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데믹 사태가 계속 이어지는 와중, 밀폐와 밀접(접촉)과 밀집, 이른바 ‘3밀’ 환경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 강력하게 전파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화관은 매우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관은 구조상 환기가 힘들고 여러 사람이 다닥다닥 붙어 앉을 수밖에 없는 등 대표적인 ‘3밀 환경’ 영업장이기 때문. 그런 이유로 영화관의 영업 자체가 어렵게 되면서 영화 스튜디오들은 이미 제작을 마친 영화의 개봉을 미루기 시작했고, 볼 만한 영화가 줄어들자 관객 또한 줄어드는 악순환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런 상황이 1년 넘게 이어지자 영화 스튜디오들은 자사 상품의 유통과 판매, 즉 ‘신작 영화 개봉’을 더 이상 늦출 수만은 없게 되었고 많은 영화팬들은 기다렸던 작품들을 결국 영화관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영화관이야말로 팬데믹 사태에서 다른 그 어떤 장소보다도 철저한 방역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예 영업을 할 수가 없으니.
그렇게 해서 이른바 지각 개봉을 한 영화 중 ‘듄(DUNE)’이 있다. 시나리오 작성과 배우 캐스팅 등의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영화가 바로 ‘듄’. 1965년에 처음 출간된 프랭크 허버트 작가의 장대한 SF 서사시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화계에선 이단아로 통하는 데이빗 린치 감독이 이미 1984년에 영화화를 한 적이 있고, 이후 TV 드라마로도 짤막한 에피소드가 만들어진 바 있는데, 그 두 번의 시도 모두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이 바로 지금 전 세계 영화계에서 ‘차세대 거장’ 정도의 자리에 막 등극하려고 하는(그리고 그런 시각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는) 드니 빌뇌브 감독이 또 새로운 컨버전을 내놓은 이유가 될 터다.
‘듄’의 리뷰를 작성함에 있어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부분은 아마도 ‘원작에 대한 배경 지식 전혀 없이 관람을 해도 무방한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일 것이다. 이 작품(영화)에선 낯선 고유명사(발음하기도 힘든 ‘퀴사츠 헤더락’이니 ‘베네 제서리트’니 ‘사다우카’니 하는 단어)들이 자주 나오는데 이렇다 할 설명이 별로 없어 관객을 살짝 난감하게 만들기 때문. 사실 영화화된 이번의 파트 1편은 방대한 분량의 원작에서도 일부에 불과하다.

어쨌든 원작을 전혀 모르고 영화를 봐도 괜찮은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이다. 낯선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새기기보단 전체적인 세계관 설정 정도만 따라가는 식으로 감상을 하고 정 궁금한 부분은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볼 것을 추천한다. 어차피 지금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건 ‘파트 1’이고 나머지 부분은 언제 후속편으로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시간 많다. ㅠㅠ
그렇게, 지금 작품은 파트 1편이어서 2시간40분이 넘는 러닝타임 전체가 후속편을 위한 떡밥처럼 느껴지긴 하는데(심지어 그렇게 긴 러닝타임이 흐르고 난 후, 영화의 제일 마지막 대사는 “이건 시작에 불과해”다. 이런, 세상에). 나름의 서사를 갖추고는 있다.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샬라메)가 영웅으로 등극하기 위해 필요한 무대와 모든 장치는 잘 마련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선 환경에 떨어졌으나, 타고난 능력과 후천적으로 갈고 닦은 실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아주 살짝 맛보기로만)을 보여주었으니 이제 주인공은 범 우주적인 음모와 암투의 한복판에서 존재감을 보여줄 차례.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이제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2편을 통해 관객에게 보여질 것이다.
앞서 ‘듄’의 러닝타임 전체가 2편을 위한 떡밥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건 다소 과장된 표현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주인공 폴 역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의 미친 미모는 절대로 과장이 아니었으니… 말하자면 이렇다. 티모시 샬라메는 어느 날 갑자기 사막에 떨어진대도 원주민(당연히, 여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의 미모가 그런 얼토당토않은(?) 스토리를 가능하게 하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런 관객의 생각을 미리 간파했는지, 드니 빌뇌브 감독은 티모시 샬라메의 이목구비를 타이트하게 클로즈업으로 잡은 쇼트를 매우 많이 보여준다. 티모시 샬라메의 미모를 저 넓은 스크린으로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티켓 값 확실하게 뽑는 방법이다(?).

프랭크 허버트 작가의 원작이 갖고 있는 비전과, 이제 후속편으로 나올 이야기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원작을 안 본 관계로(그 원작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은 ‘분량이 방대하다’라는 것이다) 개드립만 날린 셈이 됐는데, ‘듄’은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이고, 무엇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다른 작품들, 예컨대 ‘시카리오’나 ‘그을린 사랑’이나 ‘콘택트(어라이벌)’에 비하면 이해하기가 가장 쉽고 명쾌한 영화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듄’을 드니 빌뇌브 감독의 최고 걸작이라고 꼽기는 힘들다는 것. 드니 빌뇌브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원작 소설의 팬이었다는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 러닝타임이 2시간40분이 넘어도 그저 자상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서두르는 느낌이 든다. 확실히, 영화 한 편에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를 절제된 미학으로 담아내는 것이 드니 빌뇌브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오랜 시간 머릿속에서만 구상한 장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나누고 저렇게 다듬는 과정을 온전히 객관적으로 수행하기엔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도 들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