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기괴한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 <가여운 것들>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는 말이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특정한 어떤 지점에서 실제를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이를 보고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는 뜻의 신조어. 그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는 애초부터 (창작자가)의도하지는 않았던 결과에 대한 언급이다.

그렇다면 혹시, 처음부터 작정하고 관람자들을 불편하게 만들 의도로 창작한 결과물이라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관객을 일부러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즐기는 악취미의 소유자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전작인 <더 랍스터>나 <킬링 디어>를 보면 적어도 그가 분명 예사롭지는 않은 비전을 구현하는 데에는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된다.

<가여운 것들>이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볼 타이밍을 놓쳐서 OTT로 공개가 되어서야 뒤늦게 보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감독이 이번에 선을 쎄게 넘었구나.

개봉 전부터, 아니, 동명의 원작소설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이른바 ‘여성판 프랑켄슈타인’이란 평을 들었던 <가여운 것들>이 다루고 있는 테마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한 미치광이 의사이자 과학자가 뱃속에 아이를 가진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의 사체를 거두어, 태아의 뇌를 꺼내 그대로 엄마의 머리에 이식한다. 그렇게 태어난(만들어진?) ‘벨라’는, 몸은 성숙한 여인이지만 행동거지는 미취학 아동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런 중 그녀는 금단의 행위에 빠지게 된다.

세상 기괴한 모습의 <가여운 것들>

자세한 이야기를 전하기에 앞서 먼저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작품의 비주얼이다. 일단 시공간적 배경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정도인 듯한데,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선은 물론이고 캐릭터의 복식도 반드시 고증을 맞추지는 않았다. 그리고 벨라를 ‘창조해낸’ 갓윈 박사의 몸을 둘러싼 복잡한 기계장치를 보면 오히려 스팀펑크 쪽에 가깝다고 할까? 그런 부분을 원작소설이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의도적으로 모호한(그러면서 매우 인상적인) 배경으로 비주얼을 구현한 부분은 분명 연출자의 몫이렷다. 돌이켜보면 전작인 <더 랍스터>나 <킬링 디어>에선 솔직히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적어도 (본작과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같은)<더 페이버릿>만 봐도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풍족한 지원’을 받아서 비주얼을 더욱 풍성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참고로 <가여운 것들>은 지난 96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과 함께 미술상, 의상상도 수상했다).

한편, 본작 개봉 이후 적지 않은 논란을 낳았던 부분에 대해서도 고찰해볼 만하다. 그것은 바로 ‘(<가여운 것들>은)페미니즘 영화인가, 아닌가?’하는 것. 개인적으론 이 부분에 대해 이 쪽 혹은 저 쪽이라는 결론을 굳이 내리기보단 양자의 시각에 모두 일리가 있다는 정도로 정리를 하고자 한다. 작품 속에서 벨라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의 의지를 대부분 구현한다. 그녀가 스스로 매춘에 나서는 일까지 포함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녀는 작품 내내 계속 발전하고 진보하며(표정, 복장과 함께 심지어 걸음걸이까지도) 결론에 이르러서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급진적인 비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여성의 대상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그래봐야 메인스트림(남성) 위주의 사회 안에서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만 제한적인 자아실현에 성공한 것 아니냐’라는 지적도 있는 것. 그런 시각도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여주 엠마 스톤의 육체를 단순히 대상화했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선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솔직히 그녀의 노출이 섹스어필하긴 한가? 난 모르겠다.

<가여운 것들>은 페미니즘 영화인가?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이어지는 이야기. 엠마 스톤은 일생일대의 어려운 연기를 무척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그리고 성인으로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매우 훌륭하게 구현했다. 여우주연상 받을 만한 퍼포먼스. 백스터 박사 역 윌렘 데포는 뭐, 말 할 것도 없이 뛰어났고. 그리고 젊은 시절엔 약간 껄렁껄렁한 역으로 제법 나오긴 했지만 나이 먹어선 뭔가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을 많이 줬던 마크 러팔로가 호색한 역에 의외로(?) 잘 어울려서 재미를 주기도.

정리하면, <가여운 것들>은 매우 흥미진진하고 충분히 인상적인 작품이지만 즐거움이나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기괴하고, 보는 사람에 따라선 어쩌면 불쾌한 감정까지 초래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의 전작인 <더 랍스터>나 <킬링 디어>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해외에서 본작의 흥행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여러 유수의 시상식에서 수상한 만큼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운신의 폭은 훨씬 더 넓어졌을 터. 그의 차기작은 <가여운 것들>에서 함께 작업한 엠마 스톤과 윌렘 데포가 또(!) 출연하는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와, 한국의 컬트작 <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판이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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