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개봉한 <조커>는, 주인공 캐릭터가 유명한 빌런이란 것만 제외하면 실상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기가 힘든 영화였다.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날품팔이나 하는,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한 한 남자가 특별한(?) 계기로 희대의 범죄자가 되더니 수많은 추종자까지 낳는 이 뻑뻑하고 어두운 이야기가 전세계에서 10억 달러를 넘게 벌어들일 거라곤 그 누구도(제작자와, 감독까지 모두 포함해서) 몰랐을 것이다.
전작 <조커>의 인기와 팬덤 형성에 대해 곱씹어보면 정말 특이한 지점이 있긴 하다. 바로 극중에서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어가는 과정을 거의 실시간으로 지켜보다 극렬 팬이 된 이들처럼 보일 지경. 그런 점에서 전작을 두고 다소 위험한 영화라는 지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어쨌든 아서 플렉이 그 높은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는 장면에선 다들 안타까워했고, 조커가 ‘간지 나게’ 담배도 피우고 요란한 춤사위까지 곁들이며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에선 다들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았던가, 이 말이다.
<조커>의 그런 모습을 지적하고 경고한 소리를 듣고 토드 필립스 감독이 화들짝 놀란 결과물이 우리가 지금 본 <조커: 폴리 아 되(Joker: Folie à Deux)>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더 나아가 감독은 주인공 조커의 입을 빌어 “조커는 없다”는 선언까지 했는데, 10억 달러를 벌어들인 영화의 주인공이 속편에서 이 정도로 철저하게 스스로를 부정한 경우를 우리는 이전까지 본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국내외의 수많은 팬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는 영화가 바로 <조커: 폴리 아 되>인 것. 어쨌든 토드 필립스 감독은 전작으로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가 큰 수익을 낼 수 있게 해준 만큼 속편(따지고 보면 속편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전작의 큰 수익 덕분일 터다)에서 본인이 구상한 비전을 구현하도록 하는 데에 꽤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요컨대 ‘감독이 하고 싶은 걸 실컷 할 수 있는 판’이 깔렸다는 것. 그러면 영화를 찬찬히 살펴보자. 먼저 생각해볼 것은 <조커: 폴리 아 되>가 택한 뮤지컬 장르(다만 본작의 경우 캐릭터들이 모든 대사를 노래로만 전달하는 <레 미제라블>같은 ‘송-쓰루/Song-Through’ 뮤지컬은 아니고 부분적으로만 노래가 나오는데 그나마도 기존에 있던 곡들이 나오는 ‘쥬크박스/Jukebox’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조커: 폴리 아 되>가 전작인 <조커>와 거의 유일하게 갖는 공통점이라고 하면, 주인공 아서 플렉/조커가 현실과 망상 사이를 오간다는 것이다. 이번의 속편은 그 구분이 더욱 명확해져서, 주인공이 망상에 빠질 때 노래를 부른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연인(이 된) 리 퀸젤(레이디가가)과 함께.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본작의 비판 요소 중엔 ‘극에 딱 몰입할 만하면 어김 없이 뮤지컬 장면이 나와서 감상에 방해가 될 정도’란 이야기가 있는데 따지고 보면 조커와 리가 모두 그만큼 정신적으로 불안한 ‘삐딱선’을 타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덧붙이면, 개인적으로 본작의 뮤지컬 씬들은 대부분 매우 멋졌다고 생각한다. ^^;;
앞서도 이야기한 바, 조커가 본인의 입을 통해 “조커는 없다”고 선언한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해당 장면은 법정에서 스스로 변호에 나선 이후, 전작과 본작 통틀어서 본인을 진심으로 대한 거의 유일한 인물인 난장이 개리의 증언(혹은 하소연)을 듣고 난 다음에 이어진다. 아서 플렉은 스스로 조커가 된(다른 곳도 아닌 법정에서 조커 분장을 하고서) 것에 대해 나름의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 부분이 무너진 것이다.
바로 이어서 법정이 폭파되고, 추종자들이 그를 ‘모셔서’ 탈출을 하려고 하지만 거기에서조차 도망을 치는 모습까지 보게 되면 더욱 의아해진다. 이래서야, 전작과 본작까지 이어진 서사가 다른 누구 때문도 아니고 바로 주인공 본인 때문에 무너지는 모양새 아닌가. 혹시, 여전히 정신적으로 불안한(그래서 여러 모로 미욱한) 아서/조커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한 구성이었나? 아무리 양보해도 그렇게 보이진 않으니 그 또한 뭔가 이상하다.
여기에서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보면, 결국 조커라는 존재가 이토록 지리멸렬함을 조명한 것은 혹시 지금 세계의 어지러운 정세와 전혀 무관하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삐뚤어진 팬심으로 ‘모셔진’ 이가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조장한 경천동지할 사건, 즉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사건은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1기 집권 이후 미국이 얼마나 퇴행했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터. 그리고 유럽 각국에선 몇 년째 극우 진영에 속한 정당과 정치인들의 지지율이 높아지거나 아예 집권까지 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진보 진영에 비해 이런 극우 진영에 대한 지지는 깊은 고민보다는 다분히 즉물적인 판단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이런 시각을 제시하는 일조차 다소 무리가 없지 않다는 건 알지만… 만약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님 말이 옳습니다.

뭐, 전작에 대한 반성과 해체 후 재구성(의 시도에 이르는 과정)까지, 감독의 뚝심에 대해선 인정하겠는데 문제는 앞서 이야기한 여러 부분에서 의문이었고 결과적으로 관객을 설득하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전작은 아서 플렉이란 나약한 인물이 어떻게 희대의 빌런인 조커가 되는지에 조명했다면, 후속편에선 그 조커가 ‘빌런으로서’ 어느 수준의 광기를 어떻게 표출할지 많은 관객들이 기대했을 텐데 그 기대가 여지없이 부숴진 결과에 대해, 흥행에 있어 거의 역대급 폭망의 상황에 처한 것이 냉혹한 현실인 것.
다만 개인적으론 <조커: 폴리 아 되>가 그렇게까지 큰 비판을 받을 만한 작품으로 여기진 않고 있다. 어쨌든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새롭고도 과감한 시도를 했고 배우들은 꽤 높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아낌없이 시전했다. 미장센은 탁월했고(근데 과연 제작비가 2억 달러까지 필요했을까 의문) 공들여 선택된 뮤지컬 넘버들은 찰떡이었다. 결론적으로 올해 본 영화들 중 최고로 훌륭한 작품도, 최고로 재미있는 작품도 아니지만 최고로 인상적인 경험으로 남을 만한 작품으로 꼽고 싶다. 필시 영화관에서 안 봤으면 후회했을…
추신: 최근 극장에서 본 영화 두 편(<베테랑 2>와 <조커: 폴리 아 되>) 모두,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의 후속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편 공히 전작을 뒤집어 반성하거나 해체했고 그에 많은 관객들은 비판했다. 그런데 역시 참 공교롭게도 개인적으론 두 편 모두 은근히 재미있게(?) 봐서 좀 희한해하고 있는 중.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