늘어놓고는 ‘싸우지 말자’고…? 거기에다가, 이 잘못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참,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엔딩.

한 가지, 더 웃기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파일럿이 탑승하고 전장을 누비는 대형 이족보행 로봇은 마치 F-22 같은 현재 최신의 전투기가 그런 것처럼 당연하게도 최첨단 과학의 집약체일 터. 그런 모빌슈트들이 칼과 도끼 등을 들고 육박전을 벌이는 모습이란. ㅋㅋㅋ 아마도 이런 모습을 ‘생짜’ 2D 애니메이션으로 보면 이게 영 실제처럼 보이질 않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거의 실사에 가까운 풀 3D CG로 보니 실사와 거리감이 적어 더 어색하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 붙이고 싶은 감상이 있었지만 오늘은 일단 요기까지. 조만간 본지를 통해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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